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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박두규, 문풍지
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
온 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
문의 틈새를 살고 있으나
사실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솜이불이 깔린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누이고
바람 타는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멈추고 울음을 그쳐도
문풍지는 문풍지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차라리 바람에 온몸을 치떠는 것이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 살아있는 이승의 시간인 것을
안이어서도 안 되고 밖이어서도 안 되는
안과 밖의 경계를 살아야 하는 문풍지
기형도, 그 집 앞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 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고영민, 손등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微動)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김재진, 벼랑에 대하여
한 줄의 편지 쓰고 싶은 날 있듯
누군가 용서하고 싶은 날 있다
견딜 수 없던 마음 갑자기 풀어지고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이 문득
이해되어질 때 있다
저마다의 상황과 저마다의 변명 속을
견디어가야 하는 사람들
땡볕을 걸어가는 맨발의 구도자처럼
돌이켜보면 삶 또한
구도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세파에 부대껴
마음 젖지 않는 날 드물고
더 이상 물러설 데 없는 벼랑에 서 보면
용서할 수 없던 사람들이 문득
용서하고 싶어질 때 있다
홍수희, 행복한 결핍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하나 내게 있으니
때로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 따숩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주고 싶은 마음 다 못 주었으니
아직도 내게는
촛불 켜는 밤들이 남아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난초가 곁에 있으니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내 안에 찾지 못한 길이 있으니
인생은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기 때문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내 안에 무엇이 또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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