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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91130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399
    IP : 175.213.***.18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12/30 21:31:03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130 모바일
    [BGM] 우리는 한 번쯤 이별을 했던가 싶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오영해,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 몇 닢 넣고

    너에게로 가서

    망설임 끝에 문을 두드리면

    반복되는 신호음이 너의 부재를 알려

    흔적도 없이 나 돌아서면

    네 방은 다시 고요로 잠잠하고

    너와 나는 다시 거리를 회복한다


    네가 문을 열고 수화기를 들어도

    손가락만 자유로운 벙어리로 나서면

    누구세요 저편에서 계속 물으며

    몇 개의 이름을 늘어놓는데

    낯선 이름 사이에 내가 없다

    너와 나 사이 찰카닥 문을 닫고

    네 생각 밖에 나는 다시 선다

    입구를 알 수 없는 벽

    우리는 한 번쯤 이별을 했던가 싶다

     

     

     

     

     

     

     

    2.jpg

     

    이성선, 큰 노래




    큰 산이 큰 영혼을 가른다

    우주 속에

    대붕(大鵬)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설악산 나무

    너는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산정(山頂)을 바라보며

    몸이 바위처럼 부드럽게 열리어

    동서로 드리운 구름 가지가

    바람을 실었다. 굽이굽이 긴 능선

    울음을 실었다

    해지는 산 깊은 시간을 어깨에 싣고

    춤 없는 춤을 추느니

    말없이 말을 하느니

    아, 설악산 나무

    나는 너를 본 일이 없다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너의 번뇌를 들은 바 없다

    밤에 길을 떠나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파문도 없는 밤의 허공에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너를 보았다

    다 타고 스러진 잿빛 하늘을 딛고

    거인처럼 서서 우는 너를 보았다

    너는 내 안에 있다

     

     

     

     

     

     

    3.jpg

     

    김영재, 어머니




    전화기 속에서 어머니가 우신다

    니가 보고 싶다 하시면서

    나는 울지 않았다

    더욱 더

    서러워하실 어머니가 안쓰러워


    어릴 적 객지에서 어머니 보고 싶어 울었다

    그때는 어머니

    독하게 울지 않으셨다

    외롭고

    고단한 날들을 이겨내야 한다고


    언제부턴가 고향이 객지로 변해 버렸다

    어머닌 객지에서

    외로움에 늙으시고

    어머니

    날 낳던 나이보다, 내 나이 더 늙어간다

     

     

     

     

     

     

    4.jpg

     

    박형진, 입춘단상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추녀 물을 세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

     

     

     

     

     

     

    5.jpg

     

    최하림, 밭고랑 옥수수




    내 눈이 너를 보고

    내 귀가 너를 듣는 동안에

    감추인 아침이 차츰차츰 열리고

    감당할 수 없이 세상이 밝아온다

    경이로운 아침이여 새벽부터 길들은

    사립을 나서서 숨소리 깊은 들로 간다

    내가 처음의 나그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몇 사람째 이슬을 털고 갔다

    그들의 발걸음이 들을 깨우고 비린내음 물씬한

    밭고랑 옥수수들을 흔든다 옥수수들이

    눈 비비며 일어나 제 모습 본다

    우리도 어느 날, 들을 가면서 우리가 지나는 모습

    볼 것이다 긴 낫 들고, 그림자 드리우며

    존재하는 것들이 밝게 얼굴 드러낼 것이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도랑에서, 나는 잠시, 햇빛에 싸여

    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의 신비를 본다

    가려고 하지 않는 길들은 매력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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