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제대 후 얼떨결에 캐나다를 가게 되었고 왜 캐나다에 </div> <div>감자탕 집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루종일 감자를</div> <div>깍고 재료 손질하는 알바를 하게 되었다.</div> <div><br></div> <div>그러다 너 영어 조금 하냐는 주인장의 질문에 네 조금요라고</div> <div>대답하게 되었다.</div> <div><br></div> <div>주인장이 생각했던 '조금'이랑 내가 생각했던 '조금'이랑</div> <div>그 정도 격차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div> <div><br></div> <div>당시엔 감자탕집에 뭐 다 감자탕만 시키니까 게다가 여기가</div> <div>동대문인지 캐나다인지 한국인들만 바글거리는데 감자 깍는</div> <div>것보다야 낫겠지 하며 홀로 나섰다.</div> <div><br></div> <div>메뉴판을 보니 왜 포테이토 수프가 아니라 포크 본 수프일까.</div> <div>생각해보니 그럴싸했다. 감자보다 뼈다귀가 많이 들어가네.</div> <div><br></div> <div>슬기로운 서구 문명이로다 감탄하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이</div> <div>손을 들었다. 물론 지네 나라기 때문에 내가 외국인이 되는 건가.</div> <div>암튼 뭔가 외국인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현지인이었다.</div> <div><br></div> <div>네들이 감자탕 맛을 알어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div> <div>물론 영어를 못했기에 물어볼 엄두도 안났다.</div> <div><br></div> <div>파란 눈동자의 그 감자탕 사나이는 당당히 메뉴판을 가리켰다.</div> <div><br></div> <div>긴장을 했지만 난 최대한 아는 단어인 오케이를 외치며 쭈뼛쭈뼛</div> <div>돌아서며 여기 감자탕 하나요! 를 외쳤고 주인장도 나름 만족하는</div> <div>눈치였다. 뭐 별거 없었다.</div> <div><br></div> <div>그러나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div> <div>갑자기 감자탕 사나이가 날 엑스큐스미 하고 불러세우더니 뭐라고</div> <div>솰랴솰랴 요구했다.</div> <div><br></div> <div>수도꼭지를 내 땀샘에 장착해서 돌려서 막고 싶었지만 이미 줄줄</div> <div>새는 식은땀을 막지 못했다. 지켜보고 있다 포스를 풍기는 주인장</div> <div>앞에서 맡겨주세요 가슴팡팡을 시전한 나로서는 최대한 침착한</div> <div>표정을 지었다.</div> <div><br></div> <div>저주받은 내 듣기평가 능력을 저주하며 기억을 더듬더듬 더듬어보니</div> <div><br></div> <div>"캔 아이 겟 어 볼"</div> <div><br></div> <div>이라는 핵심 단어가 퍼즐처럼 조각되었다. 듣기평가 모의고사 후 회</div> <div>초리를 갈겨주신 고딩때 영어선생님이 잠시나마 힘을 빌려준것 같은</div> <div>느낌이랄까. 공을 원한다?</div> <div><br></div> <div>근데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서양인들이 공놀이를 좋아한</div> <div>다고 하지만 식당에서 공놀이라니 그것은 너무 비신사적이지 않은가!</div> <div><br></div> <div>무엄하도다 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호통치며 가르쳐주고 싶었</div> <div>지만 일단 영어를 못했다. 우선 공을 찾아보았다. 역시 공은 없었다.</div> <div>감자탕집에 농구공 축구공 럭비공을 구비할리는 없으니까. 캐나다라</div> <div>하키공인가. 아니 근데 아이스하키는 공인가 그걸 뭐라고 하지. </div> <div><br></div> <div>쓸떼없는 생각만 떠오르고 당황하며 이리저리 찾다보니 역시 사람은</div> <div>죽으라는 법은 없었다.</div> <div><br></div> <div>불현듯이 얼음물을 아이스볼이라고 하는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div> <div><br></div> <div>고량주는 파이어볼 얼음물은 아이스볼이라고 낄낄됬던 붕우유신같은</div> <div>친구의 농담 덕분에 생각이 난 것이었다. 그 얼빠진 녀석의 맥빠진 농</div> <div>담이 거짓말처럼 구세주가 될 줄이야.</div> <div><br></div> <div>난 위풍당당하게 그 감자탕 사나이에게 얼음 동동 냉수를 대령하였다.</div> <div><br></div> <div>거 굉장히 매울테니 이걸 먹고 목숨을 보전하시오라는 친절한 말은</div> <div>영어를 못하니 역시 하진 않았다. 냉수 먹고 정신차려 라는 영어 속담</div> <div>을 외워둘걸 그랬다.</div> <div><br></div> <div>그러나 감자탕 사나이의 표정은 냉수가 아닌 사약을 받아든 표정이었다.</div> <div>그리고 뭐라뭐라 솰랴솰랴하는데 그때서야 문제가 있음을 파악한 주인</div> <div>장이 상황파악을 하러 다가왔다.</div> <div><br></div> <div>결국 볼이라는게 공BALL 이 아니라 그릇BOWL 을 뜻하는지 참교육을 당했고</div> <div>왜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은 날 호되게 더 꾸짖지 않았을까 원망이 되었다.</div> <div><br></div> <div>난 다시 구석에서 감자를 깍게 되었다. </div> <div>그놈의 볼때문에 내 볼은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div> <div><br></div> <div>그 이후로 누구든 나에게 뭔가를 영어로 물으면</div> <div>"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랜드" 를 시전하면 말없이 묵묵히 날 놓아주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