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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39235
    작성자 : 성성2
    추천 : 72
    조회수 : 2697
    IP : 115.94.***.142
    댓글 : 29개
    등록시간 : 2015/07/28 12:57:40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9235 모바일
    옛 사랑 이야기 4
    옵션
    • 창작글

    한 줄 요약 : 은둔하며 지내는 A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B와 처음 연락을 주고받음. 


    한 줄 요약 : A와 B가 처음으로 만남. A의 죽었던 연애 세포가 아주 조금씩 세포 분열을 하려 준비 중. 


    한 줄 요약 : A와 B가 처음으로 함께 술자리. 그리고 말을 트게 됨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넌 나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어?"

    "너를 처음 본 커피숍에서.."

    "왜?"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너를 보고, 생각보다 예뻐서... 그러는 너는?"

    "너랑 몇 번 술 마시다가. 적어도 이 자식 바람은 안 피겠구나 생각 들더라고."


    4. 그 후 몇 권의 일을 그녀와 함께했다. 전화 통화보다는 서로 메신저를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다. 직접 만났을 때, 전화 통화할 때는 약간 
    차갑게도 느껴졌지만, 글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여자 대학 동기 같았다.

    "어울리지 않게 이모티콘도 쓰네."

    "몰라. 예전에 친구가 보낸 거 받았는데, 이게 계속 떠. 가끔 나도 민망해. 그나저나 맡긴 일은 잘하고 있지?"

    "응. 컴퓨터 켜져 있으면 일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너도 다른 남자들처럼 컴퓨터로 야동 보고 그래?"

    순간 움찔했다. 아무리 내가 야동 품번까지 외울 정도의 야동 매니아는 아니었지만, 혈기 왕성한 남성으로서 가끔 한 편씩 감상하고는 했다.

    "어...어.. 우리가 그런 질문하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친구끼리 어때. 시원하게 털어놔 봐."

    그녀가 나를 친구로 인정하고 있다는 게 기뻤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솔직히 가끔 한 편씩 본다며 털어놨고, 그녀는 '너도 어쩔 수 없는 
    수컷이구나!' 라며 남자로도 인정해줬다. 그날 메신저로 그녀에게 나는 '친구', '수컷'으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내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편집장인 선배가 그녀를 일로 괴롭힐 때 그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찾았다. 

    안주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나온 소주를 마시며 그녀가 말했다.

    "아.. 쓰레기 같은 자식. 매번 퇴근하기 30분 전에 '회의하자', 아니면 일거리를 던져 줘"

    "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나 보지. 천천히 마시지그래 아직 안주도 안 나왔는데."

    "아니 한 두 번 이어야 너그럽게 이해하지. 그리고 왜 그렇게 말이 많아."

    선배가 말이 많은 건 나도 인정한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이 닥쳐서 족보를 요청하면 선배는 빈 강의실에서 나를 붙잡아 놓고 교수님보다 
    더 열띤 강의를 해주고는 하셨다. 물론 선배가 찍어 준 문제가 시험에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그 형, 학교 다닐 때도 별명이 화보였어..."

    "화보? 그 임꺽정 같은 산적 외모에?"

    "아니 화이트 보드 줄여서 화보. 후배들이 뭐 만 물어보면 매번 과방의 화이트 보드에 쓰면서 알려줬거든."

    "사무실에 화이트 보드 없는 게 다행이네. 대학 때부터 수다쟁이의 싹수가 있었구만.."

    "너 그런데, 나랑 선배의 뒷담화 하고 난 뒤 내가 만일 선배한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

    "응. 너 입 무겁잖아. 혹시나 편집장 귀에 들어갔다 하면 너랑 나랑 인연은 끝이야. 너한테 외주 안 줄거야."

    외주가 끊기는 것보다 그녀와 인연이 끊기는 게 더 내게는 두려웠다. 선배에 대한 뒷담화가 끝나면 그 뒤 우리가 주로 나눴던 이야기는 
    영화 본 이야기,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 그리고 서로의 친구들 이야기 등 서로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도 우리 
    사이는 외주자 > 친구 > 가끔 술 마시는 친구에서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다.

    하늘이 맑은 가을의 어느 주말 생뚱맞게 바다가 보고 싶었다. 동해는 거리도 멀고, 당일치기로는 힘들 것 같아 가까운 강화도로 가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강화도에 대해 검색했는데, 지금 새우젓 축제라는 것을 하는 것을 봤다.
    '정말 전국에 별의별 축제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서는데, '혼자 가기 싫었다.'
    누구에게 연락해 봐야 되나..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저기 혹시 지금 바빠?"

    "응. 네가 존경하는 선배가 금요일 오후에 일거리를 잔뜩 주셔서 밀린 아침 드라마 보면서 일하고 있어. 왜 전화했어? 
    드라마 봐야 되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해."

    "아 바쁘구나. 강화도나 바람 쐬러 가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그동안 우리는 저녁 7시 이전에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뜬금없이 웬 강화도?"

    "강화도에 새우젓 축제를 한다고 하는데, 구경이나 할까 해서."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크게 웃는 것이 들렸다. 

    "푸하하하... 새우젓? 새우젓 축제?"

    "응. 바다도 보고 축제도 볼 겸 가려고 했지."

    잠시 그녀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에이 모르겠다. 가자. 네가 데리러 올 거지?"

    "응 데리러 갈게. 예쁘게 입고 기다려."

    "새우젓 축제에 무슨 예쁘게 입고 가냐. 김장을 앞둔 전투적 아줌마 복장으로 가야지."

    "뭐... 그러시든지."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앞에 전투적 아줌마 복장이 아닌 치마를 입은 그녀가 서 있었다. 그동안 그녀를 만나면서 한 번도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낡은 내 차에 함께 탔다. 관심 없는 척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시선이 한 번씩 그녀의 다리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왜? 튼실한 여자 사람 다리 처음 봐?"

    "아니야. 운전하다 보면 원래 좌우를 잘 살펴야 해."
    급하게 앞을 바다보며 궁색한 변명은 했지만, 그녀는 내가 그녀의 다리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좌우 같은 소리 너 오른쪽만 봤잖아. 눈은 음흉하게 쫙 찢어져서."

    "미안. 운전에 집중할게. 그런데 오늘 왜 치마 입은 거야? 평소답지 않게."

    "고등학교 때 학교가 언덕에 있어서 매일 같이 등반하다 보니 다리가 두꺼워져서 치마 잘 안 입거든. 근데 바지는 다 빨아서 입을 옷이 없어서 
    치마를 입었어. 그리고 내 다리에 관심 끄셔. 변태 태국인아!"

    "응 미안."

    그녀에게 네 다리 전혀 두껍지 않아. 그리고 치마가 더 잘 어울리네 이 말은 해주지는 못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으면 어떡하지 하며 찾아간 새우젓 축제에는 뜻밖에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치 우리 동네에서 단오나 추석 때 마을 잔치를
    크게 하는 수준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축제라기보다는 새우젓 장터가 크게 열려 있었고, 한쪽에 먹거리 장터와 체험하는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다정하게 손은 잡고 있지 않았지만, 나보다 더 신나서 구경하는 그녀를 보며 '우리가 지금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성아 이리 와 봐."

    새우젓을 구경하고 있는 나를 그녀가 다급하게 불렀다. 

    "야.. 너 김장 담그기 체험해봐."

    "안 해. 김장하다 옷 버려. 갈아입을 옷도 없고..."

    "앞치마 주고 고무장갑도 준 데. 옷 안 버려 한 번 해봐. 재미있을 거 같은데."

    "너나 해. 넌 앞으로 시집가면 김장할 건데 미리 체험하고 좋지."

    "니.가. 해"

    결국 나는 초등학생, 그리고 아주머니들 틈에서 앞치마와 긴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이
    즐거운지 마치 어린 시절 김장하는 날 어머니 옆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지켜보던 나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아가씨가 해야지. 왜 남자친구를 시켜." 라며 웃으며 말씀하셨다.
    키 차이가 20cm도 더 나는데 삼촌과 조카가 아닌 연인관계로 인식해주신 아주머니가 고마웠다. 

    고향에서 다른 건 다 해봐도 김장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은근히 옆에 있는 아주머니, 초등학생과 경쟁하는 분위기였다.

    배추를 버무리면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야.. 나 할 말 있는데. 해도 돼?"

    "뭔데? 교대하자는 말 빼고 다 돼."

    "너 나랑 사귀자."

    내가 생각해도 참.. 멋없는 놈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강화도의 바닷가도 아닌 배추를 버무리면서 고백을 하다니..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땀 흘리며 배추를 버무리는 나를 지켜보며 말했다.

    "왜 배추 버무리다가 나랑 너랑 버무려지는 상상했냐?"

    이 여자.. 나보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아니 말을 해도 꼭 그렇게. 그게 아니고 너랑 앞으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닥치고 김치에 집중하셔..."

    괜히 배추를 버무리면서 그녀에게 말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긴 나도 이런 상황에 고백을 받으면 어이없을 것 같았다.
    김장체험을 마치고, 내가 담근 김치 일부와 새우젓 약간을 선물로 받았다. 그녀는 선물로 받은 새우젓 봉투를 들고 말했다.

    "다음에 여자친구 데리고 절대 이런 데 오지 마. 좀 낭만적이고 분위기 있는 데 다녀라."

    "그래야지. 여자친구랑 절대 이런 데 다시는 안 올 거야. 그리고 아까 내가 한 말은 그냥 흘려버려."
    부끄러웠다. 그리고 거절당할 걸 알면서 고백한 김치 냄새가 잔뜩 배어있는 나 자신에게 후회됐다.

    "흘리긴 뭘 흘려. 나도 다시는 남자친구한테 김장 체험 이런 거 안 시킬 게."

    "남자친구...??"

    나는 그날 치마가 어울리는 키 작은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녀는 아줌마보다 김장을 잘하는 키 큰 남자친구가 생겼다. 
    해질녘 새우젓 봉투를 들고 내 앞에서 걷고 있는 그녀에게 시원한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출처 사랑 이야기 쓰는 게 정말 힘드네요. 헉헉
    성성2의 꼬릿말입니다
    김장체험을 마친 나를 그녀는 안아주려는 듯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난 다급하게 말했다.

    "오지 마! 고춧가루 묻어." 

    그리고 그날.. 나의 낡은 차에는 새우젓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향보다 내게는 달콤하고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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