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는 밥을 '얻어먹고' 사는가
[오마이뉴스 2006-07-23 11:00]
[오마이뉴스 권혁란 기자]
ⓒ2006 권혁란
가축 : 야생동물과 달리 주인이 밥을 챙겨 먹여 키우는 동물. 스스로 밥을 챙겨 먹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이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그러나 밥 먹여준 은혜를 알고 주인을 따른다.
남편 : 1. 부인이 밥을 챙겨 먹여 키우는 인간. 스스로 밥을 챙겨 먹지 못하므로 부인이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그러나 밥 먹여준 은혜를 전혀 모르고 오히려 밥투정에 바쁘다.
가사노동 : 하루 종일 움직이게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놀고 먹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신비한 효과가 있는 중노동. 흔히 사랑의 노동이라고들 하지만 이는 대가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글들을 읽으면 아마도 웃는 사람 1/4, 화내는 사람 1/4, 웃으면서 공감하는 사람 1/4, 울뚝불뚝 화내면서 욕하는 사람이 1/4 정도가 될 것이다.
이 글들은 페미니스트 잡지에 '상대적이고도 적대적인 페미니스트 백과사전'이란 이름으로 실렸는데, 지금 읽어도 재미있고 공감이 간다.
제 손으로 밥 해 먹을 줄 아는 남자도 진창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지만 그래도 이 지구상에 몇 명쯤 살아있다. 그것이 아주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할 일이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꽤 아름답고 훌륭하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같은 졸업... 그러나 그 부부의 밥은?
인간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제 입으로 들어갈 밥과 반찬은 제 손으로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제 입으로 들어가는 밥과 반찬을 스스로 만들지 않고 삼시 세 끼 모두 사먹거나 남의 손을 빌리는 사람들 중엔 여자도 무척 많다. 그러나 여자는 언젠가부터 밥하고 반찬 만드는 일을 배워야 하는 걸로 여겨진다. 반면 남자는 사정이 있는 사람만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것.
똑같은 학교와 똑같은 학과를 똑같은 날에 졸업하고 결혼을 한 두 부부가 있다. 시험 성적도 거의 비슷하고 논문 주제도 비슷했다.
그러나 결혼을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여자는 밥하고 반찬 해서 남편을 먹여주는 것이 도리가 되었고, 남자는 해주는 밥을 때론 맛있게 때론 투정하며 먹기만 해도 도리를 다 하는 걸로 둔갑했다. 결혼 전에는 같이 사먹고 돌아다녔지만 결혼 후에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똑같은 공부만 똑같은 장소에서 했으므로 요리나 음식 만들기에 완전히 문외한인 것도 똑같았다. 여자도 처음에는 밥도 잘 못하고 수제비나 국수도 끓일 줄 몰랐다. 그러나 요리책을 사서 해보거나 이웃여자들, 친정식구들에게 물어물어가며 열심히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라면과 커피만 잘 끓이는 학습 능력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여자는 손님 열명 정도가 몰려와도 당황하지 않고 뚝딱뚝딱 상을 차려낼 수 있게 되었지만 남자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라면 끓이기와 커피 타기 정도에 불과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남편은 어쩌다 일요일에 라면을 끓이면서도 '얼마나 맛있게 끓이는가' 자랑스러워 하고, 손님이 왔을 때 남편이 커피잔을 내오면 모두 얼마나 자상하고 부엌일을 잘하는가 찬탄해 마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리도 학습능력이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일을 여자보다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왜 밥과 반찬 하는 일은 배우지 않는가(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 '일류 요리사나 일류 주방장은 대부분 남자'라고 소리 지른다. So What?). 또 어쩌다가 일품요리 하나라도 하는 날이면 '해준다'거나 '도와준다'고 하면서 생색이 늘어지기 일쑤다.
제 입에 들어가는 밥을 스스로 하지 않는다 해도 남자와 여자는 조금 다르다.
여자들은 거의 매 끼니를 남의 손을 빌려 먹지 않는다. 남편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지도 않는다. 어쩌다가 밥을 하더라도, 해주거나 도와주지 않고 그냥 한다. 또한 얻어먹거나 대접받으면 함께 잘 먹고 그 자리에서 설거지라도 꼭 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있다).
어머니, 아내, 딸에게서 얻어먹는 밥은 이제 그만
이 길고도 사소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까닭은 이런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남자들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에서이다.
세상 남자들이 밥과 반찬을 잘 차려 먹고 다닌다고 해서 그 혜택을 내가 받을 일은 만무하다. 여하튼 그렇게 제 밥상 잘 차려먹고 사는 남자들이 이 세상에 잘나고 똑똑한 어떤 남자보다 인간답고 남자답고 멋있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남성은 어려서는 어머니 손에, 좀 더 커서는 아내(아내가 없으면 식당 아줌마나 도우미 아줌마) 손에, 세월이 좀 더 지나면 딸 손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산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성들이 출장을 떠나거나 먼 외출을 하면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놓아도 찾아먹지 못하고 끝내 음식점에서 시켜먹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은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제대로 독립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읽은 책 중에 <아버지의 부엌>이란 소설이 있었다. 어머니가 죽고 난 뒤, 하나밖에 없는 딸은 생전 부엌에 얼씬도 안해 본 아버지를 안쓰러워한다. 그러나 이 딸은 아버지 집에 들어가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버지 혼자서도 음식을 잘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하루종일 늙은 아내에게 밥투정이나 하고, 아내가 외출하면 쫄쫄 굶거나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우는 나이든 남자, 스스로도 못 견딜 일일 것이다. 부디 (남녀 불문하고)제 밥은 제가 챙겨먹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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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소개 : 권혁란님은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는 <엄마 없어서 슬펐니?>(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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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간 남자는 집지키는 개라더니..
이제 남편은 밥얻어먹으면서 은혜도모르며 게으른
애완견이군여...
기사원문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47&article_id=0000084013§ion_id=103§ion_id2=336&menu_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