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백성을 구하라!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 힘 없는 백성의 편이 되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떼인 군도(群盜), 지리산 추설이 있었다.
쌍칼 도치 vs 백성의 적 조윤
잦은 자연재해, 기근과 관의 횡포까지 겹쳐 백성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 가는 사이, 나주 대부호의 서자로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은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소, 돼지를 잡아 근근이 살아가던 천한 백정 돌무치는 죽어도 잊지 못할 끔찍한 일을 당한 뒤 군도에 합류. 지리산 추설의 신 거성(新 巨星) 도치로 거듭난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
망할 세상을 뒤집기 위해,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향해 도치를 필두로 한 군도는 백성의 적, 조윤과 한 판 승부를 시작하는데...
다음 영화 소개.
인물
돌무치=도치
이 영화의 양대 주인공 중 하나인 돌무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백정입니다. 그러다가 조윤에게 살인의뢰를 받고부터 변하게 됩니다.
돌무치는 의뢰를 받고 죽이려고 하나 망설이는 바람에, 서투른 바람에 실패하고 돈을 돌려주며 포기합니다.
그 바람에 조윤에게 집이 불태워지고,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 또한 죽을 뻔 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에 가득 차 조윤을 죽이려고 하나 실패하고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곧 지리산 추설에게 구해지고 도치라는 이름을 받아 추설의 일원으로 활동합니다.
또렷하지 않은 자아 묘사
초반부에 도치는 동생과 아이들을 속여 뜯어먹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모습이나, 높으신 분께 무조건 굽신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가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점을 알게 해줍니다. 그런 성격이 살인을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자, 살인을 거절하게 만드는 원인이었죠.
이 때 집과 가족과 머리칼을 잃게 되면서 복수의 화신이 됩니다. 처음에 언급되었던 '소나 돼지를 잡을 때조차 망설인다던'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되게 길을 막는 시민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죽여버리는 모습과, 귀신이 되어서도 복수하겠다는 대사등으로 그의 복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묘사가 추설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흐물해집니다.
도치가 조윤의 여동생에게 죄책감을 품는 것은 개연성은 있으나 설득력을 주지는 못 했습니다. 뜬금없이 조윤의 출산후 죽게되는 것을 보며 조윤의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도치가 죽이려던 사람이 결국 죽게 된 모습을 보며 죄책감을 가졌다는 것을 느껴주게 할 만한 연출, 묘사가 전연 없습니다. 오히려 벽 틈으로 몰래 엿보던 모습에선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마저 느껴집니다. 아이들과 같이 엿보고 있는 모습이 더욱 그렇게 느끼게 해주고요.
게다가 돌무치가 도치로 변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줘야할 도치로서의 첫 활약에서조차 변화의 모습을 비춰주지 않습니다.
도치가 상투를 자르는 장면에서 나레이션이 '조선 남성의 상징이며, 어른의 상징이고 곧 권위인, 사람들이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상투를 자르는 행위가 백성의 의식을 흔들 정도의 충격을 주는 일이지만, 그것은 그저 도치의 취미에 불과했다'고 말하면서 쐐기를 박습니다.
또 도치가 상투를 모아 만든 상투 가발을 남몰래 써보면서 '잃은 머리칼에 대한 아쉬움, 상투에 대한 부러움' 등을 보여주는데, 수련을 하고, 땡추의 말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고, 의식을 치름으로써 추설에 완전히 소속 되었다는 모습등, 돌무치가 도치로 변했다고 보여주는 듯한 장면들 다음에 복수나 추설의 사상을 곱씹기는 커녕 머리칼을 부러워하는 모습에서 장면의 괴리가 심합니다. 도치로서의 변화가 드러나는 묘사들 틈바귀에 이런 게 있었다면 복수의 화신에 인간미가 더해진 것이 되었을 수 있지만, 이러면 전 장면들의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복수심에 대한 묘사가 후에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어서, 작전 중에 조윤을 보고 흥분해서 노려보거나, 화살을 약속된 것보다 먼저 당겨버리거나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근데 이게 전 장면과 잘 섞이지 않습니다. 회의 중에 조윤의 이름을 듣고 분노하는데, 이게 그 전 장면에서 도치가 추설에 섞이고 천진한 모습으로 잘 지내는 모습인지라, 꼭 그간 즐거움에 복수를 잊었다가 떠올린 듯한 모습이었죠.....
순서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설명과 연출이 정말 부족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조윤의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인데, 이게 차라리 섞이기라도 했다면 다행이지만, 복수자의 모습을 후에 완전히 묻어버리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조윤
높으신 분이 기생과 놀다가 생기게 된 아이인데, 어머니 덕에 풍양조씨일가에 서얼로 거둬지게 됩니다. 딸만 있던 집안이라 고민이었는데, 대를 이을 아들이 생기게 되자 크게 기뻐하죠. 곧 본처가 피나는 노력 끝에 아들을 낳게 되고, 나레이션 말마따나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동생을 죽이려하나, 마음이 여려 실패하게 되고, 그 모습을 들켜서 어머니는 죽고, 조윤은 거의 버림받은 존재가 되는데, 이 때 피나는 노력으로 10년 걸린다는 무과급제를 19세에 해내고, 무예도 같은 무과급제자들 10명은 너끈히 상대하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런 모습과 꾸준히 등장하는 '나쁜 권력자'의 모습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면서 얻은 직위나 능력으로 자신의 안녕을 추구하게 되는 모습으로 이어지면서, 도치와 완벽히 대비되는 악인의 모습으로 영화가 표방했던 주제를 보면 이처럼 멋진 캐릭터가 없을 것이나, 이 또한 후반부에서 흐물흐물해집니다.
유일한 후계자가 되기 위해 동생과 조카를 그렇게 죽이려고 했으면서 정작 조카임을 확인하자마자 망설이고 지키려하다니요. 이게 초반부 장면과 겹쳐보이기 때문에 그 때를 생각하면서 망설이고 동정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거라면 여자나 아이나 할 거 없이 마구 학살하거나 백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악한 모습은 차라리 안 넣었거나, 주변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장면을 넣었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를 보충하려는 의미에선지 후반부에 조윤이 아버지의 목을 조르면서 배반당한 충심에 좌절했다고 구구절절 말하는데, 이게 연출상으론 분명 진심을 말하는 모습인데, 정말 가문을 위해 일했다는 묘사가 작중 전혀 보이지 않아서(아무리봐도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저지른 행위들) 그저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고통스럽게 죽는 걸 지켜보는 장면이나, 아버지에게 죽은 남동생을 잊으라고 닥달하는 장면이 충심과는 아귀가 맞지 않는 것도 있고요. 막판에 조카를 살리기 위해 목을 내주게 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캐릭터성의 붕괴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이가 정말 자신의 조카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죽이는 모습같은 것을 넣었으면 더 좋았겠죠.
영화가 표방하는 주제를 생각해보면 차라리 조윤만 주인공으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인정이라곤 없는 진짜배기 인간말종으로 나왔으면 좋았을 겁니다. 표어도 바꾸고, 처음엔 생존을 위해 싸우다가 타락한 권력자가 되는 모습에, 결국 이기지도 백성을 구하지도 못하고 조윤 손에 사라지는 모습 같은 꿈도 희망도 없는 모습을 넣었다면 메시지 전달 측면에선 더 좋았을 겁니다. 인물도 흐물흐물해지지 않았을테구요.
이 영화의 메시지?
군도, 백성을 구하라!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
이런 메시지가 무색하게도 인물들이 보여주는 것은 주제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돌무치는 부패한 권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민중을 이끄는 리더이지만, 그 속내는 결국 복수가 끝나자 속죄자의 모습으로만 남았습니다.
조윤은 부패한 권력이지만, 결국은 그도 제도와 환경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리고 민중이 구원받았는가에 대한 묘사도 없습니다. 오히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적들의 모습이 '민중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모습인데, 분명 희망차게 연출되어있지만 곱씹어보면 절망적입니다.
결국 이러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사람 모두가 피해자이다.'인데, 정작 여러 장면으로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듯이 말해놓고 가해자는 누구인지, 무엇인지 교시해주지 않았으니 주제랑은 정말 거리가 멉니다.
차라리 '사람은 모두 개새키들이다.'라고 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포스터의 문구에서 느낄 수 있는 부패한 권력을 민중이 몰아내고 승리한다는 모습은 있긴 있었으나, 이것은 '과자 봉지에 과자 부스러기가 있으니 봉지에 과자가 있다.'라고 말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고 인간 군상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냐라고 한다면 들어 맞겠지만 그렇게 보면 실패입니다.
이쯤되면 정말 감독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시민들의 계몽이나 사회비판보다는 돈을 원했던 것이 아닐런지....
그냥 재미로 보는 이모저모.
음악, 배경
황무지 같은 배경과 음악이 웨스턴풍.
그런데 정작 시대적 배경은 조선이라 괴리감이 상당하더군요. 신선하다면 신선한 것이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놈놈놈>같은 만주 웨스턴을 찍는 게 낫지 않았을런지.
나레이션
나레이션의 관점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21세기 관점입니다. 이것 또한 포스터에 내걸린 영화의 주제가 진짜 주제임을 알 수 있지만, 정작 영화 자체가 흐물흐물해서....
화승총
왜 넣은 건지 도통 이해 안 가는 소품. 조윤이 이것으로 출중한 사격실력을 보여주며, '오호! 칼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총도 잘 쓰는군!'하는 감상을 주지만 그게 전부......
도치와의 싸움에서 일발역전 무기로 등장하나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기관총
위에 화승총 씬부터 꾸준히 나오는 소품입니다.
후반부의 도치의 기관총은 옛 웨스턴 영화인 <쟝고>(1966년)를 떠오르게 합니다. 도치의 고기 수레나, 쟝고의 관이나 둘 다 죽은 것을 담는 것이 강력한 무기를 품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아쉬운 점은, 저것이 극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저 패러디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중반부부터 기관총이 슬쩍슬쩍 내비치다가 후반부에서 쓰여지는, 그것 뿐입니다. 만약 기관총이 조윤 측에서 백성들을 학살하거나 진압하는데 쓰이는 장면이 있었다면 후반부의 도치의 기관총 사용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물건에서 백성들을 구하는 물건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됨으로써 <군도>의 주제를 더욱 확고하게 해주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러한 것이 없었기에 저 기관총은 <군도>의 것이 아니라 <쟝고>의 것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도치가 기관총 수레를 끌고가는 모습은 확실히 복수자이자 징벌자인 모습이었는데 그런 게 없으니 좀 밋밋했습니다.
작품이 웨스턴 느낌 물씬 나는 걸 보면 정말 그저 패러디일뿐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