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의 행진
브라이언 이니스
브라이언 이니스 박사는 1928년 잉글랜드의 서리주 크로이던에서 태어나, 런던대학교의 킹스 칼리지 화학부를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196년 이래 범죄를 대상으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간지<The Unsolved>의 기고를 계기로 <Real Life Crimes>에 수 많은 특집기사와 함께 과학수사에 대한 글을 오랫동안 연재하였다.
또한, 40년간 초자연적 주제와 기이한 사건, 그리고 스파이, 무법 행위, 혁명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기사와 책을 썼다.
범죄소설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며, 지금은 프랑스 남부에서 수천권의 참고 서적 더미에 묻혀 살고 있다.
저서 : 고문의 역사,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법의학과 과학수사, Forensic Scitne, Major Unsolved Crimes, Serial Murders, Body in Question, 프로파일링:과학수사와 범죄심리 등이 있다.
가짜 위조 조작 사기가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시추에이션!
- 세계적 베스트 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는 위조 문서가 만들어냈다!
P339
시온 수도회
2003년과 2004년에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사실' 이라는 제목이 붙어있고, 다음과 같은 본문이 이어진다.
1099년에 설립된 유럽의 비밀단체, 시온 수도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이다.
파리 국립도서관은 1975년에 기밀문서로 알려진 양피지 문서를 발견하였는데, 거기에는 아이작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포함한 수 많은 시온 수도회의 회원들 이름이 있다.
이 도서관의 '양피지 문서'라는 것은 뉴스를 모아놓은 것과 타자기로 종이에 기록한 것, 족보, 그리고 인쇄된 소책자 등이며 모두 카드 폴더로 묶여있다.
폴더의 내용들은 사실상 시시때때로 바뀌어 왔는데, 이는 누군가 이것을 도서관에서 빼내어서 변조하였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서들 대부분은 '앙리 로비노'라는 필명을 사용한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 도서관의 다른 관련 문서들도 개인적으로 펴낸 소책자들이었다.
보통 타자기로 작성하였거나 복사기로 복사한 것들이었다. 이런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106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렌느 르 샤토"와 연관되어 있다.
12세기 초 남부 프랑스의 이 마을에 살던 수도사 '앙리 로비노'는 돈을 받고 미사를 집전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유럽전역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이 사랑한 죽은 이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일구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교회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을의 신화 혹은 솔로몬의 보물
1955년에 노엘 코르부라는 사람이 과거에 이 수도사가 살았던 집에 호텔 겸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손님을 끌 생각으로 그는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녹음테이프에 녹음하였다.
이 이야기를 지방의 한 신문사가 발굴하였고, 나중에 <이시 파리>의 기자 제라르 드 세느가 1967년에 <렌의 황금>이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드 세느는 이 보물에 예루살렘에 있던 솔로몬의 사원에서 잃어버린 아홉 가지의 촛대일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 기자는 이전에 출간한 책을 쓸 때는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었는데, <렌의 황금>을 쓸 때도 그 사람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었는지 어땠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와 관련된 소문이 함께 따라다녔다. 플랑타르가 '앙리 로비노'의 문서들에도 관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렌느 드 샤토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점차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1969년에 영국의 방송작가 헨리 링컨은 드 세드의 글을 읽은 후에 BBC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잃어버린 예루살렘의 보물>대본작업을 시작하였다.
당연히 그는 플랑타르와 접촉하였고, 플랑타르는 그에게 '시온수도회'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존재해왔다고 말하였다. 그는 나아가, 자신은 프랑스 남부지역을 3세기 동안 지배한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이며, 또 이 메로빙거 왕조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후손이라고 말하였다.
존재하지 않는 묘비명
헨리 링컨은 이 모든 내용을 담아서 마이클 베이전트와 리처드 레이와 함께 1982년에 <성혈과 성배>라는 책으로 펴냈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수수께끼'를 다르게 바라보는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져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해석에 필요한 자료조사는 대부분, 렌느 르 샤토에 있는 교회에 있었다는 묘비명의 내용과 그 수도사가 발견하였다는 두 개의 양피지 문서의 내용에 입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묘비명이 있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묘비명에서 옮겼다는 내용도 모두 가짜임이 드러났다. 플랑타르에게는 공범이 한 명 있었다. 필립 드 세리제 후작이라는 바람둥이였는데, 이 사람은 한때 런던의 여러 술집에서 기타 연주를 하였다.
양피지 문서 가운데 하나를 복제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조석이 플랑타르의 필체로 적혀있다.
이것은 필립 드 세리제가 위조한 것으로 제라르 드 세느가 자기 책에 그대로 베꺼 넣었다.
시온 수도회가 11세기와 12세기에 실제로 존재하였는지도 의문이다. 플랑타르는 1956년에 '시온 수도회'라는 단체를 등록하면서 '카톨릭 규칙의 기사도 제도이자 독립적이고 전통적인 조합의 기구'로 규정하고 스스로 사무총장이 되었다.
이 단체는 플랑타르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동조하면서 만든 '알파 갈랑트'라는 단체의 정신을 이어받은 극단적으로 우익적인 조직으로서, '기사도의 원칙으로 프랑스를 개조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였다.
하지만 렌느 르 샤토 '사업'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않고 번창하였다. 누구든 '보물'을 받기 위한 발굴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보물을 찾아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비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영국 작가 두 명은 <신의 무덤>(1996)이라는 책에서 예수가 묻힌 장소는 렌에서 계곡 하나 건너에 있는 언덕이 틀림없음을 확인하였다고 고함을 지르는 데까지 나아갔다.
또 어떤 작가는 그 마을에서 바라다보이는 모든 영역이 광대한 이집트의 사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플랑타르가 한 말과 드 세드가 위조한 문서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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