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은 판사의 집단사표 제출을 보도한 조선일보>
사법파동과 그 직후 유신숙청을 기점으로 사법부는 완전히 박정희 정권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꼬장꼬장하게 3권의 한 축으로 대통령을 견제하던 기세는 수그러들고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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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법부 장악의 시발점
1971년 7월 판사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쓰고 항의했던 사건이 있다. 본질적으로는 권력의 외압으로부터 사법부독립을 지키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사법파동"으로 불렀다. 이 사건은 그나마 살아있던 사법부를 박정희 정권이 굴복시키고자 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70년대 초반 법원은 국가배상위헌판결과 각종 시국사건에 대한 무죄판결로 박정희정권과 긴장관계를 형성하였다. 법조계 원로들의 평가에 따르자면, 아직 기백이 살아있던 사법부가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하게 된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이 사법파동과 그 결과라고 한다.

2. 이범렬 부장판사 수사사건
이범렬 부장판사는 형사법원의 부장판사로서, 검찰 기소법원 안팎의 인망이 높은 인물이었다. 앞서 본 적 있는데 <다리>지 사건의 목요상 판사가 <다리>사건을 맡아 심신이 고달파 서울형사지법의 부장판사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는데, 이범렬 부장만이 소신껏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회고했다. 이범렬이 반공법 위반사건의 현장검증 차 제주도로 출장을 갔다가,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로부터 식사를 대접 받는 일이 있었다. 이규명 검사*은 이것을 성 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개시하였다.
물론 그것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1971년 법조계의 현실을 이해한다면, 이 사건의 특이점과 정치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로서는 현장검증 출장을 간 판사가 변호사에게 식사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졌고 검사들도 이런 사정은 뻔히 알고 있었다***. 왕복교통비와 식사값, 숙박비를 변호사가 부담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당시 관행이었다. 그렇다고 밥을 얻어먹은 판사가 유죄를 무죄로 바꿔주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범렬 판사는 법원 내에서 행실이 바르고, 곧고, 칼같고, 강직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밥을 얻어먹는 것도 소문이 안 좋은 변호사는 피하고 문제가 될 사건은 알아서 피했다는 것이 후배 법조인들의 증언이다. 

진짜 문제는, 성 접대 시비가 걸린 것이 시민제보가 아닌 검사가 붙인 미행이 캐낸 정보라는 것이다. 검사가 붙인 미행이 이범렬의 행적을 쫓으며 어디에서 무슨 밥을 얼마치를 먹었느니 하는 걸 일일이 검사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검사들이 판사에게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았을까?

이를 계기로 법원과 검찰 사이는 일촉즉발의 관계로 치닫는다. 소위 "돈을 얻어먹는 검사가 밥을 얻어먹는 판사 뒤통수를 쳤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실제로 당시 검찰비리는 법원비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정권이 미운 인물을 표적으로 삼고 시비를 걸어 떨어뜨리는 이 수법, 어디서 많이 본 것같지 않은가? 사실은 이전부터 이범렬판사가  '깜도 안되는' 반공법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해왔다는게 <이범렬이어야 했던> 이유인 것이다. 

게다가 재밌는 사실 한 가지, 검사들이 이범렬 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해봤자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줄 리 없다-_-;; 그래서 검찰은 노무현-한명숙-곽노현 사건에서도 익히 보아온 전매특허 필살기를 꺼낸다. 기각당한 구속영장을 기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읽어버리는 것. "이범렬이 이렇게 나쁜 놈인데! 출장 가서 변호사 돈으로 술먹고 여자나 품는 놈인데!"하는 얘기를 뻥뻥 떠들었다. 언론은 이를 신문1면에 실어 내보낸다. 피의사실공표죄는 40년 전부터 죽은 법조문이었던 모양이다. 

3. 판사들의 집단사표 제출****
기득권이 아닌, 소장판사들은 이 사건을 박정희 정권의 법원탄압으로 받아들였다. 형사판사들이 먼저 집단으로 사표를 모아 법원에 제출했다. 이 일은 1971년 여름을 강타한 대형뉴스가 되었다. 다음날 민사판사들도 따라 집단사표를 제출했다. 서울지법 판사들은 공동으로 선언문을 발표했다. 사법침해 사례를 1) 반공법·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과 견해를 달리한 법관을 용공분자로 취급하여 협박하고 신원조사를 했다, 2) 판사실에 도청장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를 했다, 3) 무죄선고가 나면 법관이 부정한 재판을 한 듯 비난하면서 예금통장을 조사했다, 4) 판사들을 미행·사찰하고 함정수사까지 했다 등 7개항으로 정리하여 발표했다.***** 사표를 제출한 법관이 150여명에 이르자(전국 법관의 1/3에 달하는 숫자이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수사중단을 지시******하고, 대법원장의 호소로 판사들도 사표를 철회한다.

4. 법원이 권력에 병들다
이렇게 해서 법원이 독립성을 지켰을까? 
대법원장 민복기*******는 사표를 철회하라고 하면서 아무 것도 약속해준 게 없다.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잘해줄께"하는 식이었다. 민복기는 "이 사건이 보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해가 생겼을 뿐이다"같은 헛소리를 하면서 애써 사건을 축소하려 애썼다. 민복기가 박정희에 "알아서 기는" 모양새를 띄자 (지금은 이익단체로 욕먹고 있는)대한변협마저 사퇴요구를 하였다. 애초에 박정희 치하에서 법무부장관을 했던 인물이 박정희 치하에서 다시 대법원장이 된 것이다. 그러니 법원이 어떻게 됐겠는가? 수사는 중단됐지만 이미 이범렬 판사가 향응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전국민이 알게 됐다.

제1차 사법파동?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다. 그냥 이범렬 판사 개인만 처벌을 면한것이지, 
박정희 눈 밖에 났다가는 신세가 어떻게 되는지 
대법원장은 판사들을 지켜주지도 않고
사표 내봤자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오히려 사법파동이 끝난 후부터 정보기관 직원들이 법원에 상주(!)하면서 판사실을 제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한다. 법원장이나 부장판사들이 정보기관 직원을 내쫓지도 못했다.

사법파동은 분명한 저항의 표시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73년 유신정권의 판사재임용 조치가 내려지면서 사법파동 가담자들은 사법부에서 쫓겨난다. 

*이규명은 제1차 사법 파동 당시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이후 74년 민청학련, 인혁당 1심 공판 군검찰관을 맡았다. 86년 오대양 종합건설 부도 사건을 맞아 강정용(대표이사) 구속기소하였다. 이후 80년대에도 학생운동권을 탄압하였다.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장,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장을 지냈다.
**지금은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왜 그 때는 변호사가 판사한테 밥을 샀냐면.....판사가 출장을 가도 출장비가 안 나왔다-_-;;;;;; 피고인이 요구한 증거를 검증하기 위해 판사가 출장을 가면 결국 변호사가 판사에게 경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검찰은 어차피 국가예산으로 수사를 해서 판사한테 제출을 하니 검찰에게 유리한 증거 때문에 판사가 출장을 갈 일이란 드물다.
****집단사표 제출을 주도한 판사는 홍성우이다. 70년대 이래 인권변호계의 핵심으로 활약했으며 이 시리즈의 기본이 되는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0년 자신의 재판기록 일체를 모교에 기증하였고, 관심있는 학자 몇몇이 이를 연구하고 있다.
*****검찰 측은 당연하게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특정 사건에 대해 수사중단을 지시한다는 것도 우습다.
*******이 시기의 대법원장 민복기가 바로 X맨이다. 그는 1936년 일제시대에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경성지방법원 판사, 대통령 비서관, 55~56년 검찰총장, 63~66년 법무부장관, 68년~78년 대법원장을 지냈다. 10년간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1차 사법파동을 무마했고 특히 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에는 대법원상고를 기각하며 사법살인에 일조했다. 81년 전두환에 의해 국정자문위원에 선출되었다. 2005년 서울대 일제청산위가 발표한 서울대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에 선정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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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은 저서 <간원제명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뒷날 사람들이 장차 그 이름을 낱낱이 손가락질하며 논할 것이다. 누구는 충성했다, 누구는 속였다, 누구는 곧았다, 누구는 굽었다(某也忠, 某也詐, 某也直, 某也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