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아이에겐 왜 슬픈 모습만 바라죠?"
[오마이뉴스 박상규/김진석 기자]<청소년 가장의 희망일기>가 첫 선을 보입니다. 삼성과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준비하는 <청소년 가장의 희망일기>는 청소년 가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인적 네트워크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희망일기를 보내준 272명의 청소년 가장 중 20명을 선정해 1주일마다 1명씩 보도할 예정입니다. <청소년가장의 희망일기>를 통해 많은 네티즌들이 청소년가장의 희망지킴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어도 보영이는 밝은 모습이다.
ⓒ2004 김진석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272편의 <청소년 가장 희망일기>를 보다가 내 가슴에 확 꽂힌 문구다. 김보영(가명·중2). 어린 보영이에게 세상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 걸까. 보영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니네 집으로 가면 안 되니?”라는 제안에 보영이는 “15살 소녀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결국 보영이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 복지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두운 표정에 상대방을 잔뜩 경계하는 아이일 거야.’ 내게 보영이의 존재는 이렇게 다가왔다. 우울하고 아이답지 않은 그 문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가 김보영인데요.”
내 앞에 나타난 아이는 밝은 모습에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도 드러났던 걸까? “어른들은 저 같은 아이들에게 항상 슬픈 모습만 바라죠”라는 보영이의 어른스런 말이 뒤따랐다.
사실 보영이는 법에서 말하는 ‘청소년 가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6년 전 부모님이 이혼한 후 남동생(초5),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은 평범한 한부모 가정과 거리가 있다.
택시 운전을 했던 보영이의 아버지는 수입이 적었다. 어린 아이들 걱정에 수시로 집에 들러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청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이 역시 수입과 노동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아이들 때문에 바쁘지만,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주지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아버지 얼굴은 거의 못 봐요. 일주일에 두 번 보면 많이 보는 편이에요.”
“그럼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겠네?”
“…. 이야기를 나눠 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꼭 그렇지도 않아요.”
“그럼 밥이랑 빨래는 누가 해?”
“…….”
늘 해 오던 일이라 집안 살림은 하나도 힘들지 않단다. 그러나 보영이의 손은 살림을 꾸리기엔 너무 작아 보였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부모의 품안에서 응석을 부릴 9살부터 응석 대신 밥과 빨래를 벗 삼아 온 그 손은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애써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보영에게 더는 묻지 못했다.
"밥하는 거랑 빨래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2004 김진석
그럼 보영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운동회나 체육대회 때가 제일 싫어요.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오셔서 함께 점심을 먹지만 동생과 저는 둘이서 시간을 보내니까요. 그리고… 저녁이 오는 게 싫어요.”
저녁이 오는 게 싫다니? 설명인즉, “자신이 ‘튀어’ 보이기 때문”이란다.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제가 걸어가는 길의 방향이 달라요. 친구들은 모두들 학원으로 향하지만 저는 집으로 향해요. 저도 다니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못 돼요.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예요.”
가난한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뚜렷이 구분되는 게 싫은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웃었고 힘든 모습은 최대한 감추려고 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잘 웃는 아이가 되었다. “살기 위해서 웃어야 했다”는 게 보영이의 설명이다.
“엄마는 안 보고 싶니? 엄마가 밉지는 않아?”
“…….”
슬쩍 엄마 이야기를 꺼내자 보영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답변을 포기할 즈음,
“항상이요. 특히 동생이랑 둘이서 잠 잘 때요.”
보영이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시 이어지는 긴 침묵. 보영에게 엄마는 늘 그리움의 대상인 듯했다.
"선생님은 내게 엄마이자 삶의 활력소예요“
이런 보영이의 세계에 ‘희망’을 준 건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다. 보영이는 1년 전 담임 선생님을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희망일기>에는 선생님에 대한 보영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생님은 저의 어머니이자 삶의 활력소이며 행복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전 저에게 따뜻한 사랑과 미소로 절 치료해 주신 저의 선생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저도 제가 치료해 줄 수 있는 아이들을 찾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선생님이란 직업은 흔하고 평범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삶의 빛을 더해주는 최고의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말 걸어 주고 친구처럼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선생님이 고마웠다”는 게 보영이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이런 보영이의 감정이 이 땅의 청소년 가장들과 결손 가정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게다가 보영이처럼 법정 청소년가장이 아닌 아이들은 사회적 관심에서 더욱 멀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 꿈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보영이.
ⓒ2004 김진석
보영이의 꿈은 선생님이다. 1년 전 담임 선생님처럼 어려운 아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가까운 친구처럼 편안하고 엄마처럼 따뜻한 선생님.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료해 주는 미래의 자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단다.
“저도 제가 치료할 수 있는 아이들을 찾을 거예요. 선생님이란 직업은 흔하고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겐 큰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크지는 않지만 세밀한 관심으로 아이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될 거예요.”
잠시 우울해 하던 보영이는 꿈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참을 울고 난 사람이 비로소 지어 보이는 수줍은 웃음에는 농도 짙은 희망이 담겨있는 법. 그래서일까. 보영이의 밝은 모습에서 강한 희망의 기운이 느껴진다. 보영이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다시는 세상에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width=600>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삼성 공동캠페인 '청소년가장의 희망일기' 기획에 따라 취재ㆍ작성되었습니다.
이글 보고 왠지 모를..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