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힐링 한다. 그러나 위로란 말이 더 좋다.



조카 돌을 핑계로 안동으로 갔다.

서둘러 준비했지만 차도 막혔고 반지 사는데 시간을 잡아먹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행사가 막바지였다.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고, 퇴근길에 갑자기 결정 한 일이라 그렇다.

고모님들께 인사드리고 형 누나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하루종일 굶었던 터라 속 쓰릴 만큼 배가 고프지만 식어버린 뷔페음식에 입맛이 없다.

'여긴 왜왔지?'

늦은 탓에 조금 떨어진 자리에 혼자 앉아 오늘 주인공인 조카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다.

"우리집에서 자고 한잔하자."
"그래"

사촌 누나네 집으로 자릴 옮겼고, 형님 부부가 도착 한 후 술자리가 시작 되었다.

별 의미 없는 농담과 험담, 웃음들이 오고 가는 동안 형 누나들은 본인들 자식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어느새 아버지 어머니가 된 형과 누나다.

피곤하기도 했고 술도 먹은지라 쉽게 잠들었다.

정말 좋은 잠을잤다. 언제였는지 기억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푹 잤다.


아침일찍 짐을 꾸렸다.

차막히기 전에 집에 도착하고 싶어서였다.

준비를 다 하고 인사를 위해 깨워야 하나 하고 고민할때 초등학교 동창에게 ㅂ에게 연락이 왔다.

"안동?"
"응. 니도 안동?"
"응. 잠깐 볼래?"
"......"

집이 가까이 있으니 잠깐 봐도 되겠지 싶었다.

커피 한잔 마실 곳 없이 이른 시간이었다. 

마땅히 들어 갈 곳도 없고 차에 앉아 몇마디 주고 받으니 5분도 되지않아 침묵이 흘렀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나 별로 친하지 않은 여자와 차안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초등학교 가볼래?"

ㅂ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그리고 보니 나도 가보고 싶었다. 산 쪽으로 조금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매번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놀라울 만큼 무신경 했다.

학교를 가며 이것 저것 추억을 꺼냈다. 간간히 웃음 흘렀다. 순식간에 학교에 도착했다.

기억에 있던 학교보다 조금 더 작은 느낌 이었다.
구석 구석 돌아 다녔다. 전체적으로 별반 달라진 모습이 아니지만 시설물이나 화단 운동 기구 같은 것들이 바껴 있었다.

"많이 바뀌긴 했네.."
"그러네... 저기 뒤에 유치원도 없어졌더라."

교내에는 특이하게 병설 유치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건물조차 남지 않았다. 
대신 잘 정리되지 않은 텃밭이 그자리에 있었다.

내가 다닐때도 인원이 점차 줄어들어 각 학년이 한반밖에 없었고, 그 인원마저도 열명 내외였으니 유치원이 사라진 것이 자연스레 수긍이 되었다.

그러나 건물마저 사라진 모습에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복도에서 뛰던 모습이 잠깐 떠올랐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거닐다 보니 날이 많이 더워졌고, 학교는 충분히 본 것 같았다.

"병산서원 가볼래"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병산서원은 매년 봄소풍 행선지였다. 그것도 걸어서..... 가장 싫었던 곳 중 하나였다.

생수와 사이다로 목을 추린 후 차를 출발 시켰다.

"우와....여기 아직도 비포장이네?"
"으 .. 이길 걸을때 먼지 많이 마셨는데..."
"맞어.. 저 담벼락 보이면 반 정도 왔다고 했잖아.."
"맞아. 그리고 우리 이렇게 걸어 갈때면 항상 날씨가 오늘 같았었어."
"맞다. 아침에 추워서 입고 왔던거 다 벗어서 들고다녔잖아."
"맛아. 먹을 것도 하나씩 몰래 버리거나 억지로 먹어치우기도 했어."
"맞아........"

도착할때까지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몸서리 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이야기 하지만 입가엔 미소가 진득히 그려져 있다.

초등학교때와 달리 여긴 정말 놀랍도록 변화가 없었다.

길을 지나치는 풍경부터 집들 까지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이정표로 여기던 다 허물어져 가던 흙담도 여전히 허물어져 가는 모습 그대로였다.

주차장에 주차 한 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 돌아다니길 포기하고 그늘 밑에 자리 잡았다.

나: "아..... 요즘 정말 최악인데 여기오니깐 좀 괜찮네."
ㅂ: "왜"
"여자한테 차여서..."
"(웃음)"
"아.. 진짜..."
"언제?(여전히 웃음)"
"이주 정도 ....."
"다시 만날 가능성 없나?"
"없어. 진짜 처참하게 차였어. 딱 부러지게!"
"(다시웃음) 고생해라."
"(한숨)"

ㅂ: "나도 좀 암울해."
나: "왜"
"그냥 ... 슬럼픈가봐..."
"왜? 스트레스받게하나? 위엣것들?"
"그렇지 뭐."
"왜?"
"(직장 상사 욕).........."
"(추임새)......"

한시간 가량 더 이야기 했다.

그리고 엉덩히 털고 일어났다.

나는 여전히 슬픔이 남아있고, ㅂ은 월요일에 스트레스 원인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그래도 지금은 웃고있다.

무엇에 인지는 몰라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변하지 않는 담벼락에게, 비포장 도로에게, 여전히 뜨거운 태양에게,

"나 저기까지 갔다올게 한번 찍어줄래?"
"뭐야~"
"그분께서 여길 아주 맘에 들어 하셨지..(진짜 웃음)"
"....진상아"


위로해준 모든 것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