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제가 모태솔로 약 25년 내외 정도를 지나고 있었던 어느 해 초여름 밤,</div> <div>한강고수부지에 놀러갔었습니다.</div> <div>아마 지금도 꽤 계실 것 같은데, 자리를 펴고 사주를 봐주시는 어르신들이 꽤 계셨어요.</div> <div>평소라면 그냥 지나갔을건데, </div> <div>그냥 인간여자후배랑 나온 길이라 후배가 재미로 보자하니 싫다고 하기도 뭐 하고,</div> <div>또 사실 그때 즈음 마음에 있던 사람이 있었던지라 은근히 또 궁금하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div> <div> </div> <div>하도 충격적인 날이라 가격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5,000원에 둘 다 그냥 봐주신다고해서</div> <div>싼 맛에 그냥 함 보기로~</div> <div>하지만 그 사소한 선택은 큰 충격을 불러왔나니,</div> <div> </div> <div>"자네는 스님이 될 것이야!"</div> <div> </div> <div>'아, 이런 젠장!'</div> <div>솔직히 그 말을 듣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네요. 젠장!  ㅎㅎ</div> <div> </div> <div>안그래도 장기간의 모태솔로 생활로 인해 향후 독거노인 생활을 걱정하던 입장에서</div> <div>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div> <div>더구나 저는 군대에서 수계도 받고 법명도 있었으며,</div> <div>집안도 느슨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불교라고 할 수 있었고,</div> <div>아버지는 신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불교교리 서적과 경전을 쌓아놓고 읽으시는 분이셨습니다.</div> <div>아, 내가 이렇게(?) 되려고 주변 환경이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따라든 생각들이</div> <div> </div> <div>'장손인데 부모님이 내가 스님이 된다고 하면 충격이 크시겠지?'</div> <div>'이 후배가 이 이야기를 학교에 소문내면 어떻게 하지?'</div> <div>'스님이 되는 건 운명이라 어쩔 수 없다 쳐도 여자친구는 사귀어 볼 수 있는게 아닐까?'</div> <div>'이 분에게 돈을 더 찔러주면 운명이 바뀔 수 있을까?' 등등</div> <div>   </div> <div>여러 잡생각이 머리 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가운데 해석까지 친절하게 해주셨습니다.</div> <div>하도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가운데서도 기억이 나는 건 축(丑)에 대한 얘기였습니다.</div> <div> </div> <div>'이 글자가 스님이 될 팔자와 관련이 깊은데, </div> <div>당신은 이 글자가 세개인가 네개인가 하여간 엄청 많으니 짤없이 스님이오'</div> <div> </div> <div>요약하자면 대강 이런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div> <div>뭐라 반박할 근거나 경력이 전무했던 저로서는 할 말이 없었고,</div> <div>저는 나중에 아들딸 셋을 낳아서 다시 이 자리를 찾아 이 어르신께 복수하겠다는 큰 뜻을 품은 채</div> <div>고수부지를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나중에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발령받은 지사에는 동양철학에 관심이 깊은 직원이 두 분이나 계셨습니다.</div> <div>그 중 한 분께 부탁하여 사주를 봐달라했더니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div> <div> </div> <div>'자네 사주를 차로 얘기하면 그랜저는 못되고, 소나타 정도야.</div> <div> 그런데 그랜저라도 가다가 사고가 나고 길이 막히면 소용이 없는데, </div> <div> 자네 소나타가 가는 길에는 일생동안 걸리는게 없이 그냥 쭉 달려갈거야. </div> <div> 이런 인생인데 만족스럽나?'</div> <div> </div> <div>안이하고 무탈하고 게으른 인생을 추구하는 제 인생관에 참으로 만족스러운지라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div> <div>그리고 이전에 고수부지에서 봤던 사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봤지요.</div> <div>그랬더니 이 직원분이 하시는 말씀이</div> <div> </div> <div>'혹시 의사하고 백정의 사주가 같다는 걸 아나?</div> <div> 피 보고 뼈 바르는 팔자인건 매한가지란 말이지.</div> <div> 마찬가지로 광대와 연예인은 다를게 없는거야, 어감과 느낌만 다른거지. </div> <div> 그러니 같은 사주라면 백정이나 광대가 된다고 하는 것보다</div> <div> 의사나 연예인이 될 사주라고 하는게 시대에도 맞고 듣는 사람도 듣기 좋지 않겠나. </div> <div><br></div> <div> 축(丑)자도 스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div> <div> 하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역동적이진 않지만 안정적이고 평탄한 삶을 의미하는 자이기도 하니</div> <div> 막힘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소나타의 인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거지'</div> <div> </div> <div>그 외에도 이렇게 해석하신 이유를 사주의 이치에 따라 여러가지로 말씀주셨는데,</div> <div>그건 제가 역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지라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하여간 결론은 조금 늦게지만 결혼도 했고,</div> <div>셋은 아니지만 멋진 아들녀석 하나도 잘 크고 있어서 스님이 되기는 너무 멀리온 것 같습니다.</div> <div>대처승이 될 가능성이 0%는 아니겠지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 하고,</div> <div>아직까지 소나타는 고속도로를 잘 달리는 중입니다.</div> <div> </div> <div>타고난 운명이란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있다치더라도</div> <div>운명도 마치 번역과 같은거라 해석하기에 따라서 달라질 여지가 큰 것인 것 같습니다.</div> <div> </div> <div>솔로분들, 특히 모태솔로분들 기운잃지 말고 정진하세요.</div> <div>속세를 떠날 뻔했던 인생도 여기 잘 살고 있습니다!</div> <div>나무아미타불~</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