<p>***</p> <p> 그대에게 드리는 꿈</p> <p> <br></p> <p> 9. 귀향(5)</p> <p> <br></p> <p> <br></p> <p>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김중을 생각하면 농담으로라도 할 말이 아니었지만 어머니에게 미안했던 것이다.</p> <p> "아이다, 야야. 니 안으로가 속이 짚다. 내하고 할배 적적하시까바 싶어가 아아들 띠놓고 갔다. 내 아이 아아들 거돠 믹이는 거 까딱 없고. 반공일에 아아들 델따 주머 하룻밤 즈그 이미하고 자고 공일에 그 집에서 차로 태워다 준다. 섹유지름값이 얼맨데 꼭 그라신다. 그거도 장한 집 자손인테는 모지래는 대접이란다. 세상에 그런 어런이 어딨겠노. 그 은공 니가 두고두고 갚아라."</p> <p> "그거사 당연히 그래 해야지요"</p> <p> 김중의 과분한 배려에 그는 마음속으로 큰절을 했다. </p> <p> "암만 그래도 아아들은 아아들 아이가. 영모는 며칠은 즈그 이미 없어졌다꼬 울어가 둘러빠지디마는 호시타는 거 좋아가 즈그 이미보고 인자 그 집에서 쭉 살라 캤단다. 우리 영모, 그랬제?"</p> <p> 영모는 부끄러워서 애꿎은 코를 만지고 있었다. 그때, 울고 싶었으나 동생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통에 차마 울지도 못했던 영식도 자동차 탈 생각에 요즘은 토요일만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손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p> <p> "니는 아무 걱정 말그라. 느그 안으로가 그 집에서 오만 반찬 다 맹글어가 보내준다. 과연 만석꾼 집인기라. 우리도 몬 묵고 사는 집이 아인데 생전 듣도 보도 몬한 음식이 많기도 한 기라. 나는 집에서 차려가 묵기마 하머 된다. 그라고 그 집 안어런이 니 안으로 보고 솜씨 좋고 재바리다꼬 탄복을 한다. 하머 그 집 음식 다 배왔단다. 행지하는 거 알양반이지러 해놓이까네 나이 비엿한 아아들끼리 사돈 맺자꼬 난리다. 인자 우리 영식이・영모 장개는 잊아뿌렜다."</p> <p> "어무이도 참요. 아아들 인자 나이 몇 살이라꼬요. 그라고......"</p> <p> "아이다. 혼사는 살림 가주고 하는 기 아이고 양반 가주고 하는 기다. 머슴 아아들도 양반마 좋으머 만석꾼 사우도 되고 메눌도 되는 기 혼사다. 우리 살림이야 그 집에 댈 거도 아이지마는 느그 할배들 중에 정승도 두 분이나 계시는 거 니도 알제? 거따가 왜눔들잔테 붙은 사람도 없지러, 양반이라머 우리집도 쭗릴 기 없는 기라."</p> <p> 혹시나 그가 두 집안의 격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할까봐 먼저 말을 끊는 어머니였다. 당사자들도 서로 좋아해야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p> <p> "그나저나 그 사람 없어가 할배 수발은 어무이 혼자서 다 하시네요."</p> <p> "아이다. 우리가 끼꺼리가 없나, 와? 할배가 좋은 일 하신다꼬 마이 팔았다만도 그래도 오백 석지기다. 재산 놔뚜고 메눌・손부가 정신 쳉멩한 밭어런 변 받아낸다꼬? 그거너 효도가 아이고 밭어런 욕 뷔는 기다."</p> <p> "......"</p> <p> "갱빈에 목골띡 아재들 삼형제 있제. 원래 천심들 아이가. 그 아재들이 할배 수발하고, 빨래는 아지매들이 하고 그란다. 마카 얼매나 잘 하는동 모린다. 니 왜놈순사눔 죽이고 우리 붙들려 갔을 때, 그 집 삼형제들 우리 수발할라꼬 경찰서 앞에서 자눕어가메 순사눔들한테 맞아가메 그래 고생했다. 니사 소작인들잔테 후하게 하라꼬 난리지마너 그때 순사눔들, 면소눔들 눈치본다꼬 우리잔테 괘씸하게 했던 소작인들 내가 싹 다 띴다. 그라고 그 아재들 힘까짓것 부치라꼬 더 보태 좄다. 내 그 아재들 끝까정 밥 묵고 살둘 해줄끼라꼬 맘 묵었디라. 소작료 한 푼도 안 받는다. 대신 할배 수발 안 해주나. 집안일도 우리너 손도 까딱 몬 하둘 한다. 날 춥어지머 새복에 와가 군불도 함 더 때주고 간다. 암만 공짜가 아이라 캐도 그래 잘 할 사람들이 어딨겠노? 냉자 니가 살림 맡아 살디라도 그 아재들잔테는 내가 하던 대로 하그라. 알았제?"</p> <p> "알았니더. 잘 하셨니더."</p> <p> "새복긑이 가얄 거 아이가. 눈이라도 붙이거라. 내가 말이 길었다. 이불 깔아주꾸마."</p> <p> 어머니가 일어나려했다. 그가 말렸다.</p> <p> "어무이요, 놔두시소. 아아들하고 같이 자머 되니더. 어무이도 빨리 주무시소."</p> <p>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영모를 안았다. </p> <p> 양팔에 아들 둘을 안고 이불을 덮으니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아내를 만나지 못해 서운했지만 모두가 무사한 것만 해도 어딘가.</p> <p> "아부지!"</p> <p> 영모가 잠결인 듯 불렀다. </p> <p> "와?"</p> <p> 대답을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벌써 잠에 들어 있었다. </p> <p> "아부지요!"</p> <p> 이번에는 영식이가 불렀다.</p> <p> "와?"</p> <p> "......아이시더."</p> <p>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이 갔다. </p> <p> "아부지 곧 다시 올 끼다. 그때까지 할매하고 엄마 말씀 잘 듣고 동생 잘 보살피고 있어라, 알았제?"</p> <p> "야."</p> <p> 영식은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독립운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나이는 아니었다. 그는 큰아들을 한 번 더 힘주어 안아 주었다.</p> <p> 아직 새벽이었다. 어머니가 미리 아랫목에 묻어둔 터라 팥죽은 제법 따뜻했다. 팥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운 그는 할아버지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길을 나섰다. 아쉬운 귀향이었다. </p> <p> 날이 밝자 할머니는 서둘러 손자들을 학교에 보냈다. </p> <p> 학교 가는 길에 영식은 할머니에게 했던 다짐을 영모에게 다시 받았다. </p> <p> "니, 아부지 오셨다 간 거 누구잔테 야기하머 큰일난대이!"</p> <p> "히야는...... 내가 바보가?"</p> <p> 형에게 그렇게 반박은 했지만 영모는 입이 근지러워서 오래 참을 자신이 없었다. 빨리 토요일이 와서 엄마에게라도 아버지가 왔다갔다고 실컷 자랑해야지 생각했다. </p> <p> 어머니는 나는 걸음으로 부영당 한약방으로 갔다. 김부자네로 가서 제일 먼저 며느리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토요일이 아니어서 의심을 살 수 있다고, 어디가 아픈 척하고 허정만에게 가라고 강성종이 시켰던 것이다. </p> <p>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일을 거드는 허의 아내가 순서를 무시하고 먼저 방으로 들게 했다. 치료비를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받고 때가 되면 밥까지 챙겨주는 부영당이라 그래도 불만하는 사람이 없었다. </p> <p> "모친요, 어디가 편찮으신기요?"</p> <p> "그기 아이고......"</p> <p> 반가워하던 허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의 전사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었다. </p> <p> "진짜 급한 분이 생겨가 갔다와야 되겠니더. 쪼매마 더 기다려들 주시소."</p> <p> 왕진 가방을 챙겨든 허는 자전거를 탔다. 김중과 의사와 환자로 접선하기 위해서였다.</p> <p> 김이 크게 기뻐했다.</p> <p> “내가 생각했던 대로 연맹서 한 일이 맞구마너.”</p> <p> “예. 그것도 성조이가 주도하는 일이라 안 캅니꺼.”</p> <p> “성조이 그 사람, 내 큰일할 줄 알았지러. 우리하고 같이 일하던 동지가 그래 큰일을 하고 있다 카이 이래 뿌듯할 수가 없는기라.”</p> <p> “예. 지도요.”</p> <p> “그른데 해필이머 와 내고?”</p> <p> “그거야 선샘이 총독부도 다 아는 유명한 독립투사라는 뜻 아이겠습니꺼?” </p> <p> “어허 거참, 꿈자리가 시끄럽디마너......”</p> <p> “선샘께서 표시 안 나도록 잘 쫌 해주시소.”</p> <p> “팔자에 없는 남사당이라......”</p> <p> 연극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김은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퍼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차도살인. 적의 것을 빼앗아 적을 치리라. </p> <p> "손님들이 여까지 온다 카이 대접을 시쁘게 하머 안 되지러. 자네는 수고이(수공 최시주. 경주고보 창립자)잔테 통기 쫌 해주게. 학교가 에럽으이 논 한 삼백 마지기 내놓라꼬. 나너 대구에 도운이놈하고 서열이놈잔테 논값 꾸러 가야겠네."</p> <p> 허는 김의 계획이 무엇인지 대번 알아차렸다. 유도운과 하서열은 매국질로 거부가 된 악질 부왜파였다. </p> <p> 대구로 출발하기 전에 김은 아내에게 강성종의 아내를 불러오도록 했다. 직접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p> <p> "성조이 그 사람이 본가에 왔다갔다 카니더. 인자 걱정마소."</p> <p> 강성종의 아내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분명 살아 있으리라 믿었다. 총알도 피해 다닐 사람이라고 믿었다. 칼을 빼든 왜놈 순사를 맨손으로 처치한 남편이었다. 쉽고 편한 자리가 아닌, 늘 목숨이 위태로운 자리에 있을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믿으면서도 마음 한 켠이 늘 불안했던 것이다. </p> <p> "그간 얼매나 맘고생했겠노. 인자 좋은 일마 있을 거이까네 걱정은 잊아뿌소."</p> <p> 옆에 서 있던 김의 아내가 어깨를 토닥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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