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오유 바로가기
http://m.todayhumor.co.kr
분류 게시판
베스트
  • 베스트오브베스트
  • 베스트
  • 오늘의베스트
  • 유머
  • 유머자료
  • 유머글
  • 이야기
  • 자유
  • 고민
  • 연애
  • 결혼생활
  • 좋은글
  • 자랑
  • 공포
  • 멘붕
  • 사이다
  • 군대
  • 밀리터리
  • 미스터리
  • 술한잔
  • 오늘있잖아요
  • 투표인증
  • 새해
  • 이슈
  • 시사
  • 시사아카이브
  • 사회면
  • 사건사고
  • 생활
  • 패션
  • 패션착샷
  • 아동패션착샷
  • 뷰티
  • 인테리어
  • DIY
  • 요리
  • 커피&차
  • 육아
  • 법률
  • 동물
  • 지식
  • 취업정보
  • 식물
  • 다이어트
  • 의료
  • 영어
  • 맛집
  • 추천사이트
  • 해외직구
  • 취미
  • 사진
  • 사진강좌
  • 카메라
  • 만화
  • 애니메이션
  • 포니
  • 자전거
  • 자동차
  • 여행
  • 바이크
  • 민물낚시
  • 바다낚시
  • 장난감
  • 그림판
  • 학술
  • 경제
  • 역사
  • 예술
  • 과학
  • 철학
  • 심리학
  • 방송연예
  • 연예
  • 음악
  • 음악찾기
  • 악기
  • 음향기기
  • 영화
  • 다큐멘터리
  • 국내드라마
  • 해외드라마
  • 예능
  • 팟케스트
  • 방송프로그램
  • 무한도전
  • 더지니어스
  • 개그콘서트
  • 런닝맨
  • 나가수
  • 디지털
  • 컴퓨터
  • 프로그래머
  • IT
  • 안티바이러스
  • 애플
  • 안드로이드
  • 스마트폰
  • 윈도우폰
  • 심비안
  • 스포츠
  • 스포츠
  • 축구
  • 야구
  • 농구
  • 바둑
  • 야구팀
  • 삼성
  • 두산
  • NC
  • 넥센
  • 한화
  • SK
  • 기아
  • 롯데
  • LG
  • KT
  • 메이저리그
  • 일본프로야구리그
  • 게임1
  • 플래시게임
  • 게임토론방
  • 엑스박스
  • 플레이스테이션
  • 닌텐도
  • 모바일게임
  • 게임2
  • 던전앤파이터
  • 마비노기
  • 마비노기영웅전
  • 하스스톤
  • 히어로즈오브더스톰
  • gta5
  • 디아블로
  • 디아블로2
  • 피파온라인2
  • 피파온라인3
  • 워크래프트
  • 월드오브워크래프트
  • 밀리언아서
  • 월드오브탱크
  • 블레이드앤소울
  • 검은사막
  • 스타크래프트
  • 스타크래프트2
  • 베틀필드3
  • 마인크래프트
  • 데이즈
  • 문명
  • 서든어택
  • 테라
  • 아이온
  • 심시티5
  • 프리스타일풋볼
  • 스페셜포스
  • 사이퍼즈
  • 도타2
  • 메이플스토리1
  • 메이플스토리2
  • 오버워치
  • 오버워치그룹모집
  • 포켓몬고
  • 파이널판타지14
  • 배틀그라운드
  • 기타
  • 종교
  • 단어장
  • 자료창고
  • 운영
  • 공지사항
  • 오유운영
  • 게시판신청
  • 보류
  • 임시게시판
  • 메르스
  • 세월호
  • 원전사고
  • 2016리오올림픽
  • 2018평창올림픽
  • 코로나19
  • 2020도쿄올림픽
  • 게시판찾기
  • 게시물ID : gomin_1794830
    작성자 : 히마와리방긋
    추천 : 2/5
    조회수 : 2147
    IP : 172.70.***.189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22/04/29 16:13:15
    http://todayhumor.com/?gomin_1794830 모바일
    15년째 은둔형 외톨이인 부끄러운 38살 입니다
    옵션
    • 베스트금지
    저희 아빠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하나 없으십니다. 어릴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너는 형이 많으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다며 학교를 그만두게 하시고 농사일을 시키셨는데, 그만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 되신겁니다. 그 시절의 아빠는 밑을보면 자신의 잘린 손가락이 보이고 위를 보면 또래들이 책가방 매고 학교 가는것이 보이셨을 겁니다. 저는 아빠를 학대하면서 키우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원망 스럽더라고요.

    아빠가 엄마를 만나 결혼할 때에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천원 한장 안주고 시집 보내셨다고 합니다. 제가 어린시절에 아빠는 몇일씩 굶어가며 힘든 일을 하셨다고 하셨어요. 저희 엄마 아빠는 자식 복도 없으셔서 저 같이 몸도 마음도 아픈 자식을 낳으셨습니다. 저는 태어나자 마자 혈소판 감소증에 걸려서 피가 나면은 지혈이 안되고 피가 멈추지 않는 몹쓸병에 걸리는 바람에 가난한 저희 집은 저의 병원비로 인하여 빠듯한 살림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교에 입학 하였지만 학교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와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 고통속의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저는 성인이 되고나서 은둔형 외톨이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병은 더욱 깊어져 나중에는 저의 방 문을 열고 나가는 것 조차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 방에서 나와 겨우 한끼먹고 다시 도망치듯 저의 방으로 들어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심할때는 나흘이 넘도록 방에서만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는데, 굶주림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이 타는듯한 갈증과 목마름은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에 소중한 20대를 방안에서 굶주림과 갈증으로 흘려 보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소변도 방에서 물통으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고통속에 매일 살아야만 했던것은 아마도 저의 의지가 부족해서 일겁니다. 하지만 학교폭력 이나 군대폭력과는 차원이 다른 심한 가정폭력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고 볼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저보다 4살 많은 형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형의 폭력에 늘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일본하고 전쟁나면은 일본 앞잡이 하게 생겼다며 정말 매우 심하게 맞았습니다. 눈이 마주쳤다고 맞고 먼저 말을 걸었다고 맞고 팬티를 벗기더니 저의 성기를 축구공 걷어차듯 백번을 넘게 맞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은 제가 좋아하는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바닥에 따라 버리고는 저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리고 바닥에 흘린 우유를 닦으라고 하였습니다. 따귀를 하도 맞았을 때는 귀에서 윙~윙~ 하는 이명 같은것이 일주일이 넘도록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가위나 커터칼로 저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벨트를 채찍처럼 사용하여 때리기도 하였고요.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제가 스무살에 처음으로 형의 폭력에 반항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형은 제가 감히 반항을 하는것에 놀랬는지 방으로 들어가서 쇠파이프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엄마는 형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자기 자신도 맞아가면서 저를 넘어뜨린 상태로 저의 두 손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엄마 덕분에 저는 형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머리를 수십차례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몸이 더 이상 쇠파이프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입에서 피가 나오자 그제야 만족을 했는지 때리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엄마도 그제서야 저의 두 손목을 놔주었습니다. 폭력의 후유증으로 저는 돈을 모아서 집에서 탈출할 생각으로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시 형이 쇠파이프로 저를 때리려고 하고 엄마는 저의 손목을 잡으려는 행동을 보이길래 저도 살고싶단 생각으로 식칼을 들고 형을 찌르려고 달려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형이 저를 때리지 않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죽이려고 하면은 상대방도 내게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드디어 형한테 맞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은건가 싶어서 내심 기뻤던 저였지만 저의 학교 동창이 자기는 누나랑 대화도 많이하고 누나가 맛있는 것도 만들어 주고 가족끼리 나들이도 자주 다니고 누나랑 같이 외출해서 데이트도 한다는 말에 왠지 하늘이 원망스럽고 세상이 증오스러워 지더라고요.

    저희 아빠는 형이 저한테 폭력을 사용할 때마다 형은 하늘같은 존재 아버지같은 존재라서 동생을 얼마든지 때려도 된다고 하시는 분이 셨습니다. 감히 아랫것인 니가 아버지같은 형을 화나게 했느냐며 형에게 맞은곳이 붓고 피가나도 엄마 아빠는 그저 방관 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형은 아빠하고 대화 할때도 입에 담배를 문채로 뒷짐을 쥐고 대화할 정도로 형을 하늘처럼 떠밧들고 살아 오셨습니다.

    저는 살면서 단 한번도 술이나 담배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형의 맥주를 시원하게 하기위해 냉장고가 가득차서 제가 좋아하는 물이나 우유를 냉장고에 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은 담배를 한번에 두개씩 쉬지않고 게임할 때면은 피워대곤 하였는데, 저는 형이 피우는 담배연기를 맡으면서 잠이 들어야 했고 잠에서 깨야만 했습니다. 형의 술이나 담배는 엄마가 떨어지면 바로바로 채워넣어 주셨어요. 저는 한 평생 음식을 배달시켜 먹어본 적이 손가락으로 셀수 있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형은 고기반찬이 없으면은 엄마한테 음식을 배달시키게 만들어서 한달에 스무번도 넘게 먹곤 하였습니다. 그때 문일까요. 형하고 저의 몸무게는 두배 정도로 차이가 났습니다.

    형이 집에서 쇠파이프로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저는 더욱 더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두려워져 삼일만에 겨우 한끼먹고 물 마시는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굶주림과 목마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이 지금의 형수님을 혼전임신 시키는 바람에 결혼을 해서 집에서 나가 살게 되었습니다. 형이 직업도 없고 돈도 없어서 부모님이 형의 신혼집을 사주셨습니다.

    형은 그에대한 보답으로 결혼식 다음날에 집에 쳐들어와 엄마보고 축의금을 전부 다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조금은 우리가 가지면 안되겠냐고 하자 형은 엄마의 멱살을 잡고 심한 욕설을 하며 너 같이 ㅁㅣ친년은 정신병원에 쳐 넣어야 한다면서 엄마를 협박 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는 집에서 울면서 도망갔고 형은 축의금을 모두 챙긴뒤에 집에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집에서 엄마가 아빠한테 형이 결혼 한다길래 평상시처럼 하늘같은 존재로 떠밧들며 집까지 사줬는데 서운 하다면서 아빠한테 하소연을 하면서 쇠로 된 냄비를 식탁에 탕!탕! 내리 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쇠로 된 물건을 식탁에 내리치니까 엄마한테 두 손을 잡힌채로 형한테 쇠파이프로 머리를 수십대 맞다가 피를 토한것이 생각나서 힘이 드니까 그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엄마가 아빠한테 저 새끼 저거 잡아 쳐 넣어 라고 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지겹도록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야만 했던 그 말을 또 하시더군요. 저 새끼 저거 아빠가 낙태하자고 했을때 지웠어야 했는데 괜히 낳아서 이 고생이야. 저는 일곱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저를 낙태 시키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을 지겹도록 들어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낙태가 무엇이냐고 물어 봤다가 저 새끼 저거 유치원에서 낙태 가르쳐 줄때 선생님 말 안 듣고 뭐 했냐면서 따귀를 맞고 엄마가 저를 넘어뜨린 다음에 이불로 저를 덮으시고는 얼굴을 사정없이 발로 밟으셨습니다. 또 동전이 들어있는 지갑으로 저의 머리를 자꾸만 때리시기도 하셨고 식칼을 저의 몸으로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아무튼 엄마가 저 새끼 저거 잡아 쳐 넣어 라고 하시더니 119가 아닌 129에 전화를 걸으시더니 돈 십만원에 사람 납치해서 병원까지 데려가 주는 사람을 두 명 부르셨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채 그렇게 납치되어 신경정신과 폐쇄병동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이후에는 2평 남짓한 독방에 갇히어 이름모를 주사를 계속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에야 겨우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의사에 진단 없이는 강제입원이 안 된다는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쪽 세계는 법위에 돈이 군림하는 세상 이었습니다.

    그렇게 쇠창살에 갇혀 죽을 고생을 하다가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군대가 더 낫더군요. 수십년 동안 때리고 방관한 사람들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데, 왜 그 오랜시간 동안 학대를 당해야만 했던 저는 이렇게나 많은 불이익을 당해야만 하는건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얼마후에 퇴원을 하였지만 순진한 저는 엄마가 강제입원 제도를 악용해서 저를 다시금 학대 하실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여느 때처럼 삼일만에 한번 방에서 나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있는 때였습니다. 제가 밥을 먹고 있는것을 보시고는 엄마는 또 129에 전화를 걸어 사설 구급차를 집으로 부르시더군요.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삼일만에 밥을 먹어도 그렇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는것이 아니냐며 정신병원에 가서 밥 조금 먹는것을 배워갔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강제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엄마하고 형은 옛날부터 저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것을 유난히도 싫어 하셨던게 생각이 났습니다. 학창 시절때 일진들에게 식권을 빼앗겨서 저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점심을 먹어본적이 없습니다. 일진 애들이 저의 주머니를 뒤졌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많이도 맞고는 하였습니다. 집에와서 맞은 얼굴로 울면서 밥을 먹고 있자니 억울해서 눈물이 나오더군요. 그것을 지켜보던 엄마와 형은 저보고 너 학교에서 밥 굶었다고 많이 먹지말고 조금만 먹어라 하시던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병신같이 자기 밥도 못 챙겨먹고 식권을 빼았기고 맞고 다니냐며 엄마는 저 새끼 저거 낙태했어야 했는데 괜히 낳아서 이 고생이야 하면서 언성을 높이셨고요. 형은 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되었다며 학교에서 맞은것 보다 더 심하게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퇴원하게 되었는데 퇴원한 그 당일날 저녁에 다시 강제입원 시키시더군요. 그리고 입원한 그 다음날에 저를 퇴원 시키시려고 엄마가 병원에 오셨습니다. 저는 퇴원해 봤자 내일 아침에 또 사람들 돈 주고 불러서 강제입원 시킬것이 아니냐며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그냥 퇴원 안하고 병원에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자기 마음대로 퇴원 수속을 받고 집에 갔지만 역시나 그 다음날에 다시 강제입원 당하였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엄마한테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환자를 가지고 장난치는것도 아니고 이렇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 하는것이 환자에게 얼마나 악 영향을 주는건지 아시냐면서 앞으로 퇴원하면은 일주일 동안 입원이 불가능 하게끔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폐쇄병동에 10년 20년이 넘도록 있던 환자들 조차 내가 이 병동에만 수십년을 있었는데 이렇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신기해 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너가 하루도 못가서 재 입원 하는것에 내기를 하였는데 니 덕분에 내가 이겼다며 저를 조롱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엄마가 오셔서 퇴원하자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완강히 거부를 하였지만 엄마는 집에 돈이 없어서 퇴원을 해야한다.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으니 퇴원하고 집에가서 잘 지내보자는 말에 저는 바보같이 순진하게 그 말을 믿어 버렸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제 방에 고장난 형광등은 새것으로 고장난 티비도 새것으로 찢어진 바닥에는 새 장판을 깔아 주셨습니다. 모두 아빠가 해주신 거였습니다. 저는 그 동안 아빠가 낙태시키고 싶었던 저를 낳으셔서 미워하고 계신줄만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 제 나이 서른 둘에 엄마 아빠집에 얻혀 살고 있어서 저를 자식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삼십대인 저를 내 쫒지 않으시고 얻혀살게 해주시고 이렇게 저의 방에 고장난 것들을 다 새것으로 고쳐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복은 화를 불러온다고 하던가요? 아빠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던 저는 퇴원한지 3일째 되는 날에 엄마가 부른 129 사설구급차 사람들에 의해 집에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병원비를 댈수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두번 다시 강제입원 하는일이 없을거라던 엄마의 말이 생각이나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엄마는 뒤에서 제가 끌려가는 것을 보시고는 미소짓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바로 이 장면. 사설구급차 사람들에게 단 돈 십만원이면 끌려가는 모습을 볼수 있으니까 제가 납치 당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저를 퇴원 시키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다니던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계요병원에는 퇴원하면 일주일 동안 재 강제입원이 안 되니 엄마는 저를 수원에 있는 알콜중둑 병원에 입원을 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는 얼마나 술을 많이도 마셨길래 이런데 입원했냐고 묻길래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술이나 담배를 해본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술을 마셔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런데 강제입원이 될수 있냐면서 신기해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더 이상 감당할수 없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저는 자살시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으로 자살미수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퇴원하게 되었고 엄마한테 저도 좀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애원 했습니다. 우리 가족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비행기를 못 타봤는데 엄마는 제주도만 두번 중국도 한번씩 여행 해보지 않았냐면서 제발 저한테도 자유를 조금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안양에 살때에는 저희 엄마께서 노래 교실을 일주일에 무려 4군데나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희 집에서는 파리와 나방이 끊이질 않았고 구더기 또한 날이 갈수록 천정이나 벽 또는 바닥에 기어다니는 횟수가 점점 많아 졌습니다. 특히나 엄마는 음식물 쓰레기를 식탁 밑에다가 두곤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식탁 밑에 냄비 뚜껑에는 구더기가 천마리가 넘게 움직이는 것도 보았는데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 였습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은 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매일같이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저의 옷장에 있는 옷을 세탁기에 빨래 돌리고 있을 때 였습니다. 엄마가 낮잠에서 깨시더니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크게 언성을 높이시길래 저는 깜짝 놀라서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있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엄마는 니가 뭔데 싸가지 없게 세탁기를 허락도 없이 사용하냐고 하셨습니다. 세탁기는 엄마 혼자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인데 니가 감히 빨래를 돌리냐면서 이게 다 니가 미쳐서 그런 거라며 119 구급차와 112 경찰을 부르셔서 이 새끼좀 정신병원에 쳐 넣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경찰관님이 세탁기를 사용한 것으로는 강제 입원이 안 된다면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엄마는 129 사설구급차 사람들을 단 돈 10만원에 고용하셔서 저를 신경정신과 폐쇄병동에 납치하듯 끌고 가셔서 강제입원 시키셨습니다. 2015년 11월에 강제입원과 강제퇴원을 여러번 당하다가 3월에 입원하여 이번에는 길게 5개월 동안 2016년 8월 2일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은형이 퇴원하면은 또 다음날 아침에 강제입원 시키지 말고 정신건강 복지센터를 다니게 두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인 8월 3일에 아침에는 아빠가 엄마한테 은형이 절대로 오늘 강제입원 시키지 말고 주치의 선생님이 알려주신 정신건강 복지센터에 가게 두라고 엄마한테 신신당부 하시고 출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시면서 도어락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저를 강제입원 시키실려고 119에 전화를 거셨습니다. 아드님 어제 퇴원 하셨으니 당분간은 집에서 지내게 하시면서 치료 경과를 지켜 보시라고 하시고는 구급대원 분들은 돌아 가셨습니다. 그렇게 그 날 아침에만 엄마는 119 구급차를 네번이나 부르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너 강제입원 하는거 협조 안하면은 돈 십만원주고 병원까지 끌고가는 사람들을 불러서 수원 알콜중독 병원에 입원 시키는 수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루도 못 버티고 자살시도 했던 그 곳으로 가서 또 자살시도 하느니 방에서 식칼로 저의 목이나 배를 찔러서 죽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형이 또 쇠파이프로 저의 머리를 때리려고 하면은 저의 몸을 지키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29000원 주고 올 스테인리스 식도를 구입하여 저의 방 서랍에 두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엄마한테 10분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저의 방에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정신이 아닌 잠결에 식칼로 저의 목을 찌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다가 아파트 17층 에서 뛰어내려 투신 자살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제 정신이 아닌 잠결에 그런 각오를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였습니다. 아직 방에 들어온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문을 열고 저의 방에 들어오신 겁니다. 저의 손에 식칼이 들려 있는것을 보시고는 엄마가 놀라시며 너! 손에 왜 칼을 들고 있는거야? 은형아 그 칼로 엄마를 찌르려고 하는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런 이유로 강제입원을 당하면은 하루도 못 버티고 자살시도 했던 수원에 있는 알콜중독 센터에 최소 몇년은 강제입원 당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겁이 났습니다. 퇴원해서 집에 오면은 다음날 아침에 강제입원 시키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고 단돈 십만원 이면 병원까지 사람 납치해가는 우리나라가 원망 스러웠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그 당시에는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엄마가 살아있는 한 저에게는 단 하루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손에 들고있던 식칼로 엄마의 목 주변 밑에있는 가슴 부위를 찌르고 만 것입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저 자신도 눈 앞에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엄마는 은형아 너 이러다가 엄마 죽으면은 교도소 간다. 너도 결혼도 하고 남들처럼 살아야지 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말에 식칼을 내려놓고 휴대폰으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고 수건을 물에 적셔서 갔고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엄마가 시키는 데로 하였고 엄마는 휴대폰으로 아파트 경리 아주머님을 부르셔서 저희 집에 오시게 되었는데 엄마의 상처에 지혈이 되는 자세를 취해 주셨습니다.

    잠시후에 집에 구급대원과 경찰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구급대원은 엄마의 목과 가슴 부위에 붕대를 감으셔서 응급처치만 하시고는 엄마를 바퀴달린 의자에 앉게 하시고 사라 지셨습니다. 경찰은 저의 두 손목에 수갑을 체우시고는 경찰서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갑 이란것을 찬 채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저녁이 되니 저보고 유치장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형사님이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엄마가 다행이도 수술이 잘 되셔서 무사 하시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마음속으로 엄마만 무사하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소원이 없어도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렇게 유치장에서 일주일을 보냈는데 엄마가 병원비 때문에 몇일후에 퇴원 하시게 되었고 평일마다 한번씩 면회를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빠도 같이 면회를 오셨습니다. 저 같은 패륜아 때문에 일부로 더운 여름에 면회를 오셨다고 생각하니까 감정이 복 받혀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엄마는 목 아래쪽 가슴부위에 식칼로 인한 상처 자국이 생기셨는데 그것을 보고있자니 죄책감과 죄송함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유치장에 일주일 있다가 이번에는 수갑에 포승줄까지 차고 안양 교도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유치장에 비하면 안양 교도소는 천국과 지옥 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 봤자 군대보다 더 힘들겠냐는 저의 생각은 완전히 틀린 거였습니다. 쭈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화장실에서 졸졸 약하게 나오는 차가운 물을 대야에 받아서 바가지로 그 물을 퍼서 씻는것 이었습니다. 식사후에는 볼일을 보는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해야만 했습니다.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가끔은 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형광등은 24시간 켜져 있어서 취침시간에 눈이 부신채로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또 낮이건 밤이건 돈벌레와 지렁이가 기어나와 벌레를 싫어하는 저로서는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 이었습니다.

    엄마는 저 같은 자식이 뭐가 좋다고 안양 교도소에 있을 때에도 하루도 빼지않고 면회를 와주셨습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아빠와 함께 와 주셨습니다. 겨우 10분 대화 하시려고 엄마 아빠는 찾아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엄마는 방문할 때마다 두유와 간식을 사서 넣어보내 주셨고 편지 한장을 꼭 써주시고 가셨습니다. 엄마는 은형이 재판 잘 받아서 집에 와야 할텐데 만약에 실형 받으면 어떡하냐고 울면서 말을 해주셨습니다. 편지에도 대부분 그런 내용 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데 어쩌다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지옥같은 교도소 생활을 하던 도중에 제 앞으로 무슨 서류가 도착 했습니다. 그 서류에는 제가 샤워를 오래해서 엄마가 야단치니까 칼로 엄마를 찔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 부분을 당황스럽게 보고 있는데 좁디좁은 같은 방에 15명의 사람들중 일부가 저의 서류를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본문에도 혹시 말도 안되는 말이 적혀있지 않을까 궁금해서 돌려 달라고 했더니 서류가 너무 재밌어서 일단 오늘은 우리가 보고나서 내일 아침에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찾아와서 서류를 읽어보게 돌려 달라고 했더니 잊어버려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국선 변호사님 에게 강제입원이 문제가 되어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인데 왜 샤워하는 것 때문에 제가 죄를 지은것처럼 되어 있냐는 말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국선 변호사님은 저의 말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셨고 저는 말도 안되는 소설로 인하여 억울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 쪽에서는 흉기를 미리 소지한 점에 대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저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 하였습니다. 제가 왜 옷장 서랍에 식칼을 구입해 두었는지 형이 수십년 동안 때리다가 제가 반항하니까 엄마한테 두 손이 잡힌채로 저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때려서 저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해 옷장에 식칼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이유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안양 교도소 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재판 결과가 나오는 운명의 날 2016년 9월 30일이 찾아 왔습니다. 다른 건 기억이 잘 안나는데 이건 기억납니다. 피고인이 깊이 늬우치는 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점을 고려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한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님께 효도 하면서 살겠습니다. 라고 말을 한 이후에 나왔습니다. 수십명이 재판 결과를 듣기 위해 왔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4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알수 없지만 나머지 3명은 사회봉사가 120시간 씩 있었는데 저만 사회봉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집에 왔지만 엄마는 교도소에서 먹다가 남은 약을 먼저 먹고 새 약봉투는 나중에 뜯어서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애초에 교도소 자체가 위생적으로 좋지않고 돈벌레하고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그리고 취침 시간에 형광등을 켜 놓은 채로 잠을 자다 보니까 방충망도 없는 창문에서 여러 종류의 벌레가 들어와대는 곳에서 있었던 얼마 되지도 않는 약은 그냥 버리고 깨끗한 새 약을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나서 저는 또 한번 강제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일을 계기로 엄마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해 봤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천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생각 나더라고요. 전화 한번이면 강제입원이 되는 시스템에 엄마는 중독 되신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 이었습니다. 손에 십만원만 쥐어주면 합법적 납치와 감금이 가능한 나라에 저는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저는 사전 예고없이 갑작스럽게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제법 오후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129에 전화해서 사설 구급차를 부르는 거였습니다. 저는 집에 도착 하자마자 돈 주고 사람불러서 입원 시킬거면 뭐하러 퇴원 시켰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집에 사람들와서 너 끌고갈 거라서 정신이 없으니까 구급차에 타면은 강제입원 시키는 이유를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집에 쳐들어와 저의 양팔을 끌고 가길래 하도 어이가 없어서 뒤를 봤더니 엄마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채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저는 아까 약속한 대로 오늘 퇴원 하자마자 강제입원 시키는 이유를 물어 봤습니다.

    엄마는 아직 미소띈 얼굴로 지금은 차안이라서 정신이 없으니까 병원에 도착하면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약속한 대로 이유를 알려 달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진료실에서 말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병원 직원들이 제가 하도 퇴원만 하면은 당일이나 다음날에 강제입원을 시키니까 엄마한테 화가 났는지 얼굴이 빨개져서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라고 하는 엄마에게 조금 기다려 보세요 좀! 하면서 언성을 높이 셨습니다. 병원에 주치의 선생님이 계셨다면 퇴원한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강제입원이 안 되었을텐데 엄마는 선생님이 퇴근 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당직 선생님이 근무 중이실때 저를 재입원 시키시려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퇴원한 저는 다시 강제입원을 당하기 위하여 진료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와서 엄마한테 오늘 강제입원 당해야 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지금은 병원이라서 정신이 없으니까 나중에 집에오면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저의 엄마이지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이 진료실에 들어오셨고 그냥 입원할지 남자 직원들한테 끌려가서 입원할지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퇴원 했는데 또 강제입원을 당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억울함을 토해냈고 선생님은 시간이 길어지니까 지루함을 참지 못하시고 전화로 남자직원 3명을 부르셔서 저는 그렇게 또 다시 강제입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그렇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지내다가 제가 9살 때부터 34살 될 때까지 무려 15년 동안 살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 2동을 떠나서 이곳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으로 2018년 6월 29일에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새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저의 정신질환인 강박증과 정신증을 떨쳐버리고 새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맙니다. 바로 2019년 9월 30일에 끝나는 보호관찰 때문 이었습니다. 안양에서는 보호관찰소 까지 걸어서 10분 이면 됐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음성군 대소면 에서는 보호관찰소가 충주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무려 한시간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보호관찰소 까지 왕복 2시간이 넘도록 차를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1년이 넘도록 차멀미 해가면서 충주까지 못간다고 하였습니다. 보호관찰 끝날 때까지 병원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두고 저의 방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거실에서 생활하며 잠도 거실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기껏 이사와서 새 출발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신경정신과 폐쇄병동에 원치않는 입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강박증이 최고조로 올라 왔습니다. 샤워하는 시간도 12시간이 넘게 걸려 그 날 저녁 8시에 씻기 시작해서 아침 8시가 되어야 화장실에서 간신히 나올수 있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피부가 찟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저는 그 해 8월 3일에 충주에 가서 선생님을 한번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이 할 짓은 못되더군요. 엄마가 강제입원 제도를 악용하지만 않았어도 보호관찰 같은 건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2018년 8월 3일은 제 인생에 최고의 날 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집에 오는길에 펫샵에 들러서 태어난지 두달 반이 되었다는 암컷 푸들 강아지를 한마리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너무 이쁘고 행복했습니다.

    거실에서 누워 있을때 푸들이 강아지가 사료 먹는소리 물 마시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너무 행복 했습니다. 심지어 강박증이 있는 제가 강아지의 소변과 대변을 물티슈로 청소하기도 하였습니다. 12시간 하던 샤워를 강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2시간 만에 끝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엄마하고 저는 8월 6일에 동물병원 가서 강아지 예방접종 주사를 맞히고 나왔습니다. 병원에 있을때 잠시 울타리 안에 강아지를 넣어 놨는데 자기를 버리고 가는 줄 알고 엄청 울어 댔습니다. 벌써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해 주는것 같아서 너무 감사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 찾아 왔습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괴롭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그 날의 악몽이 저에게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날은 2018년 8월 12일 주일 이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서 씻고 저녁이 될 쯤에 나왔습니다. 엄마는 마치 벌레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온것 처럼 저를 더러워 하시면서 온갖 욕설을 하시며 화장실 청소를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아침이 왔는데 엄마하고 아빠는 아침 7시에 관광차 타고 저녁 9시 까지 놀다가 들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은 최고 기온이 38°까지 되는 아주 무더운 여름 날 이었습니다. 엄마가 바닥에 깔아놓고서 밟고 다니는 옷 들이 햇빛에 닿으면 옷이 망가진다고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셨습니다. 저는 엄마한테 강박증 때문에 에어컨도 못 틀고 선풍기도 못 틀고 그렇다고 창문을 직접 내 손으로 만져서 열수도 없으니까 제발 창문을 닫지 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제 말을 들으신 엄마는 웃으시면서 블라인드 찢고 싶으면 찢어 라는 말을 두번 하시고는 안방에 들어 가셨습니다. 저는 찢으라고 하면 못 찢을 줄 알고! 말한 다음에 블라인드를 찢어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저의 행동을 보시고 엄마 아빠는 심한 욕설을 하시고는 관광버스를 타시려고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악마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어제 일 처럼 생생한 그 날의 악몽이 저를 괴롭힙니다. 태어난지 세달된 저의 동생을 바닥에 집어던져 죽이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의 천사를 담당하던 푸들이 강아지가 그렇게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순간 눈 앞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서 저의 동생을 끌어안고 몇 시간을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원망 스러웠습니다. 수십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집에 태어났다면 정신질환도 안 걸리고 저의 손으로 제 동생을 죽이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온 세상과 온 우주를 원망하면서 강아지를 품에 안고 몇 시간을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이게 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군대폭력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저는 누구보다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제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의 동생이 태어난지 세달만에 죽는일은 결코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저의 손으로 제가 정신병자라서 강아지가 죽은 거였습니다.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형의 사진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새끼가 수십년 동안 저를 때리고 학대하지만 않았어도 저의 동생은 지금 살아있을 거라고요. 그렇게 저는 제 동생을 품에 안고 누워서 정말로 오랜만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저를 죽이시고 저의 동생을 살려주세요. 저의 목숨을 걷어가 주시고 저의 동생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세요. 그렇게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저의 동생을 품에 꼭 안고 울고 또 울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어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 오셨습니다. 저는 몇 시간 전에 잠에서 깨어나와 강아지를 품 안에 안고 누워있는 상태 였습니다.

    엄마가 집에 도착 하자마자 우리 애기 강아지 어디있냐고 찾으시는 거였습니다. 저의 품 안에 있는 강아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죽어있는 딸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부모님 한테는 딸이고 저에게는 여동생인 태어난지 세달 된 아기를 제가 죽여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엄마도 저 처럼 우시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은형아 그거 하지 말지 그랬어ㅜㅜ. 엄마는 강아지 내일 산에다가 묻어줘야 하니까 오늘은 그만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했던 생명을 품에 안고서 울다가 자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니 아침이 왔습니다.

    엄마는 우는 얼굴로 강아지를 한번 안아 보시고는 우리 집에 오지말고 다른 집에 갔으면 잘 살았을텐데ㅜㅜ 라고 하시면서 슬피 우셨습니다. 엄마가 샤워 하실 때면은 강아지가 엄마가 물에 빠진 줄 알고 큰일 난 것처럼 낑낑 대면서 난리를 쳤던 일도 말하시고 설거지 하실때도 푸들이가 엄마 다리잡고 낑낑 대던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차마 엄마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같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에게 자신들의 딸을 산에 묻어주고 오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는 거울을 볼 때면은 제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살.인.마.

    그리고 그 해 8월 26일에 다시 신경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한 후에 다음 해인 2019년 3월 23일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입원하니까 병원에 입원하러 갈때도 또 퇴원하게 될 때도 엄마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게 들어서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심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어리석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해 9월 30일에 끝나는 보호관찰이 또 문제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약속을 안 지키고 하루도 못 버티고 자살시도한 수원에 있는 이상한 알콜 병원에 8개월 만에 퇴원한 저를 강제입원 시키려고만 안했으면 보호관찰 때문에 저희 집에서 충주까지 차타고 두 시간이 넘도록 왕복하는 일이 없었을거 아니냐며 다시 한번 엄마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집안 살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는 백만원짜리 인터폰을 고장 냈습니다. 그리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2018년에 입원했던 날짜랑 똑같은 2019년 8월 26일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3월 1일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보호관찰은 끝났지만 5년짜리 집행유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엄마를 원망하게 되어 이번에는 이사 올 적에 부모님이 큰맘먹고 구입하신 TV를 고장냈습니다. 안방에 엄마가 좋아하는 토끼 모형에 담겨있는 노란색 손 소독제를 화장실에 가서 욕조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울면서 화장실에 오셔서 얘야 그거 엄마한테 소중한 거니까 제발 버리지마ㅜㅡㅜ 하시는데 저도 마음이 편치않고 후회만 남더라고요. 엄마한테 복수하면 속이 시원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죄책감 후회막심 이런거만 느끼게 되고 눈물만 나오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사설구급차를 불러서 입원하게 되었는데 안양에서는 차로 10분 이면 병원에 갈수 있어서 현금 십만원이면 되었는데 이곳 음성군 에서는 차로 한시간 정도 걸려서 현금 25만원을 줘야만 했습니다. 사실 저희집이 돈이 많고 잘 살아서 한달에 50만원 이나하는 병원비를 감당할수 있어서 입원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집은 원래 가난한데 형네 아파트를 사주느라 그 동안 살면서 모아온 돈을 다 쓰고 이사와서는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형편 이었습니다. 제가 정상이면 나이 많은 아버지가 힘들지 않게 제가 대신 일을 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지나간 일에 눈이 멀어 증오와 복수심만 가지고 오히려 부모님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안양에서 살때는 억울하게 입원 하였지만 이 곳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이사 와서는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러서 입원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만 물어 보았습니다. 제가 강제입원 당하기 전에 집안 살림에 한번이라도 손을 댄적이 있냐고요.  2015년 서른한살에 집에서 내 쫒지 않고 얻혀살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저의 방에서 삼일에 한번 나와 겨우 한끼먹고 물 마실 적에도 엄마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건 부모님 잘못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회적 약자에게 잘못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정신병원을 폐쇄하고서 자살율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 쪽 관계자가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율이 높은 강제입원과 관계가 있다면서 강제입원율이 줄어 들면은 우리나라의 자살율도 획기적으로 줄어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유럽이나 선진국들은 이탈리아 처럼 폐쇄병동을 줄여가는 추세라고 하고요. 미국이나 독일은 법정에서 재판 받는것 처럼 판사가 강제입원 하는것을 최종적으로 심사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강제입원율이 10 ~ 20% 인데 반해 왜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만 80% 가 넘는건지 너무 원망스럽 더라고요. 또 다른 나라들은 평균 입원기간이 2주 정도인데 반해 왜 대한민국만 6개월이나 되는 것인지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판사 검사 변호사가 개입하는 재판에서 유죄를 확정받은 사람도 알고보니 무죄였다는 얘기들을 가끔 들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무죄로 풀려난 죄인 중에서는 심지어 사형수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신병원 에서는 환자가 곧 돈이라서 보호자의 말만 듣고 의사가 서명 한 번이면 강제입원이 됩니다. 얼마나 억울하게 갇혀있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대한민국이 강제입원을 전화 한번이면 되게끔 해놓지 않았다면 저희 엄마가 강제입원 중독증에 걸리지 않으시고 저도 죄인이 되는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인권의 사각지대 에서 그렇게 스무번 가까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니까 주치의 선생님 말대로 기존에 있던 병은 더 심각해지고 없던 병도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퇴원 하면은 잠시 동안은 괜찮았다가 또 과거일로 인해 집안 살림에 손을 대기 시작 했습니다. 이사오기 전부터 안방에서 애지중지하던 티비를 고장 내었습니다. 또 에어컨을 고장냈고 부모님이 에어컨을 대신해서 사오신 선풍기 두대에도 손을 대어 고장나게 만들었습니다. 엄마가 우리집은 그 동안에 여름에 에어컨 바람 한번 쐬어본 적이 없이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에어컨을 구입해 본것인데 몇번 틀어보지도 못하고 고장이 났냐면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쁜 드레스룸 화장대에 있는 거울을 깨트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방기에 온도가 표시되고 집안 난방을 틀거나 끄게 하는 것을 고장내어 버리고 안방에 시계가 표시되는 것을 부셔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안방에 형광등이 오전 12시만 되면은 자동으로 켜져서 부모님이 잠에서 깨어 형광등을 끄셔야만 했습니다.

    저의 동생 푸들이(ㅜㅡㅜ) 그리고 인터폰 티비 에어컨 엄마가 아끼시는 손소독제 선풍기 난방기 형광등 스위치 화장대 거울 그리고 방문을 무려 3개나 부숴 버렸습니다. 이곳 음성군으로 이사와서는 적지않은 34세의 나이라 하루빨리 일자리를 가졌어야 했는데 집에서는 6개월 병원 입원은 6개월 그렇게 1년 2년 증오와 원망으로 한심스럽고 부끄러운 인생낭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저의 나이는 2022년을 기준으로 85년생 38살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서있다가 주저 앉으시면서 새 집이 다 망가졌네ㅜㅜ 하시면서 눈물 흘리시는 날이 많아 지셨습니다. 엄마의 그 말 세상에 새 집이 다 망가졌네ㅜㅜ 하시는 걸 지켜보려니 저의 가슴이 찢어질듯 많이 아팠습니다.

    올해 68세 되시는 아빠도 집안 살림은 너가 돈 벌어서 고쳐라 아빠는 당뇨도 있고 나이가 많아서 일 오래 못한다. 아빠 죽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어서 정신 차리고 일자리좀 구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하루에도 천번이 넘도록 이 생각을 합니다. 푸들이도 살아있고 집도 멀쩡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도 많이 드렸습니다. 제발요. 하나님 푸들이를 처음 만났던 그 날로 시간을 되돌려 주세요. 하면서 기도를 많이도 들어봤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푸들이를 생각하면 저 같은 살인마는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고 참으로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다 망가진 집을 보고있자니 여기로 이사오기 전에 노숙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저 혼자 독립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아니면 하루에도 백번을 넘게 생각은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살 시도를 해서 진작에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 6월 29일 안양에서 음성군으로 이사오는 꿈을 꿉니다. 다행이도 저는 이사 오기전에 자살을 한 상태라서 엄마 아빠만 이사 왔습니다. 제가 죽은 저희의 새 집은 정말 아름 답습니다. 인터폰이 새거라서 아주 이쁘고 바깥하고 소통이 아주 잘 됩니다. 안방에서 애지중지 하던 티비가 멀쩡해서 부모님이 안방 침대에 안락하게 누우셔서 티비를 볼 수도 있습니다. 안 방의 에어컨도 멀쩡해서 부모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휴식을 취하실수 있습니다. 거실로 나가봅니다. 수백만원 짜리 비싸고 얇고 화면이 엄청 큰 티비가 멀쩡해서 부모님이 좋아라 하십니다. 거실에 엄청 큰 에어컨이 있어서 부모님은 여름에 엄청 큰 거실 티비를 보시면서 에어컨 바람을 쐬실 수 있습니다.

    화장대에 있는 거울도 깨지지 않고 멀쩡해서 보기에도 이쁩니다. 난방기도 고장나지 않아서 추운 겨울에 난방을 올릴수 있습니다. 안방의 형광등 스위치도 멀쩡해서 시계를 보거나 알람을 설정할 수도 있고 밤 12시에 안방 형광등이 켜지는 일도 없습니다. 방문 3개도 부숴지지 않아서 누가 보아도 이쁩니다. 그러다가 8월 3일에 세 달된 암컷 푸들이를 입양 합니다. 엄마 아빠 두분 다 너무 좋아 하십니다. 8월 12일에 푸들이는 죽지않고 엄마 아빠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같이 삽니다. 정말 완벽하고 아름다운 꿈을 꿉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 현실을 마주하면 비명부터 나옵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새 집이 다 망가졌네ㅜㅡㅜ 하시면서 주저 앉으시고요. 또 우리집에 열흘 있다가 하늘나라로 가버린 푸들이가 너무 보고 싶다면서 그 긴 시간동안 눈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최소한 집 만이라도 고칠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어서 집을 새것처럼 고치고 푸들이 강아지도 엄마 아빠에게 선물로 주고나선 자살을 해서 죽든지 하고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저의 의지가 부족해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동안에도 저는 15년째 은둔형 외톨이 입니다. 강박증과 정신증이 너무 심하여서 비록 경증이지만 장애인 복지카드를 발급 받은 저한테는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힘이듭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생활 해본것이 2007년 11월 23살 때에 군대 전역 할 때까지 2년 동안 고생해 본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은 당장 일자리를 구하라고 하면은 대체 어디서부터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지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kbs 동행 제작진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머리숙여 부탁드립니다. 매일 같이 주저 앉으시며 새 집이 다 망가졌네ㅜㅡㅜ 라고 하시는 저희 엄마에게 웃음을 선물해 주세요. 제가 빨리 일자리를 구해서 벌은 돈으로 집을 고쳐야 겠지만 장애인인 제가 어느 세월에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제발 저희집을 새 것처럼 고쳐주세요ㅜㅜ. 검지 손가락이 절단되어 없으신 아빠가 힘든 일 그만 하시도록 장애인인 저도 일할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주세요.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2/04/29 17:09:30  119.197.***.155  거대한까마귀  175861
    [2] 2022/04/29 17:55:30  211.168.***.2  푸웃  73550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고민게시판 익명악플에 대해 좀 더 단호히 대처하겠습니다.
          익명 기능 악용에 대한 제재조치를 적용했습니다.
    1795021
    너무 멀리 와버린겁니다. [1] 베스트금지 익명ZmRoZ 22/05/14 01:47 1023 0
    1795017
    직업 추천좀 해주세요. [6] 베스트금지 익명bGxnZ 22/05/13 22:39 707 0
    1795016
    대출조회 안뜨는 대출은 없겠죠? ㅠ [3] 베스트금지 익명YWFgY 22/05/13 22:36 642 0
    1795010
    형님들....산수를 시작 해보려 하는데.... [13] 창작글베스트금지 저를아시나요 22/05/13 15:40 1427 0
    1795005
    헤어져야하는게 맞지 [6] 베스트금지 익명YmFhY 22/05/12 23:16 1188 4
    1795004
    갈구는 팀장 대처 방법 알려주세요. [5] 베스트금지베오베금지외부펌금지 익명bGxoa 22/05/12 22:58 1028 0
    1795002
    대학원 진학 고민 [9] 베스트금지 익명aGlva 22/05/12 21:07 659 1
    1795001
    삼십대중반 남자.. 공기업갈수있을까요 [3] 베스트금지 익명ZWVnZ 22/05/12 19:57 970 0
    1794998
    손절치려는데 막상 아쉬워요 [9] 베스트금지 익명Y2NjY 22/05/12 13:14 1192 0
    1794997
    연락문제 [10] 베스트금지 익명amVta 22/05/12 12:07 818 0
    1794995
    어린 친구들 대하는게 너무 힘들어요. [12] 베스트금지 익명bm5rZ 22/05/12 04:12 1317 1
    1794994
    밥먹을때 남 식판에 기침하는 아저씨 [9] 베스트금지 익명Y2pra 22/05/12 00:52 1199 2
    1794993
    내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졌던 순간들 [6] 베스트금지 익명bW1mZ 22/05/12 00:45 1148 1
    1794992
    사회복지사관련 아시는 분 계신가요? [1] 베스트금지 올플 22/05/12 00:24 1109 0
    1794991
    삶이 의미가 없어요. [13] 베스트금지 익명Y2NiY 22/05/12 00:07 873 2
    1794990
    나 정신병인가? [5] 베스트금지 익명Y2NiY 22/05/11 23:52 718 0
    1794989
    고민 좀 들어주세요 [3] 베스트금지 힘들오이 22/05/11 23:15 909 0
    1794987
    집근처 헬스장 처음가는데요 [5] 베스트금지 익명bGxqa 22/05/11 21:57 747 0
    1794986
    어릴쟉에ㅡ 보육원에ㅜ버리겠다고ㅠ [2] 베스트금지 익명bGxpa 22/05/11 21:44 492 1
    1794985
    '내일 회식~!' 사자후 시전하시며 신나버리셨네~ [5] 베스트금지 익명YmRiY 22/05/11 21:18 612 0
    1794982
    여자들은 정말 술을 마시고 다음날 기억을 못하나요? [8] 베스트금지 익명aWpxc 22/05/11 18:40 1183 1
    1794979
    현실과 타협하겠다는데 왜 말들이 많아 [3] 베스트금지 익명YmJiY 22/05/11 14:24 782 3
    1794978
    시골에도 동호회같은게 있을까요? [4] 베스트금지 익명bGxqa 22/05/11 12:55 705 1
    1794976
    친구를 포용하지 못하는 저.. 아쉬운 마음에 글 적습니다 [3] 베스트금지 익명ZWVlY 22/05/11 08:33 544 2
    1794975
    남자분들 좀 봐주세요 [7] 베스트금지 익명bW1qa 22/05/11 06:51 1044 3
    1794972
    기분좋게 술도마셨어요 [1] 베스트금지 익명a2tpY 22/05/10 23:13 476 0
    1794967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사람을 만나서는 안된다...를 깨달았네요. [10] 베스트금지 익명Y2ZlY 22/05/10 13:01 967 1
    1794966
    취업을 하는게 맞는 거 같은데 아쉽네요 [6] 베스트금지 익명aWhva 22/05/10 10:38 732 0
    1794963
    결혼이란? [10] 베스트금지베오베금지외부펌금지 익명aGZsa 22/05/10 02:15 1167 0
    1794962
    15년의관계를 정리했습니다 [9] 베스트금지베오베금지 익명cnJsZ 22/05/10 00:14 2027 16
    [◀이전10개]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 [130] [다음10개▶]
    단축키 운영진에게 바란다(삭제요청/제안) 운영게 게시판신청 자료창고 보류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모바일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