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뭐 적당히 현실반영하면서 그걸 소재로 한 가벼운 로코쯤 되겠거니 했습니다.

힘든 현실 이야기 하면서 눈물좀 짜내고 최대한 불쌍하게 만들어 놓고 둘이서 알콩달콩 사랑으로 현실을 견디는 뭐 그런류?

근데 이건 뭐.. 갑자기 푹 찌르고 들어오는데 디게 아프네요. 예전에 미생봤을때 그 비슷한 느낌.

냉정한 현실인식 전혀 로맨틱 하지 않은 선택들에서 오는 단호한 나레이션이 너무 날카로워서 보다가 정신이 번뜩.

기본 상황설정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설정인데

보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너무 현실적이게 느껴진달까.

"다들 달려가고는 있는데 이게 꿈에 가까워지는건지 아니면 멀어지는건지 감이 잘 안와서..

그래서 먼저 가본 사람들은 어떻게들 사나 궁금해져서요."

"그런거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는 안되죠.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

잘 아시겠지만 이미 모든게 포화나 고갈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나아지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기준도 새롭게 새워야겠죠. 가령 예를들자면..."

"결혼.. 같은거요?"

"네."

세상이 나아질 리가 없으니 당연히 내 인생도 더 나아질 리가 없다.

더 나은 내일이 아니라 최악의 내일을 피하기 위해 사는 걸지도 모른다.

사랑해서 결혼하는건 금수저들이나 하는 의식이다.

이제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먹고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한다.

이 부분부터 뭔가 느낌이 오기 시작했어요.

"만만하게 보는거 같아서 그러지 만만하게. 니 순하다 싹싹하다 그기 칭찬인줄 아나?

그기 다 시부모 말 잘듣고 찍 소리 하지 마라 그 뜻이다. 아나?

결혼식 안하는 것도 혼전에 같이 산다꼬 무시하는거 아니면 뭔데?"

"아니.. 뭘 그리 또 꼬아서 생각하노.."

"사실이니까 그러지, 사실이니까.

그래, 니 내 말 나온김에 한번 물어보자. 니.. 결혼은 와 할라 하는데?"

"와 할라 하기는 결혼을.. 아니 나 서른에 결혼하는게 이상한 일이가?"

"일은? 글은?"

"... 안쓴다 이제. 접었다."

"그카면 취집한거네? 시집이 아니고?"

"와. 뭐. 좀 그러면 안되나?"

"내가 니 취집이나 하라고 서울대 보낸줄 아나? 니 이럴라고 느 아부지한테 그래 구박받으면서 글쓴기가? 고작 이리 될라고?"

"그럼 뭐?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나? 딸래미 뭐 유명작가라도 되면 덕이라도 볼라꼬 좀 기대했었나?"

"내 니 덕 좀 볼라했다 왜. 본전 생각나서 아까버 죽겄다.

내가 내준 니 입학금, 느 아부지 몰래 보내준 서울 생활비, 니 리딩갈때 입고갔던 그 백화점 원피스 다 내놓고 가라.

취집을 할라믄.. 제대로 하든가. 남들 받는 빽 하나 못 받으면서. 티디하그로... "

"..... 뭘 가진기 있어야 받지, 가진기. 뭐가 있는데 우리집?

딸래미 방 하나도 못 구해주면서 뭐를 받을라하노, 양심이 좀 있어라!

뭐 글? 그런 것도 집에 돈이 있어야 쓰는기다.

돈 없으면 고마 잠이나 자야지. 꿈을 어찌 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