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주 처음부터 이야기할게.
외로웠어. 원체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거든. 정말 그것이 내가 한 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추악했던 짓을 하고 나왔거든. 인생에서 단 한 번 겪는 시간인데 그 단 한 번뿐인 시간 동안, 내가 했던 일들은 모두 좋지 못했어. 다들 그곳에서 나오면 해방감을 느낀다는데, 나는 그 비슷한 것조차도 느껴보지 못했어.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였지만 사실은 언제나 혼자였고 그건 이렇게 내가 돌아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어.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그때까지도 전역하지 못했었고 그나마도 바깥에 있던 친구들마저도 한 번 만나려면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나 스스로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었어. 아마도 일이나 여러 다른 것들에 항상 눈이 팔려 있어서, 내가 그렇게 외롭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나봐. 그래 맞아. 일이 끝나도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 때가 오면 그제야 어렴풋 느꼈을 뿐, 사실 그렇게 외롭다고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거야.
그러다가 너를 보게 되었지. 아니 사실 처음 본 것조차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맞아. 그랬었어. 너와 내가 처음 만났던 건 순전히 인터넷 덕분이었으니까.
나 원래 되게 이성적인 사람인 척 다 하고 살지만, 사실 무진 감정적이고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놈이야. 그래서 그날, 항상 채팅으로만 대화를 나눴던 그 때, 네 말투, 성격 같은 거에 점점 관심이 갔어. 사진 같은 건 없었으니까 네 얼굴은 볼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사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존재하는 거잖아. 이게 정말 잘못되었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이 자꾸 가는 걸 어떻게 하겠니.
그러다가 정말로 널 처음 보게 되었어. 물론 너와 나뿐만이 아니라 15명 가까이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하철역 그 계단 밑에서 집합하기로 했던 그 장소에서, 네가 나타났어. 그런데 그거 알아? 나 정말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길게 살지도 않았지만) ‘첫눈에 반한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 알았어. 세상에서 너만큼 예쁜 사람도 없었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들은 비교조차 안 될 만큼 너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사나 다름없었어. 기억하지? 너 그날 감기 걸려서 예쁘게 꾸미지도 못한 채 그냥 왔었잖아.
나 있잖아. 정말 쓰레기 같이 살아왔어. 나 스스로 내 자신이 부끄럽다고 느껴본 적, 수도 없이 많아. 특히 여자관계에 있어서는 더 해. 매번 그 순간순간의 감정에 따라가서,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도 사귀자고 말하고, 그렇게 어이없이 사귀게 되면 항상 좋지 않게 헤어졌어. 널 처음 봤을 때도, 난 이미 사귀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새끼인지. 아니, 쓰레기라는 말조차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난 개새끼였어. 처음 만났던 그 날, 술에 취해서 임자도 있는 새끼가 너한테 고백을 했으니. 처음 만난 바로 그날 말이야.
너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다시 그 택시 타고 돌아오던 그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 그때 사귀고 있던 그 사람이랑 어떻게 헤어져야 하나.
그런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사람이 나한테 먼저 문자하더라. 그만 만나자고. 이건 더 이상 아닌 것 같다고. 그 얘기를 듣고, 미안한 감정보다도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어. 이제야 비로소 너한테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내가 너에게 먼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던 바로 그날, 둘이 밥 먹고, 영화 한 편 보고, 카페에 가서 다시 고백했지. 하지만 거절당했어. 그랬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아니 포기하겠다고 스스로도 다짐하고, 또 술에 취해 너한테 밤늦게 전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잖아. 그만 하겠다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든 거야. 내가 그 사람과 사귀게 된 것도 다 그렇게 순간순간의 감정에 휩쓸려서 사귀게 된 건데, 너랑 나의 관계는 누가 봐도 딱 그 짝이었으니까. 그 때 깨달았어. 이게 지금 이게 아니구나. 이래서는 안 되는구나. 내가 지금 너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애태우는 것이, 사실은 이게 진짜 감정이 아니구나. 내가 앞으로 누군가에게 호감이 간다면, 정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보고 그 사람이 정말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맞는지 오랫동안 고민해보고 지내봐야 알겠구나. 그나마 정신 차린 거지.
그렇게 개강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서서히 너를 잊어가고 있었어. 아니 정확히는 잊으려 했었어. 그만 하려고. 2번씩이나 고백했으면 이제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고. 그렇게 학교 다니면서 바쁘게 지내다보니까 정말로 점점 잊어가는 것 같은 거야. 그러다가 조별 과제를 하게 되면서 누나 한 명을 알게 됐지. 2살 많은 사람인데, 점점 마음이 가고 호감이 가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 이제 됐구나.’ 했어. 이제 널 다 잊은 것 같다. 그만해도 되겠다.
그런데 아니었어. 그 사람도 결국 지내다보니까, 싫어지는 건 아닌데, 이 사람은 아니다싶은 그런 느낌이 왔었어. 정말 지내다보니까 내 감정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 수 있더라고. 그래 바로 이거다. 앞으로 이렇게 가자. 괜히 쓸데없이 한 순간에 빠져서 헛짓거리 그만하고 올바른 사랑을 하자. 이게 진짜 옳은 거다. 더 이상 그런 병신 같은 짓으로 나 스스로에게, 또 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는 짓거리는 하지 말자.
그렇게, 너에게 2번째로 고백하고 나서 거의 반년이 흘렀어. 7월, 네가 사는 그 부근, 장소 조사를 할 일이 생겨서 너를 불러냈었지. 그렇게 3시간 정도 조사를 하고, 어디서 모이면 되겠는지 다 알아보고 나서 널 데리고 다시 카페를 가서 음료를 마시고. 그리고 바깥으로 나와 헤어지기 전에 잠시 담배를 피우겠다고 너보고 기다려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잖아. 그러다가 잠시 눈이 마주쳤었고.
그런데, 그런데 말야. 나 정말 다 끝난 줄 알았거든? 나 다 잊은 줄 알았거든? 나 정말 이제 다 정리 되어서 괜찮은 줄 알았거든?
너 그때 대체 왜 나 보고 웃은 거야? 왜 그렇게 살짝 피식 하고 웃은 거야? 나는 그 일이 벌써 1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네 그 살짝 웃던 그 모습 하나에 지금까지도 이렇게 가슴 찢어지고 있단 말이야. 나 정말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정말 아니었어. 내가 잊은 줄 알았던 것. 사실은 잊은 게 아니라 억지도 생각 안하려고 했던 거였어. 그냥 내 머릿속에서 너를 몰아내려고 했던 것뿐이었어. 그저, 다시 한 번 너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없던 걸, 잊는다는 것으로 합리화하려던 것뿐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없었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했던 마음도, 3분이면 사라져. 2번이나 고백했으니까. 2번이나 너에게 내 마음을 보여줬는데도, 너는 날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이제 더 이상 너에게 말을 꺼내면, 네가 정말 영영 나에게서 떠나가 버릴 것 같거든.
그래서 다시 포기했어. 다시 그만두자고 나 스스로에게 욕까지 퍼부어가며 그만 두려고 했어. 미친놈아, 그만 하라고. 니는 대가리는 폼으로 들고 다니냐고. 스스로도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그렇게 끝까지 헛된 꿈을 꾸고 있냐고.
드라마에서 보면 왜,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워커홀릭이 되는 장면, 많이 봤지? 보지는 못했어도 들어보기는 했을 거야. 내가 처음에 그런 장면을 봤을 때 입 밖으로 나온 표현이 이거였어. ‘쇼하고 앉았네.’ 그렇게 욕을 했는데, 지금 보니까 내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 널 어떻게는 내 머리 바깥으로 밀어내려면, 내가 일을 하는 수밖에 없더라.
그런데 그것도 잠시 뿐이야. 잠시 머리 식히자고 방 문 밖을 나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네가 떠올라. 그날 저녁, 네가 나를 보며 살짝 웃어줬던 바로 그 순간이 끊임없이 떠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야.
반년이야. 이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는 모르겠지만 네 덕분에 스스로 깨달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내가 이렇게나 질투가 심한 사람이었다는 것. 내가 지금까지 해온 사랑이라는 건 다 사기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가 너에 대해 얻게 된 이 마음이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애타게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
나 너 진짜 좋아해. 나 정말로 지금 미칠 것 같아. 너 생각만 하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아. 하루 종일, 틈만 나면 네 생각 밖에 안 떠오르고 심지어는 지나가다가 간판만 봐도 너 생각나서 심장이 쿵쿵 뛰고, 괴로워져.
친구들이랑 롯데월드 가서 우연히 보게 되었던 타로 점. 그 분이 그러더라. 연애운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끊임없이 두드리라고.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전에 내 친구도 말했어. 정확히 그것과 똑같이.
나 그래서 다시 준비하고 있었어. 한 번만 더 해보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리고서도 안 된다면 몰라도, 일단은 다시 한 번 더 말해보자.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오늘 봤어. 네가 그 애랑 둘이 같이 바다 갔다고 사진 올라온 거.
지금 나. 가슴이 막 우그러질 것 같아. 정말로 가슴 한 편이 막 우악스럽고 막 그래. 양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힘들어. 이젠 정말로 안 되는구나. 그나마 한 줄기라도 있었던 희망이라는 것이 그냥 어처구니없이 사라져버리는구나.
처음이야.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해서 눈물 흘려본 거 네가 처음이야.
이젠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냥 이대로 시간이 치유해주길 기다려야 할까? 난 그마저도 못미더워. 무려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정도면,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진정으로 마음이 정리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친구는 한 번 더 해보래. 아직 모르는 거라고. 근데 난 자신 없어. 이젠 정말로 아무런 자신이 없어. 이젠 정말로 너를 잊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자신이 없어. 지금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될 지조차 모르겠어.
넌 이제 행복하겠지? 그래 행복해야지. 잘 지내. 좋아하는 건 내 자유지만, 내가 너한테 그걸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줄일게. 나 아직도 너 정말 사랑해. 나 너 진짜 너무나도 보고 싶었고, 네가 웃는 모습 보고 싶었어. 그런데 이젠, 네 웃음이 나한텐 비수가 되어 꽂힐까봐 난 그것조차 볼 자신이 없다.
잘 지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