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2014년이 저물어가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세월은 저 차가운 바다 밑에서 박제되어 영원히 꽃다울 그 나이에 멈춰있는데, 시간은 너무나도 야속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고3이 될 준비를 하고 있겠죠? 오늘 같은 연말에도 학교에 나가서 자습을 하며 미래를 향한 부푼 마음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으며, 한 뼘 한 뼘 자라나고 있겠지요. 그대로 있어도 어여쁠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2014년 4월까지는요.
얼마 전에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사람 앞에서 저는 침묵했습니다. “지겹고, 지루하고, 돈에 미치고 환장했다”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벌써 몇십 년 전에 몰락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헐뜯으며, 노무현을 욕하고, 국민의 수준이 미개하다는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그러면서 아직 일년도 지나지 않은 세월호는 지겹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빨아제끼는 미국은 2001년도의 9.11테러를 아직까지도 뜨거운 눈물로 추모하는데, 세월을 위한 눈물은 짜증난다고 하더군요. 개인의 일신과 평화를 위해 저는 침묵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저는 이토록 못나고 어리석은 소시민입니다. 비굴하고, 나약했습니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를 않습니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팽목항에 가볼 용기도 나지가 않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운 사람이 배를 탑니다. 그 배, 세월호와 다른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은 매일 그 배의 엔진을 고치고 보일러를 뜯어고칩니다. 낡디 낡은 배라 수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꼬박 하루반을 자지도 못하고 일한다고 합니다. 그런 배들이 수두룩합니다. 세월호도, 오룡호도 그런 배였습니다.
대체 누구일까요? 그렇게 낡고 닳아 오래된 배를 타도록 하는 사람들이, 선박에 대한 안전과 규격을 낮춘 사람들이. 왤까요? 세월호에 대한 의문들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어떤 것 하나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천안함도 사실 엄청나게 궁금합니다. 증거라고 들이댔던 ‘1번’이라는 유치한 표시가. 정말 북한이 그랬다면 전 지금 당장이라도 처들어가서 싸그리 잡아족치고 싶은데, 전쟁이 안 일어나더라구요. 대체 왤까요???
펜션이 무너지고 롯데월드가 흔들거리고 배가 침몰하고, 우리 존재는 기업과 자본에게 땅콩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시시각각 깨닫습니다.
저는 내 소중한 사람의 배가 침몰하는 꿈을 꿉니다. 저는 해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비참했습니다. 깨어나서 꿈을 생각하는 데 눈물이 나더군요. 아마, 진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그 바닷물에 몸을 맡길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기분일까요. 당장 내 곁에 누운 사람이, 아침에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이, 내일도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이리도 허망하게 가버린다면요.
저, 취준생이라 너무나도 먹고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세월호를 잊고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가 있는 이곳이 거대한 세월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선 땅이 너무나도 흔들거립니다. 사회를 돌아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막막합니다. 민주주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권선징악의 사회가, 다 동화나 꿈같은 이야기인 것을 깨닫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서 지성인으로서 그 어떤 성찰과 반성, 시대적 소명이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운 사람으로 무얼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죽을 수가 있습니다. 국가는 나를 구해주지 않을 겁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배운 지식들은 쓸모 없어지고 내 삶은 세월호 자체가 되고 있습니다. 그 배, 나나 내 가족이 탔을 수도 있는 배였습니다.
동물들은 새끼들을 필사적으로 지킵니다. 펭귄은 갓난쟁이들을 어른펭귄들이 만든 원 안에 모아서 추위로부터 지키고, 코끼리도 새끼들이 뒤처지지 않게 제일 뒤에서 따라갑니다. 물론 살아날 가치가 없는 새끼들은 매정하게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동물의 무리는 어린 새끼들을 지키려고 합니다. 당당하게 제 몫을 할 때까지, 길고양이의 어미는 새끼 고양이들을 떠나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제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짐승보다 못한 어른이라서 미안합니다.
저는 내년이면 나이를 먹는데, 아이들은 멈춰버린 세월 속에 있는 것이 미안합니다. 그래서 감상적이 되었나봅니다. 2015년, 우리 안녕할 수 있을까요?
제 텔레그램 프로필 사진은 아직 노란 리본입니다. 그런데 주위에 더이상 노란 리본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 세월호 때문에 아파, 라고 말하면 아무도 공감해줄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정말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감상적이고 유치하고, 같잖은 척 하는 사람이 됩니다. 저같이 느끼는 사람, 정말 아무도 없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