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14)<br><br><br><br>“이제 일어난 거예요?”<br><br>나의 물음에 휴대폰 너머 잠에 취한 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br><br>-응… 자기는 출근했겠구나…?<br><br>순간 장난이 동하고 말았다. <br><br>나는 진지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br><br>“출근이라니… 토요일에 무슨 출근을 해요?”<br><br>-응? 뭐, 뭐라고?<br><br>다급하게 휴대폰을 조작하는 소리가 났고 잠시 후 은경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br><br>-아— 뭐야아아— 정말 이틀 동안 잔 줄 알았잖아아—.<br><br>“푸흐흐흐—!”<br><br>-나 놀려 먹으니까 재미있지?<br><br>“네, 재미있어요. 하하—! 그런데 몸은 좀 어때요?”<br><br>-좋아.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지 엄청 개운해.<br><br>전화기 너머 기지개 켜는 소리와 함께 은경의 목소리가 이어졌다.<br><br>-그런데 나 오늘 저녁 때 신월동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아.<br><br>신월동은 은경의 원룸이 있는 곳이다.<br><br>“왜요? 주말까지 같이 지내려고 온 거 아니에요?”<br><br>-원래는 그랬는데… 나 아무래도 주말에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br><br>은경은 중소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근무하는 날짜가 유동적인 반면 중요한 마감일이 한번 정해지면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어진다.<br><br>“왜요? 마감 잡혔어요?”<br><br>-그건 아니고 다음주 수요일에 시간을 빼려면 미리 일을 좀 해둬야 해서. 춘천 가기 전날에는 나도 준비를 좀 해야지.<br><br>“준비라니… 누나가 무슨 준비를 해요?”<br><br>-자기 가족 중요한 행사인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누님한테 이야기 해. 내가 간단하게 음식 준비할 거라고.<br><br>“혹시… 제사 음식 준비하는 건 아니죠? 우리 제사 안 지내요.”<br><br>나의 말에 은경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br><br>-제사 음식 아니야.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내가 그걸 왜 준비해? 차에서 같이 먹을 거를 좀 만들어 가려고.<br><br>그런 거라면 더더욱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는 않다.<br><br>“그런 거라면 고맙죠. 그런데 많이 준비하지는 마세요.”<br><br>-그래. 그리고 말인데….<br><br>은경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br><br>-그럼… 누님네랑… 우리까지 네 명만… 가는 건가…?<br><br>“그렇죠.”<br><br>별생각 없이 대답을 하고 나서야 이게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br><br>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에도 어머니 기일이 되면, 나와 누나는 외삼촌과 함께 춘천을 갔었으니까. 외삼촌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누나와 나, 둘만 봉안당을 찾았고. <br><br>그러고 보니 어머니 장례식이 끝났을 때에도 아버지는 장지에 오지 않았다. <br><br>문득 아버지가 어머니 봉안당에 간 적이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br><br>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중에 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br><br>-그럼 네 명 먹을 정도만 준비하면 되겠지?<br><br>“네, 그러면 될 것 같아요.”<br><br>-오케이! 그리고 여기 냉장고에 남은 곰탕 내가 먹어도 돼?<br><br>“그럼요. 누나 먹으라고 일부러 남겨두고 온 거예요.”<br><br>-하하—! 고마워.<br><br>“그럼 언제 갈 거예요?”<br><br>-곰탕 먹고 샤워하고, 바로 회사로 가서 출근 도장 찍으려고.<br><br>“알았어요. 조심해서 가요.”<br><br>그렇게 통화를 마무리 하려는데 은경이 불쑥 말을 꺼냈다.<br><br>-자기야, 잠깐만.<br><br>“네.”<br><br>-어젯밤에… 자면서 말이야… 나… 혹시 잠꼬대 같은 거 하지 않았어?<br><br>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알고 있구나. <br><br>하긴 나도 자다가 놀라서 깰 정도였으니까. <br><br>하지만 이거는 모르는 척 해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br><br>전화기 너머 안도하는 듯한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br><br>-그래, 알았어.<br><br>그렇게 은경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 와 자리에 앉았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br><br>이번에는 누나다. <br><br>나는 휴대폰을 들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고, 복도로 나가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br><br>-영식아, 지금 통화 가능하니?<br><br>“괜찮아, 말해.”<br><br>-은경 씨, 잠은 잘 잤대? 월요일부터 잠을 못 잤다며?<br><br>“어제 둘이 만나서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br><br>-응. 많이 피곤해 보여서 물어보니까,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잤다고 그러더라. 은경 씨 혹시 불면증 있는 거니?<br><br>“그런 거 아니야.”<br><br>-그런데 왜 잠을 못 잔대?<br><br>어제 은경이 누나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절하고 사는 어머니를 만났다는 이야기까지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br><br>“그냥 요즘 고민거리가 좀 있대.”<br><br>말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br><br>어머니의 화해 시그널을 알아채지 못한 게 며칠 동안 잠까지 못 잘 일인가 하고 말이다.<br><br>-무슨 고민인데?<br><br>“누나가 그걸 왜 알고 싶어하는데?”<br><br>-뭐? 얘가 지금 누나한테 말하는 거 하고는.<br><br>누나의 말에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온다.<br><br>“진짜 적당히 좀 끼어들어. 어제 일도 그래. 왜 뜬금없이 춘천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벌써부터 시누이 티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br><br>-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건 내가 엄마랑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br><br>순간 누나는 말을 멈췄다.<br><br>“뭐? 지금 엄마랑 확인을 한다고 그랬어?”<br><br>나의 물음에 누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br><br>-아, 아니. 내가 확인을 한다고, 내가.<br><br>“방금 엄마랑 확인한다고 그랬잖아.”<br><br>-얘, 아니야, 아니야. 내가 확인을 한다고.<br><br>“누나가 뭘 확인을 하는데?”<br><br>-별 거 아니야.<br><br>“별 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뭘 확인을 하는데?”<br><br>-아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왜? 은경 씨가 춘천에 같이 가기 싫대?<br><br>말 돌리는 걸 보니 더 캐묻는다고 말할 눈치가 아니다. <br><br>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br><br>“아냐, 가고 싶어해.”<br><br>정말 가고 싶어하는지 은경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음식까지 준비한다고 그랬으니까. <br><br>나는 말을 이었다.<br><br>“그리고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으면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br><br>-하하… 그렇네. 그럼 잘됐네. 내가 은경 씨가 가고 싶어하는 거 알고 이야기 꺼낸 거라니까.<br><br>“얼씨구? 됐고, 왜 전화한 거야?”<br><br>어젯밤 은경이 잠을 잘 잤는지 물어보려고 나에게 전화한 것은 아닐 테니까.<br><br>-아… 그러니까…….<br><br>말끝을 흐리는 누나를 재촉했다.<br><br>“나 곧 점심 먹으러 가야 해. 빨리 말해.”<br><br>-그래… 그러니까… 너… 은경 씨 처음 만난 거… 아버지 기도원에 가려고… 만난 거잖아. 네 매형이 은경 씨 연락처 구해주고…. 그거 혹시 은경 씨에게 말했니?<br><br>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br><br>“그거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였어?<br><br>-응, 어제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그래서 은경 씨에게 말했니?<br><br>“말했어.”<br><br>전화기 너머 한숨인지 탄식음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br><br>“다 말했어. 솔직하게.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 브라더가 사주한 일이었다고.”<br><br>-뭐, 뭐라고?<br><br>“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버지 만나고 싶은 생각 하나도 없는데, 누나 때문에 기도원에 간 거였잖아.”<br><br>-어머,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너는 아버지 만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br><br>“응, 전—혀.”<br><br>누나의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려왔다.<br><br>-쳇—! 거짓말 좀 하지마.<br><br>“거짓말 아니야!”<br><br>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누나는 한발 물러서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br><br>-그래, 알았어.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니? 아무튼 은경 씨한테 솔직하게 말했다니까 다행이네.<br><br>“화낸 거 아니야. 미안해.”<br><br>누나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br><br>-미안하긴. 됐으니까 가서 일 봐.<br><br>“잠깐만. 아버지 이야기 나와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br><br>-뭔데?<br><br>“아버지 말이야… 어머니 장례식 이후에 혹시 한 번이라도 춘천에 간 적이 있나?”<br><br>-어머니 봉안당에?<br><br>“응.”<br><br>-흠… 글쎄…….<br><br>잠시 후 누나가 말했다.<br><br>-당연히 간 적이 있지 않을까?<br><br>“누나랑 같이 간 적이 있어?”<br><br>-그건 아니야.<br><br>“그럼 아버지가 누나한테 춘천에 간다고 말한 적이 있어?”<br><br>-흠…… 없는 거 같아.<br><br>“그리고 내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어머니 장례식 때도 아버지는 춘천에 안 간 거 같은데, 맞지?<br><br>-응, 맞아.<br><br>누나의 대답에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한숨의 의미를 눈치 챈 듯 누나가 말했다.<br><br>-너는 그때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때 아버지가 장지에 가기 싫어서 안 간 게 아니야.<br><br>“가기 싫어서 안 간 게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br><br>짧은 한숨과 함께 누나가 말했다.<br><br>-그거… 삼촌이 못 가게 한 거야.<br><br>누나의 말에 장례식 때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올랐다. <br><br>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외삼촌에게 멱살을 잡혀 험한 꼴을 당한 일 말이다. <br><br>물론 내가 직접 본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br><br>그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외삼촌에게 맞은 사건에 관심을 가질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니까. <br><br>누나의 말이 이어졌다.<br><br>-어머니 기일에 아버지가 춘천에 못 가는 것도 사실 삼촌 때문이고.<br><br>“그건 나도 알아. 아무튼 누나가 알기로, 아버지는 어머니 봉안당에 간 적이 없다는 뜻이네. 그치?”<br><br>-에휴—! 야, 김영식.<br><br>“왜?”<br><br>-너 이제 아버지한테 서운한 거 좀 풀어.<br><br>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br><br>“나는 아버지한테 서운한 감정 없어.”<br><br>이건 정말이다. 진심으로.<br><br>-에휴—! 알았다. 그럼 끊어.<br><br>통화를 끝낸 후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비상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누나가 했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어머니와 확인을 하기 위해 은경에게 춘천에 같이 가자고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br><br>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어머니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br><br>특히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집에 어머니가 있는 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br><br>그 당시 나는 정신차리라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누나를 몰아세웠고, 그래서인지 누나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br><br>그리고 누나가 다시 어머니 느낌에 대해 언급한 게 2주 전이다. 어머니 기일날 춘천에 가면 어머니가 느껴진다고 말이다. <br><br>어머니가 느껴지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누나는 지금 어머니 기일인 수요일에 은경을 데리고 춘천에 가서, 그 어머니 느낌이라는 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br><br><br><br>(다음편에 이어집니다.)<br></p> <p> <br></p> <p> <br></p> <p>작가 블로그<br><a target="_blank" href="https://blog.naver.com/choepeace" target="_blank">https://blog.naver.com/choepeace</a></p> <p>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