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0세 이상이고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적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지요. 설사 지지율이 1%가 안 되어도 후보 기탁금을 내고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는데, 나오지 마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정치 담론이 만연하였습니다. “문재인은 호남에서 지지를 못 받고 있으니까 대선 후보는 물론, 정치 지도자로서 곤란하다.” 이 나라가 호남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호남이 이 나라의 유일 성지가 아닐 바에는 이런 담론은 기본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폄훼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도 안 되지만, 특정 지역 출신이라거나 특정 지역에서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 정치적으로 우월한 어떤 권리나 지위를 부여하려는 생각은 "국민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한 헌법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담론이 워낙 드세다 보니, 문재인도 4.13 총선에서 이와 비슷하게 말하였던 모양입니다.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면, 미련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다 보면, 이를 염두에 둔 듯, 호남에서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으니까 약속 지키라고 하는 내용의 댓글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데일리안에서 알앤서치에 의뢰하여 조사한 10월 첫주 정기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전국 지지율을 보면, 반기문이 26.6%로 1위, 문재인이 20.1%로 2위, 안철수가 8.1%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의 결과와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런데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놀랍습니다. 지금도 여론조사에 큰 관심이 없는 국민을 붙잡고 호남에서 대선후보 지지율이 어찌 되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답변하는 분이 꽤 될 겁니다. “호남에서는 안철수가 1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오늘 발표한 결과는 딴판입니다.
1위 문재인 18.6%
2위 박원순 13.1%,
3위 반기문 10.1%
4위 안철수 9.3%
5위 안희정 6.2%
안철수가 호남에서 2위는 고사하고 4위를 마크하고, 1위 후보의 지지율의 반토막에 불과합니다. '안철수는 호남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호남에서 지지받지 못하는 안철수는 대선 후보 자리에서 사퇴함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이리 변론할지 모르겠습니다. “안철수가 언제 호남에서 지지받지 못하면 후보 사퇴한다고 하였나? 그건 문재인이 하였지.“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 제일 호남호남거렸습니까? 안철수와 그와 함께 하는 정치인들이 아니었던가요? 그렇다면, 안철수가, 명시적으로 말하든 안 하든, 호남 지역구 의석이 태반인 호남 자민련 국민의당 소속이고, 호남이 이 나라의 야권 핵심 기반이라고 하면서 호남에서 지지를 못 받으니까 물러나라고 외쳤던 정치 집단답게, 누가 시부렁거리기 이전에 스스로 대선 출마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문재인이 전북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4.13 총선 때의 발언을 다시 언급한 모양입니다. 이는 이 약속이 호남 유권자와 전체 국민, 지지자에게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해 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호남에서 1위 하고 전국에서 2위 지지율의 후보에게 호남에서 지지하지 않으니까 물러나라는 헛소리는 이제 하지 맙시다. 오히려 허구한 날 '호남'거리면서 호남에서 4위로 추락한 안철수에게 그들의 소신을 지키라고 말해 줍시다. 그것이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는 접근입니다.
그럼.
ps 1. 관련 여론조사 기사
PS 2.
갤럽 여론조사에서 안철수가 겨우 어쩌다가 딱 한번 1위 하니까 원고지 52매 분량의 여론조사 분석 기사를 쓴 한걸레 성한용 선임기자, 그리고 안철수가 더 확장성 있다며 빨아대던 정석구 편집인, 신승근 에디터는 이 엄중한 상황에서 특집 기사는 못해도 칼럼 한 꼭지는 써야 하지 않을까요? 제목은 정직하게 "호남은 안철수를 버렸다."라고 쓰고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