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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오올리이쓑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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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15645
    작성자 : 계피가좋아
    추천 : 5
    조회수 : 5426
    IP : 14.36.***.103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1/05/23 18:45:04
    http://todayhumor.com/?panic_15645 모바일
    브금주의]지옥도










    <embed src="http://pds21.egloos.com/pds/201105/01/20/Diablo2_act1_town.swf">











    투두둑.
    눈이 내릴 거라 하더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쌍. 눈이야 맞으면 그만이지만 비는 다르다. 기분까지 습해지는 느낌이 싫다.
    차가운 물방울이 옷 안으로 굴렀다. 코트 깃을 올려 거북이 목을 흉내 냈지만 축축한 건 코트 안이든 밖이든 마찬가지였다.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몸에 아무 곳이나 들어가 쉬고 싶었다. 이러다 몸살로 직행이야. 투덜대는 뇌까림의 볼륨은 점점 올라간다.
    "씨발 기상청 씹새들. 눈이라더니 왜 비가 내리고 지랄이야. 뭐하는 거야 등신들."
    바닥을 때리는 맹렬한 빗소리에 묻혔지만, 표정만 봐도 어떤 성격의 말인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거다. 짜증이 종일 밀려온다. 아침부터 시작 된 이 몹쓸 스트레스 제조기는 그렇게 쏟아대고도 모자라 여전히 꾸역꾸역 토해내기 바쁘다. 출근할 때부터 징조는 보였다.
    전동차 문이 닫히지 않아 출발이 연기되는 바람에, 아침부터 배탈과 수차례 씨름하느라 머리 손질도 못하고 번개같이 뛰쳐나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각을 하고 말았으니까.
    한 참 중요한 회의 중에 기어들어온 내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가 만무했다. 얹힌데 또 얹힌다고 결재 서류를 제출할 때도 그랬다.
    "성식씨, 지금 이게 뭐야? 내가 가지고 오라 했던 게 뭐지?"
    "네. 1분기 판매 실적과 2분기 대응책 보고 자료…….입니다."
    "그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뭐냐고."
    "보고 자료입니다."
    "보고 자료? 자료? 이게?"
    이 과장은 온건파다. 사람이 좋아서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 눈엔 그냥 쓰레기로 보이는데? 이것 참, 안경을 바꿀까? 응?"
    "……."
    "나 화내는 거 한 번도 못 봤죠. 성식씨, 나 같은 사람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직장 생활 꼬이고 싶음 제대로 꽈줄게. 이 자료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파악 못하나? 기가 막히는구먼.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회사에, 그것도 내 부서에서 일한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 정말 내 눈이 삐었나봐. 옥석이랑 짱돌이랑 구분도 못하고. 뭔 말인지 알지?"
    "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생기는 게 있어. 좀들 꼭 생기잖아. 어떻게든 나타나 여기저기 갉아먹고 다니거든. 처리할 방법은 쫓아내는 것뿐이지. 다른 말로 월급 도둑이라고도 하거든? 도둑놈. 좀. 벌. 레. 피해 주기 전에 골라내서 싹을 자르는 것도 내가 할 일중의 하나지. 알아듣겠냐고."
    "네."
    "성식씨. 도둑은 되지 마.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들어가 봐요."
    돌아서는 뒤로 서류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이과장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문을 나서며 떠올린 건, 한 달 전 퇴사한 사무직원이 과장의 불륜상대였다는 직원들의 수군거림이었다.
    "…….왜 못 지운다는 거야……."
    닫힌 문 틈새 사이로 이과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렇지. 이게 그가 화를 낸 원인이야. 저기압일 때 걸린 것뿐이잖아. 그냥 오늘은 재수가 더럽게 없는 날인 거다.
    줄줄이 사탕이라고, 스트레스는 머리를 매번 후려 쳤고 짜증은 장단을 맞춰 가슴을 옥죄었다. 팩스와 모니터는 갈구 듯 껌벅임을 반복했다. 커피 한 잔 하려다 키보드에 쏟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에게 눈총도 받았다. 점심은 정확히 내 줄에서 반찬이 동났다. 오후는 또 어떤가. 바닥을 치는 영업 실적 그래프들에 연실 한 숨만 내쉰다. 그대로 보고하면 화살받이로 죽기 십상이지만 안 할 수도 없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이 빌어먹을 회사는 오늘도 역시 나였다. 지각에 대한 징계차원이긴 하지만 수긍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머리에서는 내내 이과장의 독설이 떠나지를 않는다. 좀벌레. 월급 도둑은 되지 마. 내가 언제부터 월급을 훔치며 회사를 갉아먹는 존재가 되어 버렸지. 이런 마당에 퇴근길을 비를 처 맞으며 걷고 있으니, 그것도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정말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이다.
    버스를 애용했지만 질척한 길 위에서 기다리기는 싫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 입구로 향했다.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가 시야까지 가린다. 춘분이 지난지가 한참인데 허연 입김이 앞에 아른거린다. 꽤 춥네. 얼른 들어가 맥주 한 캔을 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일은 휴무인 걸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미 젖은 거 뛰기도 그렇고 해서 몸을 움츠린 채 걸음만 빨리 했다.
    계단에 다다르자마자 어떤 여자가 우산을 접지도 않고 그대로 내 앞을 휙 가로막았다. 놀라서 뒤로 피하니 나 따윈 아랑곳없이 비대한 몸을 흔들며 정중앙을 떡하니 막고 터벅터벅 내려간다. 여자의 펴진 우산에서 튕겨진 물방울이 내 바짓단에 튀어 얼룩이 졌다. 씨발년. 엉덩이를 그대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 계단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빵! 터지겠지. 그게 머리든 엉덩이든 간에. 빵! 중간쯤 내려가자 슬슬 우산을 접는다. 아무렇지 않게 물기를 턴다. 가뜩이나 안 좋은 기분이라 무척 신경이 거슬린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언쟁이 높아질까 애써 다스려 본다. 대신 어깨로 툭 밀치며 여자 옆을 비껴갔다. 어머, 하며 여자가 반응을 보였지만 모른 척 내려갔다.
    "어이구, 뭐가 그리 바쁘다고……."
    닥쳐 이 돼지 같은 년아! 라고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악다구니를 입술을 꾹 다물며 씹어 삼켰다. 참자.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잖아. 더럽게 재수가 없는 날에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피해를 본다. 몇 번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조용히 집에 들어가 쉬면 모든 게 끝나는 거야. 이과장의 악담과 실적 그래프와 비를 쫄딱 맞은 것쯤은 맥주와 함께 흘려보내면 되는 거고. 곧 막차가 도착할 시간이다. 돼지 년과 다투는 거보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대피하는 것이 훨씬 좋은 계획인 거다. 걸음을 더 빨리하자. 계단을 두세 개씩 건너뛰고 있었다. 흙으로 범벅이 된 지저분한 물웅덩이를 피하려다 넘어질 뻔 했다.
    [까치산 행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방송이 들렸다. 약간의 여유는 있지만 조금 촉박해졌다. 아무래도 막차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계단을 다 내려서고 몸을 돌리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소리가 들린 곳을 보니 계단 끄트머리 구석에 누군가 엎드려 훌쩍이고 있었다. 여러 군데 금이 간 사기 그릇 안에 담긴 동전 몇 개가 그가 거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는지 웃는지 모를 그 소리가 좀 섬뜩하기도 하고, 화들짝 놀란 사실이 나도 모르게 창피해서 그만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아 씨발 거지새끼가.'
    욕을 알아들었는지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인 시커먼 얼굴이 보인다. 누런 이빨 밑으로 침을 흘린 자국이 꼬질꼬질 했다. 약간 치켜뜬 시선이 눈에 거슬려 이번에는 작정하고 쏘아붙였다.
    "뭘 봐 씨발아. 존나 놀랐잖아. 왜 쳐 울고 지랄이야."
    "한 푼만 주시면……. 고맙습니다."
    "어 병신 새끼. 말도 제대로 못하네. 그럴 땐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고맙겠습니다라고 하는 거다"
    "고맙겠습니다."
    농담 따먹기나 할 한가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열차가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하필 오늘따라 집히는 동전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내기는 아까웠다. 그냥 외면하고 등을 돌렸다.
    "선생님. 한 푼만……."
    지폐를 줘봤자 알코올로 바뀌는 것뿐이고, 불쌍한 거지새끼 수명만 단축시키는 결과일 테고. 지금 중요한 건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거고. 흠흠.
    "한 푼만!"
    갑자기 거지가 네 다리를 당겼다. 어느새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황당했다. 다리를 빼보려 해도 거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뒤통수가 아리며 분노가 치밀었다. 이 미친 새끼가.
    "뭐하는 거야!"
    "한 푼만 주시면, 놔줄게요."
    "놔 이 씨발놈아! 막차 다 왔다고. 지금 돈이 없다고!"
    "한 푼만 주시면 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애걸하는 목소리 뒤로, 히죽이며 실실 쪼개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일부러 잡는 것이다. 엿 돼보라는 식으로 발목을 잡는 거다.
    [까치산 행 열차입니다.]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렸다. 급한 마음에 힘껏 뿌리쳤지만 거지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왜? 이런 거지도 있나? 정말 굶주림에 미쳐서 이러는 거야? 궁금해 할 여유가 없었다. 얼른 지갑을 빼들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던졌다.
    “야. 씨발.”
    “고맙습니다.”
    거지가 지폐를 잡기 위해 손을 놓는 순간, 나는 그의 주둥이를 구둣발로 쳐 올렸다. 억.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거지의 얼굴이 뒤로 확 젖혔다. 처음 듣는 묘한 효과음 이었다. 억과 쩍이라. 혀를 깨물었는지 입술을 씹었는지 모르지만 피가 흘러나왔다. 바동거리는 그의 배를 한 번 더 걷어 올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아주 미친놈이 지랄을 떨어. 퉤.”
    침을 뱉으며 열차를 향해 뛰었다.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는 날이다. 이제는 거지새끼까지 엉겨 붙으니. 원래 이렇게 감정적인 인간은 아닌데, 순간 터지는 화는 참아내기가 힘들다. 가슴이 쿵쿵 뛴다. 이유가 어쨌든, 분노와 폭력은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킨다.
    [열차 출발합니다.]
    “잠깐!”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혔다. 동시에 억누르고 있던 화도 폭발해버렸다. 분출해라. 분출해. 대상은 당연 아까의 거지였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창피해서가 아니라 열이 너무 올라서였다.
    “이 씨발 놈이.”
    욕지거리를 씹어 던지며 계단으로 뛰었다. 밟아주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다리를 잡히지만 않았어도 놓치지 않았다. 종일 견뎠던 짜증과 분노가 황당하게도 어처구니없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거지는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한 걸음에 뛰어들며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이 개새꺄!”
    구둣발이 거지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억 하며 거지가 꿈틀거렸다. 다시 한 번 걷어차려니 거지가 두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야! 이......” 잠깐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주위의 눈총을 받을 일도 없고 지금의 상황을 말릴 이도 없었다.
    “너 뭐야 씨발 새끼야.”
    마음 놓고, 부담 없이, 그의 턱을 걷어찼다. 비명소리와 함께 옆으로 대굴 구른다. 흥분이 들이친다. 아무도 없어. 때려도 되겠지? 이 잡것을 때려도 되겠지?
    “내 다리를 왜 잡아.”
    “억.”
    “한 번 줘 터져봐라 씹새야.”
    “으윽.”
    재수 없어. 종일 재수가 없다. 마치 일 년에 겪을 악운들을 액땜하듯 종일 시달렸다. 그 하루도 이제 끝이 났다. 이 지독한 하루가 끝났으니 그에 대한 분풀이만이 남았다. 병신 같은 거지새끼의 미친 짓에 하루를 끝까지 망쳤지만, 이제 망칠대로 다 망쳤으니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거다. 이번에는 내가 역으로 말이지.
    그런 것도 있었다. 만날 당하는 입장에서 가해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느껴지는 우월감? 꽤 나쁘지 않은 감정. 거지의 뒤통수를 짓밟으며 모처럼 심취했다. 벌레 같은 새끼들. 너희들은 썩은 암 덩어리 존재야.
    "씨발 것들. 다 죽어버리지 뭐 하러 살아?"

    "나?"

    대답이 들렸다. 등 뒤였다.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새 누군가 서 있었다. 그는 남루하고 더러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틀린 입술 꼬리가 꿈틀댔다.
    "입에 걸레를 물었나. 뭔 욕을 그리 쳐 싸 해?"
    "뭐, 뭐라고?"
    당황한 내가 말을 더듬자 그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조심스레 그를 관찰했다. 체구도 왜소하고 비쩍 말라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상이다. 경계심이 조금씩 사라지며 경멸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뭐가 웃겨 씨발 놈아."
    "어? 지금 내한테 한 거?"
    "그래 이 씨발 놈아. 너도 쳐 맞을래? 거지새끼들이 왜 이렇게 설쳐. 존나 더럽게 시리. 꺼져라. 말로 할 때."
    "우와. 아자씨 입에 문 걸레, 그냥도 아닌 아주 똥 걸레네."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약간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카악 하고 가래를 뱉었다. 입가를 슥 훔치더니 게슴츠레 한 눈빛으로 나와 쓰러져 있는 거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덥수룩한 머리가 흔들거렸다.
    "씨바, 얘 우리 애잖아."
    "뭐?"
    "우리 애야."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계를 보았다. 역이 업무를 마칠 시간이었다. 여기까지야. 마음을 추슬렀다. 이정도면 됐어.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아직, 악운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계단을 오르려고 몸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허세 섞인 말을 던졌다.
    "앞으로 조심해라."
    "뭘?"
    그가 되묻자 언뜻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더 심하게 쿵쿵거렸다. 왜 이렇게 떨리지?
    "뭘 조심해."
    "……."
    "뭘 조심 하냐고. 뭘 조심해. 뭘 조심 하냐고."
    "아 씨발 놈이 듣자듣자 하니까 왜 자꾸 말대답이야!" 짜증과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가 다시 낄낄거렸다.

    "쫄았지?"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무시하고 빨리 이 자리를 뜨는 게 상책 같았다. 나는 대답 없이 계단을 재빠르게 올랐다.

    "쫄았냐고 이 씨발 좆같은 새끼야!"

    그의 말은, 정확했다. 노숙자의 고함은 살기가 번뜩였고, 이성보다도 두 다리가 먼저 눈치를 채어 얼른 안전한 곳으로 달아나라고 내 몸을 끌어 채고 있었다.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만 해도, 아무도 없는 것에 좋아라 하며 거지를 마음껏 구타하고 있었지만, 이젠 아무도 없는 게 짜증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넘어질 것만 같았다.
    "잡어."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멈칫한 그 찰나, 커다랗고 시커먼 손이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힘이 무척 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악스러운 인상의 남자가 들창코를 벌름거린다. 계단과 계단을 잇는 공간의 구석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터라 전혀 눈치 못 채고 잡히고 말았다. 밀려오는 두려움에 겁에 잔뜩 질려버렸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욕지기가 터졌다. 그들은 노숙자라는 그 빌어먹을 인식에.
    "씨발 왜 이래……."
    목소리가 너무나도 떨려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씨발 또 나왔네. 씨발 씨발 존나게 씨발 쳐 거리네. 뒤진다 병신아. 상황 판단 안 되냐? 그지같이 생긴 애들이라 니가 막해도 된다는 거? 망상이네요. 착각 속에서 사시네. 봐봐. 우리가 거지같니? 거지들이 이러는 거 봤니? 그냥 더러운 거 걸치고 하수구 냄새나니까 다 등신 머저리 같다 본거야?"
    아까의 쥐새끼 같은 남자가 급변한 멀쩡한 말투로 -그는 전혀 술에 취한 것 같지 않았다! - 말을 던졌다. 덩치는 말없이 내 어깨를 붙잡고만 있었는데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날 정도였다. 쥐새끼 남자가 덩치를 부르며 손짓했다.
    "뺑이 돌고 있으니까 화장실로 옮겨."
    덩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몸부림치자 그가 날 노려본다. 소리를 지르자.
    "사람……."
    강한 충격에 머리가 울렸다. 번쩍하고 빛이 보이며 골이 흔들린다. 점점 시야가 어두워졌다. 늘어진 몸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게 느껴진다.


    ---


    좀이라는 벌레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무척 기분 나쁜 어감의 곤충이라는 건 안다. 좀 먹는다. 좀이 슨다. 좀. 좀벌레. 흔히들, 범법자들에게 비유되는 말 아닌가. 사회를 '좀' 먹는 쓰레기들. 이런 식으로. 그런데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지극히 보통사람인 내가, 왜 이들과 동급 취급을 당해야 하지? 좆같은 이 과장은 나를 좀으로 취급했다. 그도 어차피 더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낱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인데. 주제를 모르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참고 넘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사실 진정한 벌레 같은 존재들은 길바닥에 눌러 붙은 거지새끼들과 노숙자 무리 아닌가.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래. 그들이야말로 민폐만 끼치는 불필요 한 존재 아니던가. 누군가가 싹 청소해준다면, 드러내며 지지는 못 해도 속으로 다들 잘 했다고 격려의 박수를 쳐줄 거 아냐.
    몽롱하다.
    내가 잘못한 것은, 벌레 하나를 밟은 것 밖에 없는데.
    "안 깼나?"
    "쓰벌. 애 새끼 일부러 눈 안 뜨는 거 아녀?"
    "씨발 놈. 야. 깨워."
    철썩하는 소리와 불에 데듯 후끈거리는 얼얼한 아픔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이제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었다. 무의식에서 벌레로 취급했었는데, 의식을 차리니 입장은 역전됐다. 부어 오른 뺨은 마취 주사를 맞은 듯 감각이 없었다. 만지려 팔을 움직이려는데 꼼작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좌변기에 허리와 가슴, 두 팔과 다리 밑 부분 모두 끈으로 묶여 있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자존심을 굽히기 싫다는 이성과 위험하다고 경고를 보내는 본능의 묘한 결합물이 튀어나왔다. 들쑥날쑥한 억양과 떨리는 목소리에 그들이 킬킬대며 웃었다.
    "존나 웃겨. 쫄은 척 티 안내려고 애쓴다."
    쥐새끼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피하자 쥐새끼의 지저분한 손가락이 턱을 잡고 다시 원 위치로 돌렸다.
    "여긴 우리밖에 없어."
    그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밖에, 없어."
    머리칼을 휘어잡은 그가 내 얼굴을 홱 돌렸다. 목이 삐끗했는지 통증이 느껴진다. 그가 돌린 방향에 처음 내 다리를 잡았었던 거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뭔가 어색했다. 잔뜩 겁에 질려 있는 그의 표정은 창백했다.
    쥐새끼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속삭였다.
    “니가 걷어 찬 막내는 이 하나가 나갔고, 눈이 부어서 뜨지도 못하고, 입술도 찢어졌고, 흉터도 크게 지게 생겼어. 딱 봐도 사이즈 나오잖아. 우린 거지라 돈도 없거든. 원인 제공자가 원만하게 해결 봐야지, 그렇지?”
    무어라 답을 하려 했지만 그는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았다.
    “주둥아리 그냥 닥치고 새겨들어 씨발새꺄. 쟤는, 우리 중요한 돈줄이야. 하루에 얼마씩 벌어오는지 알아? 순수하게 동냥만으로? 알면 까무러칠 걸. 니가 저렇게 만들어 버려서 우리 다 굶어 죽게 생겼어. 농담 아냐.”
    쥐새끼가 눈짓을 보냈다. 덩치가 알아듣고 화장실 입구 쪽에서 대기했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그 거지가 주섬주섬 쥐새끼 곁으로 다가왔다. 쥐새끼가 그 거지의 손을 잡고 내 앞에 들이밀었다.
    새끼손가락이 없었다.
    “우리 애는 장애가 있어요오.” 쥐새끼가 톤을 높여 영화 대사를 흉내 낸다.
    이번에는 거지의 발을 잡아들었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지만 쥐새끼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신발을 벗겼다.
    새끼발가락이 없었다.
    “발가락도 장애가 있어요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소가 싹 사라졌다.
    “이런 상태에서도 열심히 벌어오는 걸 니가 씹창냈잖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빨이 딱딱 부딪힌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잘려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뭉툭한 절단면이 말해주고 있었다. 선천적 기형이 아닌, 뭔가의 작업의 결과다. 예전 들었던 괴담이 떠오른다. 중국이었나? 신혼여행을 온 신부를 납치해서, 팔과 다리를 자르고, 구걸을 시켰다는.
    “어떻게 하냐고. 쫄지만 말고 생각을 해 등신아.”
    덩치가 저만치서 고개를 흔들며 나와 쥐새끼 곁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는 뜻 같았다. 이가 부딪히는 속도가 빨라진다. 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
    “애기야.” 쥐새끼가 거지의 어깨를 툭 쳤다.
    “장애가 왜 생겼지?”
    “쪼, 쪽......” 만신창이인 얼굴로 거지가 울먹였다.
    “쪽?”
    쪼, 쪽…….쪽가위. “
    “그래. 쪽가위.”
    쪽가위? 쥐새끼와 덩치가 킥킥거렸다. 심장이 요동쳐서 튀어나갈 것 같았다. 쪽가위라고? 어릴 적 어머니 반짇고리 안에 들어있던 그 쪽가위? 쥐새끼가 품을 뒤적이더니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좁은 화장실은 금세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쥐새끼가 동그랗게 연기를 뭉쳐, 내 얼굴을 향해 뿜었다.
    “후우. 핵심만 말해줄게. 어차피 아무것도 생각 못 할 거 뻔 하니까. 자. 나는 거지같이 생겼지만, 거지는 아니야. 이래봬도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사람 중 하나야. 무슨 기여를 하느냐. 그건 금방 알게 될 테니 길게는 말 안할게. 중요한 건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거든.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는 게’ 진짜 중요한 거거든. 이해가? 비상한 두뇌와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있다 이거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성이 더러운 인간쓰레기도 있어. 예를 드는 거야 예. 이 정의로운 사람이 어이쿠, 앞을 못 보게 됐네? 사고든 병이든 지랄이든 간에 국가적 손실이잖어. 그렇지? 그런데 쓰레기는 사지 멀쩡히 뻘뻘거리며 돌아다니고 온갖 지랄을 떨어. 정말 필요가 없는, 뭐랄까. 그래! 좀 벌레 같은 새끼. 사회에 피해만 주는 더러운 좀 벌레 새끼라 보면 되겠네.”
    좀 벌레. 여기서도 좀 벌레.
    “이 불필요한 벌레 새끼는 또랑또랑한 시력 2.0 두 눈깔 멀쩡히 썩혀. 아 씨발 근데 아이큐 150넘는 존나 아름다운 새끼는 앞을 못 봐. 역설적인 거야. 나는 이걸 돌리는 일을 해. 당연히 가질 걸 가져야 하는, 그래서 사회에 이득을 주는 새끼한테 없는 걸 끼워 주는 거. 벌레에게서 뺏어서 말이야. 그리고 이 고생하면, 그 대가도 정당히 받는 거고.”
    담배를 툭 떨어뜨려 비벼 끈다. 그의 긴 독백이 끝나지 않았어도 이미 내 등골은 오그라들고 식은땀은 비 오듯 흐른다. 머릿속엔 좀 벌레와 쪽가위 생각뿐이다. 쪽가위라니.
    “그런데 그 좀 벌레 새끼를 찾는 게 어렵지. 난 아무나 안 잡아.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거든. 믿지 않겠지만 곡, 쓰레기만 골라내지. 그 방법을 여러 번 연구한 끝에, 지금 이 방법을 찾게 된 거야. 오케?”
    쥐새끼가 옆에 서있는 거지의 등을 툭툭 쳤다.
    “끼리끼리 알아보는 거야. 좀 벌레는 좀 벌레 끼리.”
    아아. 왜 거지가 내 다리를 잡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쓰레기로 취급하며 멸시하는 순간, 그들도 자신들의 먹잇감인 쓰레기로 나를 점찍은 것이다. 머리가 멍하다. 눈이 쑤시고 온 몸이 저렸다.
    “눈알 하나에 삼천, 신장은 이천. 간은 오천.” 쓰윽 훑어보며 쥐새끼가 입을 열었다.
    “합이 일억.”
    비명이 터졌으나 훨씬 빠르게 덩치의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냄새가 훅 풍기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봤자 묶인 노끈에 살만 더 패일뿐이다. 내 눈을 보던 쥐새끼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예상했던 반응과는 좀 달랐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뭐가?
    “겁이 없네.”
    겁이 없다니? 내가? 지금? 바지에 오줌을 지릴 지경이라고!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었지만 내 얼굴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거지 주제에. 노숙자 주제에. 쓰레기 같은 좀 벌레 주제에. 망할 편견은 공포로 가득한 본능조차 가면 속에 가둔다. “우읍!”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비명은 본질을 잃어버린 한낱 신음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장황한 설명에 클라이맥스를 기대했던 쥐새끼는, 여전히 경멸의 눈빛이 사라지지 않는 내 일그러진 표정에 대한 실망감을 행동으로 드러냈다.
    “가위 꺼내.”
    다리를 박찼지만 고통만 느껴졌다.
    “이러니 저러니 주절주절 떠들어도, 단순한 것들은 직접 아픔을 느껴봐야 ‘아’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 사회에 대한 개념 있는 환원 작업 후에, 그냥 니 몸뚱이를 버리지는 않아. 우리 애기처럼.”
    덩치가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쪽가위를 꺼내 건넸다. 쥐새끼가 잡은 뒤 몇 번 가위질을 해본다. 끼릭끼릭.
    태어나서 들은 가장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검붉은 녹이 슨 쪽가위가 천천히 밑으로, 내려왔다. 그가 내 구두를 벗긴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발가락들만 열심히 꼬물거릴 뿐이다. 가위를 잡은 오른 손이 점점 왼 발로 향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시뻘건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진 걸 보는 쥐새끼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렇지. 그 표정.”
    끼익. 가윗날이 서로 부딪힌다. 끼익. 일부러 들으라는 듯 쥐새끼가 연실 가위질을 해댄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엄지발가락을 자르게 되면 걷는데 많이 불편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게 안 되거든. 지금 우리 막내는, 처음부터 거세게 개겨서 한방에 확 보내버렸지. 원래는 여기부터 잘라내. 가장 작은 것 말이야.”
    쥐새끼가 내 양말을 벗겼다. 벗겨진 양말을 집어던지고 그가 새끼발가락을 잡았다. 쪽가위를 벌리며 쥐새끼가 말했다.
    “주둥이 막아. 소리 안 나게.”
    덩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고개를 뿌리치려 하자 뒤로 재빨리 돌아서서 팔뚝으로 목 뒤를 조이며 더 세게 막는다. 꼼짝할 수 없었다. 핏줄이 불거지며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거센 반항에 잡았던 발가락을 놓치자 쥐새끼가 파식 웃는다. 그가 가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존나게 꼼지락 거리네. 냄새나는 발가락. 슬슬 겁나지? 무섭지? 어디 다시, 경멸에 찬 눈초리로 욕 해봐. 못하지? 미칠 지경일거야. 이런 거 너 말고도 한두 번 겪은 거 아니니까. 그래서 더 쉽게 가위질 하는 방법도 알지. 뭐게?”
    그가 새끼발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부러뜨리면 돼.”
    뚝.
    발가락이 바닥을 향해 꺾였다.
    숨이 턱 막혔다. 끔찍한 아픔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우으우으읍!” 눈물이 흘렀다. 변기의 수조 뚜껑이 내 몸부림에 장단을 맞춰 덜컹거렸다. 너무 아프다. 덜렁거리는 발가락을 톡톡 칠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몸을 죄었다.
    “이렇게 얌전해야 잘라내기 쉽지.”
    쥐새끼가 쪽가위를 들었다. 끼익. 끼익. 꺾인 새끼발가락을 가윗날이 마주보고 있다. 안 돼. 쥐새끼가 킬킬 거렸다. 제발.

    “거기 누구 있어요?”

    모두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쥐새끼가 덩치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병신! 아무도 없다면서!”
    그가 재빨리 무어라 말하며 지시를 내렸다. 가위를 덩치에게 건넨 그가 막내라 부르던 거지를 밖으로 떠밀었다. 곧바로 쥐새끼도 문을 나서며 덩치에게 말했다.
    “눈 겨눠. 소리 내면 찔러버려. 하나만.”
    덩치는 즉시 명령을 수행한다. 가윗날이 내 눈을 겨누자 몸에 소름이 쭉 돋는다.
    살려주세요! 속으로는 피가 터져라 고함을 지르지만, 밖으로는 거친 숨만 몰아 쉴 뿐이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밖에서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뭐하는 거야?”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수고하십니다. 동료가 정신을 못 차려서 여기 눕혀서 쉬고 있는 중입니다.”
    쥐새끼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 있으면 안돼요.”
    “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술을 많이 먹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서요. 저희 어디 갈 곳도 없고 하루만 쉬어 가려고 한 겁니다.”
    “안되는데. 나 참. 진짜 잘들 숨어 다니네.”
    “선생님. 한 번만 봐주십쇼. 새벽에 열리면 튀어 나갈게요.”
    “어쩐지 여기만 불 켜져 있더라니. 얼마나 먹었어요?”
    나 여기 있어요! 살려주세요! 입을 틀어막고 있는 덩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그만 소리라도 내면 그대로 가위가 눈에 박힐 상황이다. 이 덩치는 생각이라고는 없는 것 같이, 시키는 일만 한다. 어떻게 교육을 시켰기에. 밖에 있는 이가 나를 발견하는 일 밖에는 방법이 없다.
    “아이고, 이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그때부터 너무 괴롭고 아프고 그러면 이렇게 마구 쳐 먹고 쓰러지곤 합니다. 그래도 우리도 사람인데, 만날 쓰레기 취급 받고 그러는 거, 아시죠? 그거 진짜 힘들고. 원래부터 이런 거 아닌 거 아시죠?”
    “한 두 번 보나.”
    “그럼요. 우리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거죠. 이번 한 번만 딱 눈감고 봐주십쇼.”
    쥐새끼의 목소리는 애처로웠다. 개새끼! 가증스러운 주둥이로 잘도 나불댄다. 웃으며 내 발가락을 부러뜨리는 놈이, 지금은 늙고 병들어 가는 걸인으로 애처롭게 호소한다.
    “나도 몇 번 넘어갔어요. 사실 정부가 한심하지 아저씨들 잘못은 아니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요. 못 본 척 할 테니 좀 쉬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은 없죠?” 가윗날이 바짝 다가왔다. 온갖 생각이 마구 헝클어졌다.
    “없죠.”
    “그래요. 알겠어요. 불은 끄세요.”
    가지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가지마 제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쥐새끼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리고,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울렸다. 억장이 무너진다.

    “잠깐요. 저기 문은 왜 닫혀있지?”
    “문이요?” 처음으로, 쥐새끼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저기만 닫혀있지?”
    하늘이 주신 기회다. 모든 걸 포기했던 순간에 찾아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고 기뻐서 나도 모르게 발로 바닥을 굴렀다. 절박감에 튀어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무슨 소리야?” 구두 소리가 가까워진다. 다시 멀어질까 두려워져, 생존을 위한 절규를 터트리고 말았다.
    “사알려줘어요오!”

    “씨발!” 쥐새끼의 고함이 들리며 문이 벌컥 열렸다. 내 모습을 본 공익 요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 살려 달라 외치려는 순간, 들이닥친 사내가 머뭇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그제야 쪽가위가 떠올랐다.
    깜박했어. 쪽가위.
    왼쪽 눈에 가위가 푹 박혔다.
    불에 데는 고통이 얼굴을 감싼다. 깜짝 놀란 뒤 하나, 둘, 셋.
    “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무서운 통증이 온 몸을 휘감는다. 경련이 일어나며 오줌 줄기가 속옷을 적신다. 창자가 배배 고이는 것 같다. 침을 흘리며 피눈물을 쏟는다. 으아아. 으아아아.
    내 몸을 동여맨 노끈이 몸부림칠수록 살을 파고 죄어들어왔지만, 이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으에엑! 으에에엑!”
    하나의, 지옥도였다.
    “야 이 병신새끼! 진짜 찌르냐 이 멍청아!”
    찢어지는 외침과, 내 목을 조이던 팔뚝의 풀림과, 비명, 비명, 비명.
    “으에에에엑!”
    “이 미친 새끼들이!”
    “잡아!” “놔 이 개새끼야!”
    “어어!” “다리!” “씨발 놈이!”
    시끄럽다. 쿵쾅 거리는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두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시커멓게 변한 뒤, 고통은 사라졌다.

    ---

    이과장이 내 진급을 적극 추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삼 개월 뒷면, 드디어 대리가 된다. 내 자료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연실 칭찬 일색이다.
    “이런 게 자료야. 이런 걸 보고 회사에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구별이 딱 되는 거야.”
    미소가 입가에 가득 찬다. 오늘 하루는 시작이 좋다.
    오후에는 전반기 실적에 대한 평가표가 공개된다. 전사 1등.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동료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축하해준다. 회식이다! 이과장이 두 손 높여 목청껏 외친다. 장소와 시기를 정하고 퇴근 후에 각자 만나기로 한다. 야근을 하는 직원들도 있었기에 만나는 시각을 늦게 잡았다. 자정.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여유 있게 약속 장소로 나갈 수 있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어제 샀던 복권을 맞추어본다. 오, 4등이 두 개 나왔다. 십만 원을 벌었으니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재수가 좋은 날이다. 기분 좋게 집을 나선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도 웃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선생님. 한 푼만......”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우두커니 노숙자가 서 있다.
    “배가 고파요. 한 푼만 주시면 고맙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은 잡히지 않는다. 에이, 기분이다. 지갑을 꺼내어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노숙자의 손에 쥐어준다.
    “아저씨. 이 돈 받으세요. 술 드시면 안돼요. 밥 세끼는 드실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고맙습니다라고 하지 마시고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말씀 하셔야 돼요. 하하.”
    노숙자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선생님은 사람이군요.”
    “아저씨도 사람이잖아요.”

    밝은 목소리로 내가 대답한다.

    눈이 뜨였다.
    피로 물들은 바닥이 보인다. 왼쪽 얼굴은 피가 말라붙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의식이 흐릿하다. 차가운 바닥의 냉기에 몸이 쑤신다. 노끈이 언제 풀렸지? 생각할 기력도,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 지금 시각도 모른다. 날 버리고 모두는 사라졌다. 원한과 원망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오로지 살고 싶은 의지뿐이다.
    천천히 바닥을 기었다.
    기다리면 누군가 나를 발견할 테지만, 그런 기본적인 판단력도 지금은 없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생각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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