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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밤바람
어둠 속
그대 왔다 가는 소리
내가 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사는 우리집 대문까지 와서
문고리만 만져보고
돌아서 울며가는 그 소리를
내가 안다
날이 새면 가끔
집 앞 전선줄에 걸린 비닐 같은 것으로
그대 다녀간 걸 안다
서화, 나이테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다
뽀얗게 말라버린 가장자리를 짚으며 내려오는 산그늘
악물었던 이빨을 풀고 처박힌 냉장고를 기웃댄다
일그러진 문짝을 가리겠다고 수초들 힘껏 팔 뻗는데
멀리서 주위를 맴도는 왜가리들
냉동실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살핀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는 듯 부글거리는 흙탕물 속에서
곰삭은 햇살의 토막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수지 층
낯익은 기록이다
물기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저수지 속 묵은 기록들이 환하게 드러난다
물도 제 나이를 적어두고 있었다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서 제 살 위에 적어두었다
어쩌면 눈물을 찍어 썼을지도 모른다
빈 냉장고를 끌어안고 있는 건
저도 섬 하나쯤 품고 싶었던 간절함 때문이다
조정권, 꽃잎
퇴근 무렵
산철쭉꽃가지 한아름 안고
등산복 차림 사내 전철 올라타
내 옆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다
동덕여대 쯤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꽃을 무릎에 앉힌 두 손만 보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해온 것들은
모두 무거운 것이었구나
이민하, 거리의 식사
하나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펼 때는 마찬가지
굶은 적 없는 사람도 며칠을 굶은 사람도
먹는 건 마찬가지
우리는 하나의 우산을 펴고 거리로 달려간다
메뉴로 꽉 찬 식당에 모여서
이를 악물고 한 끼를 씹는다
하나의 혀를 가진 사람도 세 개의 혀를 가진 사람도
식사가 끝나면 그만
그릇이 비면 조용히 입을 닥치고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
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
하나의 우산을 접고
한 켤레의 신발을 벗고
하나의 방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방을 가진 사람도
잠들 땐 마찬가지
냅킨처럼 놓인 침대 한 장
조동례, 그냥이라는 말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별 변화 없이 그 모양 그대로라는 뜻
마음만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난처할 때
그냥 했어요라고 하면 다 포함하는 말
사람으로 치면
변명하지 않고 허풍 떨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사람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자유다 속박이다 경계를 지우는 말
그냥 살아요 그냥 좋아요
산에 그냥 오르듯이
물이 그냥 흐르듯이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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