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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좀 남아서 오늘도 내가 씀.
이틀 전에 아빠한테 왈칵 화를 냈어. 사실 그렇게 화 낼 일도 아니었는데 그땐 정말 참지 못했지. 자초지종을 말하자면 말이야...
그 망할 놈의 네팔 동네 고양이가 발단이야.
불쑥 방 안으로 녀석이 들어오려는 것 아니겠어? 아빠는 침대에 누워 평소처럼 멍때리고 있었고. 난 바로 전투모드로 돌입해서 으르렁거렸지.
모든 냥이들은 전투모드일 때 내는 울음소리가 따로 있다고. 그런데 그 소리가 사람들은 듣기 싫은가봐. 녀석도 움찔했던지 방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더라고. 난 더욱 의기양양해서 호통을 쳤지. 그런데 아빠가 침대에서 일어서더니 내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는 게 아니겠어? 시끄럽다는 듯이 말이야. 그래서 나도 돌아보며 소리쳤지!
"이냐냐냐냐냐냐냐앙!"
그래 맞아. "아 좀 가만있어봐! 짜증나게!" 란 뜻이야.
아빠도 좀 놀란 듯이 풀이 죽어 침대에 다시 누워 버리더라. 분위기가 갑자기 좀 머쓱해졌지.
사실, 나도 웬만해선 아빠한테 화를 잘 안내거든. 나도 성격이 많이 바뀌었단 말이야.
물론 옛날에는 삐치기도 많이 했고 화도 많이 냈었지. 보여줘?
좋아 내 성격의 변천사를 보여주지.
네팔에 지진이 오기 전 집이 아니라 가게에서 생활할 때 아빠가 안보이면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그래서 그럴 때마다 아래층을 내려다 보면서 기다렸는데 그걸 재밌다고 사진을 찍더라고 참나.
철없는 모습에 화도 참 많이 냈었지..,
하도 화가 나서 한 시간 동안 벽보고 앉아 삐치기도 해 봤고 말이야. 하지만 소용없어, 그저 귀엽다고 사진만 찍어댈 뿐. 그래서 내가 더 참기로 했지 별 수 있겠어?
좁은 가게에서 지내다가 지금 있는 집으로 옮긴 뒤부터는 마음껏 놀 수 있게 되었지. 넓은 마당도 있고 뒤뜰도 있고, 무엇보다 다닥다닥 붙은 지붕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놀 수도 있고 말이야. 물론 성가신 동네 고양이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난 우아하고 도도한 한국 고양이 '나루'라고.
그리고 촘롱아저씨.
며칠 전 홀연히 사라졌지. 예전 집에 갔다더라고 혼자서 말이야. 반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라는데 어떻게 간 것인지.
그리고는 이틀인가 뒤에 다시 그 길을 반대로 걸어서 왔더라고. 무슨 볼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튼 참 알 수 없는 양반이야. 촘롱아저씨는 날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난 그냥 옆을 지나가기도 무서워.
깜보는 촘롱아저씨랑 아주 붙어살아. 촘롱아저씨도 깜보가 아들 같은 가봐. 둘이 진짜 부자관계는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 너무 닮았거든.
깜보는 형제들과도 헤어지고 엄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니 좀 불쌍하기도 한데...하도 내 앞에서 버릇없이 굴어서 난 별로야.
이상한 토끼는 말이야.
사라졌어. 토끼장 밑바닥에 땅굴을 파서는 도망갔데. 그런데 나는 어디 있는지 알지. 정원 한 귀퉁이 숲 속에 콕 박혀 있더라고. 상추밭도 있고해서 추운 것 빼고는 토끼장 안보다는 살만하다나 뭐라나.
아빠가 그러더라고 어제부터 이곳 포카라 페와 호숫가 여행자거리는 뉴이어페스티벌이라고. 그런데 올해는 예전 같지 않데. 두차례 지진하고...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국경 분쟁 등등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서라고 하더라고. 아빠는 그것 때문에 걱정이 많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휴...얼굴도 많이 어두워서 덩달아 나도 맘이 좋지 않아.
사실, 이 글도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주절주절 말하면 아빠가 그걸 하나하나 기억했다가 살을 보태 올려주는 거거든.
어떻게 고양이랑 인간이랑 대화를 할 수 있냐고? 나도 그게 신기하긴 한데, 아마 내가 애기 냥이었을 때부터 서로 뜻모를 대화를 주고 받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겠지. 말하자면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교감'이란 것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 그래도 믿기 싫거든 그냥 아빠랑 나의 네팔이야기는 '소설 같은 수필'이라 생각해도 좋아. '수필같은 소설'이라 해도 좋고.
솔직히 세상 사람들이 아빠와 나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면 둘만의 비밀로 남겨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
사실 나도 아빠라고 부르지만, 어떤 때 보면 너무 철없는 동생 같고 어떤 때는 오빠같이 든든하고, 또 어떤 때는 친구같아.
아빠가 어떻게 오빠나 동생, 친구가 되냐고? 인간의 관점으로만 보진 말아줘. 난 고양이라고.
다음 편엔 아마 2015년에 네팔에서 겪었던 다사다난 했던 일 가운데 한두 가지랑 뉴이어페스티벌 이야기를 할 것 같아. 2015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러니까 마무리차원에서 글을 쓸 거래. 철없는 우리 아빠가 말이지.
그럼 안녕!
- '주네팔한국고양이'…….라고 쓰고 '주네팔한국대표고양이'라고 읽는 '나루(Na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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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 아오....간밤에 동네 고양이 녀석이 또 들어와서 밥상 엎어놓고 감. 아빠에게 아무래도 대책을 강구하자고 말해야겠어.
출처 | http://www.catxcat.co.kr/bbs/board.php?bo_table=mag&wr_id=386&code=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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