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는 혐오를 낳는다. 제가 페미니즘 운동을 하며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말입니다. 혐오가 혐오를 낳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요.
차별받고, 억압받고, 폭력에 노출되면 분노가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분노는 최초에는 내게 부당한 대우를 한 당사자를 향해 있겠지만 차후에는 방관자에게까지 닿겠죠. 피해자는 방관자들이 폭력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분노가 커지고 마치 곰팡이가 퍼지듯 혐오가 피어날 겁니다.
* 저는 온/오프라인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때로는 의견을 나누고, 싸우거나 병먹금을 하기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선적으론 제 삶 속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접한 적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게 꼭 나 자신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여성, 나의 친구,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거였죠. 적지 않은 수의 여성들이 이런 부분에는 동감할 겁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수많은 여혐 글을 접했습니다. 여기 오유에 흘러들어오는 정도의 여혐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여성이란 존재를 뼛속부터 멸시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굳이 일베를 하지 않더라도요. 저는 그런 사람들과 토론(이라고 부르는 무언가)을 하며 절망을 느낄 때가 잦았습니다.
* 저는 혐오로 피어난 혐오를 이해합니다. 저 역시 그런 감정을 느껴봤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흑인이 백인을 혐오하는 감정을,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를 혐오하는 감정을,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감정 그리고 실존하는 역차별의 피해자인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감정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메르스 갤러리의, 기존의 여혐 글에서 표현 몇 개를 바꾼 남혐글을 보며 통쾌해하는 여성들의 감정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러나 혐오는 혐오를 낳을 뿐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악순환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혐오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행동'에 반대합니다.
혐오라는 벡터는 전염성이 있고, 가속도가 붙으면 겉잡을 수가 없습니다. 혐오는 일시적인 쾌감을 선물해주기 때문에 중독성도 있어요. 그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대표가 일베 아닙니까?
저는 혐오라는 독에 빠져드려는, 혹은 이미 빠져버린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아직 분노와 혐오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는 충분히 있어요.
여혐종자들이 지금의 메르스 갤러리를 만들어냈듯 메르스 갤러리는 또다른 일베, 주갤, 야갤,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여혐 소굴을 만들어낼지 모릅니다. 저는 그 때가 너무 두려워요. 그 때가 되면 제가 그토록 외쳐댄 가치를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
* 자매들, 운동의 방식을 결정하는 건 오롯이 자매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나와 다른 방식을 택한 자매들을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존재에 빗대어 비난하고 모욕하는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지요. 그리고 그런 자매들의 나아갈 길 위에 거대한 장애물을 놓게 될 지 모르는 행동에 일말의 회의를 느낀 적도 없는지요.
저는 자매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이 지금 하는 행동에는 문제가 있어요. 저는 자매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자매들의 가슴에 대못처럼 박힌 폭력을 무기로 휘두르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