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8일 SK 감독 해임
★ 김성근, 바로 다음 날 일본으로 출국.
- 해임에 열받아 있는 상태라 언론과의 접촉을 완전 끊음.
- 김성근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오사카에서 우연히 마주친 야구팬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알려짐.
★ 이렇게 열받은 상태라 상당기간 일본에 머물것 같아 보였지만 불과 일주일만인 8월 26일 돌연 귀국.
★ 뜬금없이 부산,경남 지역으로 내려가선 리틀 야구단과 중학교에서 야구 지도.
- 그리고 언론을 피해 숨어지내던 그동안의 모습에서 돌변, 언론에 대대적으로 자신이 경남에서 유소년 야구 지도하고 있다고 알리고 '유소년 야구층을 두텁게 해야한다'는 등 언플. 마치 유소년 야구 걱정은 혼자서 다 하는듯한 모습.
- 김성근의 70평생에 경남과의 연고는 40여년전인 1969년 1년간 마산상고에서 코치를 한 것뿐.
- 그나마도 다음해에 팀과 상의없이 급하게 코치직을 그만두는 통에 마산상고가 어려움을 겪는등 헤어지는 과정도 별로 좋지 못했음(동아일보, 1970.09.28, 마산상 황금기재흥에 부푼 꿈 中)
- 즉,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면 굳이 경남에 갈 이유가 전혀 없음.
- 그렇다면 일본에서 급거 귀국하고 하필 경남에까지 내려가서 학생들 가르치고 저렇게 대대적으로 선전을 한 이유는?
- 그것은 경남 연고의 신생팀 NC가 감독을 물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NC에 자신을 어필하고자 그런것으로 보임.
★ 하지만 NC는 9월 1일 김경문을 NC 감독으로 선임.
- 아니나 다를까 김성근은 선임 과정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일련의 과정을 꿰뚫고 있었으며, 공식 발표전에 "김경문이가 됐다며?"라며 놀라움을 표시
NC 측은 김성근 전 감독과의 접촉 여부에 대해선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김성근 전 감독의 한 측근은 1일 어제 밤 발표가 있기 몇 시간 전에 감독님을 뵀는데. 김경문이가 됐다며?라고 말했다. 일련의 과정을 꿰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측근도 굳이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NC가 내부적으로 검토하다 김경문 감독 쪽으로 굳힌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물먹은 김성근은 8월 31일 서울행.
- 8월 26일에서 31일까지 단 6일만에 부산,경남 지역의 수많은 어린 선수들에 대한 지도를 다 끝냈단 말인가? 김성근이 야구의 신이라서, 한번 쓱 쳐다보기만 해도 어린 선수의 문제점을 다 파악하고, 말 한 마디만 해주면 바로 실력이 일취월장하기라도 한단말인가?
- 그렇게나 유소년 야구가 걱정된다며 언플을 해 놓고는 불과 6일만에 경남 야구 지도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 더 이상 NC에 어필할 필요를 못느껴 경남에 별볼일 없어지니, 그만둔 것으로 밖엔 볼수없음.
- 위 기사에서 보듯 8월 31일에 김성근이 NC의 김경문 감독 선임 사실을 알게 되자 바로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옴.
- NC 감독에 실패하자 울분에 찼는지 "이제 프로야구 감독직을 누가 시켜주기를 바라지도, 하려고 애쓰지도 않겠다"는 인터뷰를 함 (9월 7일)
★ 9월 5일부터 성균관대 인스트럭터
- 올시즌 끝나면 많은 구단에서 감독직 개편이 예상되기에, 급히 수도권으로 옮겨 야구 지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 각 구단에 자신을 좋게 어필하고자 하는 모습.
★ 하지만, LG,두산,기아 감독직에서 모두 물먹음
★ 이에 김성근은 "일본 프로팀 감독 제의 받았다" "고양 원더스 감독 제의 받았다" (11월 11일 인터뷰)고 하며 애써 자신을 여기 저기서 데려갈려고 난리인듯 언플하는 모습.
- 늘 그렇듯 고양 원더스와 관련된 이 기회에 "2군 활성화, 책임감 느낀다" 며 2군 걱정은 혼자 다 한다는 식으로 자신을 지각있는 야구인으로 보이기 위한 언플은 빼먹지 않음
★ 11월 14일 급기야 일본으로 출국.
- 이 기간은 일본시리즈가 열렸던 시기로, 이후 일본팀들의 코칭 스텝 개편이 예정되어 있었음. 이때를 놓칠새라 허겁지겁 일본으로 출국해서 새 직장을 알아보지만
- 하지만 물론 모든 곳에서 물먹음.
★ 결국 아무 곳에서도 불러주는 곳이 없자 낙방해선 쓸쓸히 돌아와서 이제야 고양 원더스 감독직을 맡으려고 함.
- 다른데서 불러 주질 않아 별 수 없이 마지막 남은 고양 원더스 팀을 맡는 거면서 "후배 위한 마지막 의무" ,"한국 야구 개척은 사명"이라며 마치 무슨 큰 용단이라도 내린듯한 언플은 역시나 빼먹지 않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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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망치듯 감독직을 맡게 된 고양 원더스.
고양 원더스에서도 1군 코칭스태프 수준의 연봉을 보장했고, 구단주가 시가 2억원 상당의 벤츠까지 선물했다.
언론들은 김성근이 마이다스의 손으로 선수들에게 기적을 일으켜 선수들을 프로에 진출시키고 프로 2군을 상대로 5할의 성적을 냈다는 기사를 양산했는데...
그러나 현실은?
용병 투수가 팀 이닝의 80% 가까이 던지는 아름다운 모습!
KBO 2군에 들어가려면 최소한의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튼 그건 팀 사정이고 김성근은 외국인 용병들을 굴려서 5할 승률 맞췄을 뿐이지 마이다스의 손으로 선수들을 프로로 보내거나 기적의 성과를 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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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양원더스는 이른바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과 ‘괴짜 구단주’ 허민의 만남으로 창단 초기부터 다양한 화제를 양산했다. 특히 허민 구단주는 매년 사비 30억 원 이상을 고양 원더스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열정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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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웃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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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지난해와 올해 경기개발연구원과 한양대에 의뢰한 독립구단 운영자금 조사결과를 보면 한 해 12억 7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허 대표는 이 금액의 3배가 넘는 돈을 고양원더스에 쏟아붓고 있다. 독립구단이 많은 일본에서도 구단 평균 운영비는 7억~8억 원 수준이고, 15억 원을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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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일본에서도 독립야구단에 많아도 15억 이상 안 쓰는데, 김성근은 용병 뽑느니 외국인 코치 뽑느니 하다가 1년에 30억 넘게 돈지랄 했다는 뜻.
정리하면, 프로야구 감독 해보려다가 아무도 안써주니까 할 수 없이 원더스 감독직을 수락하고,
감독이 되고 나서도 외국인 용병만 주구장창 써서 평소에 하던 조잡스러운 야구만 하다가 구단 해체와 함께 끝난게 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