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요즈음 신문을 열면 국민연금제도에 관한 기사가 지면을 온통 도배하다시피 할 때가 많습니다.<br>보수언론은 이를 틈타 정부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구요.<br>오늘 아침 한 보수신문은 다음과 같은 큼직한 제목을 단 기사를 올려놓고 있더군요.<br><br><font color="#0000FF"><br>“난파 위기 국민연금 ... 국민 지갑만 터나”<br></font><br><br>신문을 읽다가 이 제목을 보고 혼자 한참 웃었습니다.<br>이 제목이 말하고 있는 두 가지가 모두 사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br>작문 솜씨도 이 정도면 천재급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br><br>우선 첫째로 지금 국민연금이 난파 위기에 처해 있다는 주장은 과연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br>최근 국민연금에 관한 논쟁에 불을 당기게 된 계기는 5년마다 한 번씩 수립되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입니다.<br>5년 주기로 국민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평가하고 개선방향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올해가 바로 그 시점이란 말입니다.<br><br>신문기사를 대충 읽으면 갑자기 국민연금제도의 재정에 큰 문제가 발견되어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br>진실은 그게 아니고, 정례적으로 재정 건정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진실입니다.<br>그리고 그 문제점은 국민연금 재정전망을 새로 평가해본 결과 저출산,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기금 고갈 예상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빨라진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br><br>이걸 갖고 어떻게 갑자기 국민연금이 난파 위기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br>그리고 만약 이것이 위기 상황이라면 이 정부 들어와서 그런 문제가 새로 발생한 게 아니고 1988년 출범 당시부터 안고 있던 문제인 셈인데요.<br>우리의 국민연금제도는 당시 정권의 포퓰리즘 때문에 출범 당시부터 재정건정성에 문제를 안고 태어났습니다.<br><br>두 번째로 정부가 국민 지갑만 털려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어도 너무 터무니가 없습니다.<br>국민연금 보험료가 실제로 세금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세금이 전혀 아닙니다.<br>우리가 민간의 보험회사에 연금상품 가입과 더불어 내는 보험료와 아무 다를 바 없는 보험료일 뿐입니다. <br>내가 나중에 연금이라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내는 보험료인데 이게 어찌 지갑을 털리는 일입니까?<br><br>원칙적으로 노후의 생계안정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책임하에 수행되어야 할 일입니다.<br>즉 각 사람이 일을 해서 돈을 벌 시기에 노후를 위한 저축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는다는 말입니다.<br>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는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br>당장 쓰기에 급해 은퇴 후의 대비를 하지 못해 빈곤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br><br>그렇기 때문에 도입된 제도가 바로 국민연금이란 강제제축 프로그램입니다.<br>정부가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 범위 내에 있는) 근로소득의 4.5%를 보험료라는 명목으로 납부하게 만드는 강제저축 프로그램이 바로 국민연금제도입니다.<br> (나머지 4.5%는 고용주가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br>그리고 이렇게 거둔 보험료의 원리금은 은퇴 후의 연금으로 지급하게 되는 원리입니다.<br><br>정부가 국민의 지갑을 턴다는 말은 공연히 세금을 거둬 쓸모없는 데다 쓸 때나 통용될 수 있는 말 아닙니까?<br>거두어진 보험료가 전액 연금으로 지급되는 마당에 어떻게 국민의 지갑을 턴다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br>국민연금의 기본 성격에 대한 무지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br><br>우리가 또 하나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br>만약 기금 고갈 시점이 3년 앞당겨진 것만이 문제라면 보험료율의 소폭 조정으로 대처가 가능합니다.<br>그런데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소득대체율을 45%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입니다.<br><br>소득대체율이란 연금이 가입 기간 동안 평균소득의 몇 %에 해당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br>현재의 계획대로라면 소득대체율을 매년 0.5% 포인트씩 낮춰가 2028년에는 40%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br>그런데 이 40%의 소득대체율로는 은퇴 후의 생계안정이 어려우니 그 계획을 포기하고 <br>45% 수준으로 고정시켜야 한다는 일부 위원의 주장이 제기된 것입니다.<br><br>이렇게 소득대체율을 큰 폭으로 올린다면 보험료율의 대폭 인상도 불가피해집니다.<br>그래서 보험료율 인상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의무가입 기간을 늘리는 동시에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춰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br>이와 같은 정황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국민의 지갑만 털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나올 수 없습니다.<br><br>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의 국민연금제도는 출범 당시부터 재정 건정성에 문제를 안고 태어났습니다.<br>1988년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복지시대’가 열린다는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국민연금제도를 출범시켰습니다.<br>출범 당시의 보험료율은 3%에 불과했지만 소득대체율은 무려 70%나 되었습니다.<br><br>지금 보험료율이 9%이고 소득대체율이 45%인데도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판국에 3%, 70%로 시작했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br>바로 이런 선심성 프로그램이 포률리즘의 대표적 사례지요.<br>국민연금제도의 출범 배경에 정권의 정통성 결여를 메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나중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선심을 쓴 것이겠지요.<br><br>바로 이런 불행한 출발이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아온 셈입니다.<br>보험료율 인상을 반기는 사람도 없고 연금 삭감을 반기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역대 정부는 이 두 가지롤 모두 실천에 옮겨야 하는 멍에를 지게 되었으니까요. <br>국민연금제도의 재정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출범 당시부터 안고 있었던 문제였지 최근 몇 년간에 새로 발생한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br>이것이 바로 아무도 말하지 않는 우리 국민연금의 불편한 진실인데, 우리 국민 중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br><br>보수 언론은 최근 국민연금 수익률이 급격히 하락한 것이 재정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라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br>그리고 그 배후에는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1년 넘게 비어 있다는 사실이 작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구요.<br>바로 이 점을 들어 마치 현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것이지요.<br><br>그러나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공석상태였을) 2017년만 해도 국민연금 수익률이 무려<br>7.26%에 이르렀습니다.<br>그러던 것이 올해 1.16%로 크게 떨어진 것입니다.<br>2018년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이 한 해의 수익률 추락으로 인해 국민연금이 난파 위기에 처해 있다?<br><br>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억지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br>기금운용본부장의 부재나 수익률의 하락이 국민연금 재정을 악화시킨 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br><br>마지막으로 하나 전문가로서 말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br>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br>보수 언론은 그와 같은 우려를 신이 나서 전달하고 있습니다.<br><br>그런데 전문가로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사태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br>국민연금의 자금 조달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적립방식(reserve-financed method)과 부과방식(pay-as-you-go method) 두 가지가 있습니다.<br>지금 우리는 기본적으로 적립된 기금의 범위 안에서 연금이 지급되는 적립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기금의 고갈 여부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br><br>부과방식은 기금과 관련 없이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거둔 보험료로 은퇴자의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br>따라서 기금의 고갈 여부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br>다른 나라들의 예를 보면 적립방식으로 시작했지만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부득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있습니다.<br>인구 구성이나 경제 상황의 변화 때문에 그런 일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br><br>최악의 시나리오로 우리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습니다.<br>그때가 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옵션이 신중하게 논의되기 시작할 것입니다.<br>이미 보험료를 낸 노년세대가 아무런 연금 혜택을 받지도 못하는 상태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br>그렇기 때문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겠지만 결국 부과방식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br>그러니까 보험료만 내고 연금은 못 받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br><br>가능하면 기금 고갈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br>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입니다.<br>보험료 부담 증가나 연금 삭감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란 장애물을 현명하게 넘어가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br><br>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대책의 논의과정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br>이런 점에서 볼 때 국민의 불만을 최대한 부추기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br>책임감 있는 언론이라면 국민으로 하여금 국민연금제도의 기본성격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br>정확한 인식 없이는 건전한 대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테니까요.<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