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을 삶을 일생을 통해 최대한 충만한 기억과 감정과 지식과 경험등으로 채워나가는 것(최대충만관념)이라고 한다면 내가 합목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타인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의미에 대한 일차적인 생각은 물질과 관련된 것이다. 실로 나에게 있어 인간은 내가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인들이 있기에 공동체가 있고 공동체가 있기에 나는 사회생활을 할수 있으며 그 사회 속에서 나는 공동체에 일정부분 기여해주고 그 댓가로 나에게 주어진 온갖 먹고사는 문제들을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무인도에 혼자 남아서 살아가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것은 합목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훨씬 유리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에게 인간의 의미가 물질에 대한 것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무인도 이긴 한데 AI 와 자동화 로봇으로 먹고 사는데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진 무인도를 상상해 본다면 좀더 명확해 진다. 물질에 대한 문제가 없음에도 여기서는 그다지 합목적적인 삶을 영위할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런 완벽히 편리할 지언정 혼자 무인도 보다는 일정부분 불편할 지언정 함께 무인도를 택할것 같다.
물질적인 부분과 함께 타인은 나에게 인간에게서만 얻을수 있는 특별한 교감의 기회를 제공한다. 타인일 지언정 인간은 나와 기본적으로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렇게 내면이 유사하기에 나는 그들을 통해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교감을 할 기회를 가질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교감이 최대충만관념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렇게 교감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무시당하고 통제당하고 경멸당하고 차별받고 천대받는 것도 교감이니 교감도 교감 나름이긴 하다. 그러니 좀더 정확히 표현해보면 나에게는 타인과 가지는 특정형태의 교감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욕망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타인들로부터 원하는 그 특별한 형태의 교감은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충족되는 욕망은 무었인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귀하고 특별한 존재며, 세상을 좀더 옳게보고 제대로 통제해서 최선에 가깝게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싶은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알수없고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에서 최대충만관념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주어진 환경을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는데 저런 확신은 그 근본적인 원동력이 될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저런 확신에 대한 욕구의 원천이리라. 그리하여 그것이 옳고 그르든 간에 스스로의 깨닳음으로 그런 확신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깊은 생각과 내공이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하지 나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내 생각이나 행동이나 결과물이 다른존재대상으로 부터 존중받고 공감받고 동조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음으로써 그리고 그렇게 되게끔 삶을 수정해 나가면서 그런 확신은 조금이라도 강화될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것은 인간처럼 나와 같거나 나보다 우월하다 인정되는 존재만이 해 줄수 있어 보인다. 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들짐승이나 가축 반려동물들이 나의 어떤 각별한 가치를 알아봐 줄거라 기대하기 어렵고 설사 그렇다더라도 그들의 판단을 신뢰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 인간과 교감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의 본질로 보인다. 만물중에서 나와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 즉 인간은 나의 특별한 교감대상이다. 삶의 목적을 이뤄나가는데 있어 서로간에 이로움과 특별함과 가치와 귀함을 알아보는 이들과의 교감은 그 자체만으로 서로간에 관념을 충만하게 하며 서로와 서로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주도적으로 만들고 완전하게 하는듯 하다. 서로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외로움과 우울함을 해소하며 서로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위로받고 이해받으면서 말이다. 이런 존재에라면 충분히 마음을 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라는 말은 사심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정한 주의와 관심을 준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그 사람의 마음 속을 깊이 이해하고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지는 아마도 그 사람을 배려하고 맞춰주고 싶은 마음에서 때문일 것이다. 정리하면 '누군가에 마음을 준다'는 말은 곧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말이 된다. 나아가 숙명에 의해 각인된 타성이 작용하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부모형제 배우자 자녀같은 가족이나 각별히 친밀한 타인의 경우 너와 나의 목적은 우리의 공동 목적이 되고 그 사람의 충만한 삶과 관념을 자신의 목적과 버금가는 것으로 확장해서 간주하고 그 사람의 충만함을 위해 자신의 충만함을 일정부분 포기 희생 양보해서 헌신하기도 한다.
가치는 희소성에서 오고, 대체 불가능한 대상에는 본질적인 희소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불가능한 대상은 필연적으로 귀하고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잘 난것도 없는 어떤 누군가가 나에게 (또는 내가 어떤 누군가에게) 각별히 귀하고 존엄하다면 그 대상에게는 나에게 (또는 나에게는 그 대상에게) 대체 불가능한 어떤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거 가지는 그 가치의 본질은 아마도 지금까지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서로간에 교감하고 소통햇던 기억일 것이고 서로간에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신경과 정성을 쓴 시간일 것이다. 시간과 신경 자원은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도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이야 말로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자기 본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누적된 기억은 그 자체로도 대체될수도 재 생산 되거나 복제 될수 없는 특별함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알고 지냇지만 교감에 있어서 서로간에 계기나 숙명이나 이끌림이 없어서 등으로 서로 신경쓰고 맞춰주고 배려해주는 기회나 행동이 적엇거나, 또는 있엇더라도 상대방이 그에 대한 가치를 사소하게 생각하고 그런 행위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런 교감에서 오는 형태의 기억은 별로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만큼 덜 덜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덜 귀한 존재가 된다. 예를들어 내가 두마리 개를 비슷한 시간과 정성으로 키웠는데 어떤 개는 산책하다 만난 초면인 사람이 주는 간식에 언제든 홀라당 넘어가서 따라갈것 같이 행동하는 반면 또다른 어떤 개는 건너마을 다른 집으로 입양을 시켯는데 다음날 어떻게 굳이 탈출해서 다시 돌아왔다면 두 개는 견생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랏고 나의 개를 향한 교감하고 소통하는 나를 보는 두 개의 관점은 상당히 달랏음을 의미한다. 전자에게 중요한 것은 맛있는 간식 그 자체엿고 나는 단지 그 맛있는 간식을 주는 수단적 장치 엿을 가능성이 크며 그래서 나와의 교감보다는 간식에 주목햇을 것이다. 그 결과 그 개에게는 나와의 교감에 대한 누적된 기억과 시간 별로 특별히 없엇기에 나에 대한 대체불가능함에서 오는 어떤 가치가 별로 없으며 그래서 간식을 더 충만하게 주는 임의의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나는 언제든 대체가능한 존재다. 반면 후자는 맛있는 간식과 함께 자신에게 신경써주는 나의 행위가 자기 견생에 주는 어떤 특별한 가치도 인식하고 주목하고 기억했을 것이며 그래서 그것과그런 상태를 귀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상태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언급햇던 이런 소수의 친밀관계인을 제외한다면 나에게 대부분의 타인은 물질적이고 수단적인 부분이 주요하다. 이게 무슨 타인을 작전을 파서 조금이라도 주도권을 쥐어 우위의 유리한 입장에서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대상으로 보겠다는게 아니라 대다수의 타인은 나와 물질적인 측면에서 주어진 같은 목표 효율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서로 상호 존중 신뢰하고 협력하는 호혜의 대상이라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인간만의 특별한 의미라면 인간만이 진정으로 나의 조금이라도 귀하고 특별함을 알아봐줄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것을 찾아봐주고 알아봐주는 인간과의 교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충만하게 하며 나아가 내가 제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며 여기서 오는 활력과 자신감은 나를 더 충만하게 살게끔 이끈다.
반면 양날의 검이라고 해서 나를 진정으로 천대하고 경멸하고 차별하고 무시할 수 있는 존재 역시 인간이다. 이런 인간과의 교감은 나를 괴롭고 귀찮게 하며 나의 본질을 해치기 때문에 나에게 전혀 필뇨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절실히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필요와 역인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없었으면 하는 존재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러하다고 판단된다면 나는 불편할 지언정 기꺼이 무인도나 산속에서 홀로 자염인으로 살고자 할 것이다. 진실로 인간은 관심과 인정과 사랑을 먹어야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그것을 줄수 있는 대상이 다름아닌 인간이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