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헤어졌단 어느 분의 글에 눈팅족 생활을 접고 답글을 달기 위해 가입한 늅늅입니다.
그 분도 장기 연애였던지라 공감이가서 몇마디 던져 놓았지만. 제가 남긴 댓글만큼 전 쿨하지도 깔끔하지도 못한 사람이더군요.
28년 세월 속에 한해전에는 고시에 희망품고 하루를 던지던 날도 있었고, 그 한해 전에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법관에 눈물 짓던 때도 있었고.
더 한해 전에는 2년째 접어든 우리의 연애의 소중함에 감사하던 날도 있었네요.
참 긴 연애라고 생각하는데도 이별은 단 하루도 아니 단 10분도 걸리지 않더군요. 추석날의 짧은 문자, 짧은 통화로 긴 연애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돌아오는 건 수신거부와 카톡차단일뿐 공중전화로 물으면 할이야기 없다고 끊는 이야기뿐.
그러다 마음을 정리하고자 버텨오던 하루하루가 오늘에 닿았을때 나도 걸어놓았던 차단을 푸니 그 사람의 남김말에는
어느 날부터는 당연시 여기던 하트표가 빨갛게 물들어 있더군요. 헤어진 후인데. 이게 뭐지?
아닌데, 이건 아닌데, 이건 너무 앞뒤가 안맞는데. 그 사람이 보여준 행동이 얼만데 이건 아닌데. 괴로워하다 좁은 자취방에 소주를
마시며 이제 안쓰는 싸이며 지갑속에 사진이며 하나하나 정리하려는데 정작 손에는 힘이 안들어가고 눈에서만 눈물이 흐르네요.
싸이를 정리하다보니 5년전에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뚱뚱한 남자가 되어있고 고시에 실패한 법대생 고학번
꿀꿀동자가 거울속에서 절 쳐다보고 있네요. 날 항상 믿어주고 지지해준다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말한마디
변명 한마디, 두 문장 이상의 대화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급하기 떠난 이유가 뭘까. 그 간의 믿음을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텐데라고
자위해왔던 다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 화가나면서도 폭발할것 같진 않고 눈물도 안나지만 멍한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헤어진 후에 들려주던 주위 사람들의 저에 대한 풍문이 다 헛소리라고 믿었던 2주가, 그 2주의 밑거름이 되었던 5년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이네요. 처음 시작할때 통통하고 웃는게 예쁘던 그 사람은 어느 순간 날씬하고 예쁜 사람이 되었는데
저는 꿀꿀동자가 되어서 인가봐요. 내가 그 사람보다 연애경험도 깊은 사랑도 많이 해봤다고 여유를 부렸던 탓인가봐요.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하고 마음을 놓은 제 탓일테고 난 조만간 다시 살빼고 돌아갈 거야 하고 안일했던 제 탓인가봐요.
평생 운동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데 손에서 놓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하루를 오직 한가지로 채운 탓인가봐요.
그런데 미워할 수 없는 건 그 사람이 참 잘해줬다는 이유때문일테죠. 비록 내 얼굴에는 스킨로션이 맞지 않는데 억지로 사주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향수는 A인데 듣고도 B를 사주었더라도 그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겠죠.
다만 저는 끝이 이런 것이. 그 동안 알게모르게 해왔던 저의 노력이 한순간 끝나버린 것이 너무 허무해서 취하지도 않는 소주를
마시며 눈물도 못흘리고 화도 못내고 이렇게 글만 쓰고 있네요. 제 앞에는 빼야할 30kg과 이제는 바꿔야할 진로와 못난 원망과
정리하지 못한 사랑만 남아있어서 망연자실합니다. 소주 한 잔 했습니다. 참 견디기 힘든 하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