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맨눈으로 "그것"을 볼 수 없듯이 통상적으로 "그것"도 우리를 보지 못합니다.
만약 거울을 통해 "그것"을 본다면 "그것" 역시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매끄럽게 윤이 나는 것 등의 거울 기능을 하게 되는 면적으로도 "그것"을 보게 될 수 있지만,
해상도가 낮으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듯이 "그것" 역시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시설 내부에 거울을 가급적 두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눈을 마주친 사람에게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힐 수 있는 "기괴한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당신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흉측한 괴물로만 인지하게 된다면 남은 인생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겠죠.
관람객이나 직원으로 보이는, 그렇지만 정체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입장하실 때 착용시켜 드린 팔찌는 최대 50M까지 다른 관람객 및 직원과 반응하여 "생물학적 인간"인지를 자동 식별합니다.
작은 화면에 초록색 점으로 표시되죠. 초록색 점과 상응하지 않는 위치에 사람의 형상이 보이면
될 수 있는 한 "그것"과 가까이 있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직접 공격하진 않지만,
의심받지 않는 모습을 한 채 당신 주위를 겉도는 것만으로 정신력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로 인해서 당신은 여러 가지를 망각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게 될 때
7번 매뉴얼 두 번째 항목에서 소개해드린 바와 같이 결국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과 똑같은 존재로 변합니다.
"그것"은 그림자가 광자 질량을 밀어내는 정도의 무게만 지녔음에도 어떻게 빛의 원리대로 육안에 인지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되면 왜 자신과 같은 개체를 늘리려 하는지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장소를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처죠.
"그것"은 표적 추적에 적극적이지 않은 성질을 띠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되기 전 머물던 자리를 사수하는 거로 보입니다.
5층 돌연변이 전시관에서는 "계속 진화하는 고깃덩어리"를 실시간 촬영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울긋불긋한 근육 올, 하얀 살점, 누리끼리한 지방층이 울퉁불퉁 뭉쳐진 덩어리입니다.
실물은 밀실에 가뒀기 때문에 모니터로만 그 상태를 보는 거죠.
그 고깃덩어리는 이름에 걸맞게 생명 기능이 정지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어떤 형상" 갖추려고 꿈틀거립니다.
테라볼트급 출력(110조 전자볼트)의 둘레 70km 원심분리기로 극한의 가속도 환경에서 "그것"을 양자 단위로 분해하는 데도 성공했지만,
원심분리기가 멈추자 다시 진화가 진행됐고 "그것"이 태아와 비슷한 형상을 갖추기까지 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추측건대 "그것"은 자연계의 어떠한 매개로든 에너지를 공급받아 활력을 얻습니다.
우주의 모든 열역학적 에너지가 고갈된 무의 상태에 남는 게 아니라면 "그것" 역시도 죽지 않는다는 이론이죠.
저희는 "그것"을 감시하면서 "지능이 생기는 단계로의 진화"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수십 가지 신경쇠약 실험 장치로 말이죠.
그 방법의 예로는 항원 제거 후 난치병 인자 이식, 핵폐기물 세례, 발암을 유도하고 암세포 촉진, 인공중력으로 압착,
공진효과를 극대화한 음파 충격, 전자기 펄스 용접, 감마선과 가우스 광선에 노출, 극저온에서 둔화시키기 등등 엄청난 학대를 하는 셈이죠.
그 과정에서 그 고깃덩어리가 어떻게 피해를 복원하는지를 관찰하며 다양한 지식을 얻기도 합니다.
그 고깃덩어리는 최종적으로 무엇으로 진화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은 과거 "어느 진화 시점"에서 200명의 연구소 인원을 몰살시켰고
연구소의 양자 컴퓨팅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생각의 속도"로 따라잡아 해킹, 초지능을 섭렵한 뒤
텔레파시라고밖에 할 수 없는 뇌파 공격으로 군인들에게 집단 자살 명령을 내렸습니다.
결국 레일건 탄막을 동원한 열핵폭탄으로 "그것"의 공격적인 형체를 잠시나마 잃게 한 후 수거해 지금의 상태를 유지 중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남극의 면적 680.84km²가 증발했고, 5번 매뉴얼에서 소개해드린
요한 하인리히 베스퍼 씨가 있는 이 전시관에서 그의 조언에 따라 "그것"을 통제하기로 국제협약기구가 결정했죠.
"그것"은 J.H.V씨가 흥미를 갖고 지켜보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