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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15059
작성자 :
계피가좋아
★
추천 :
4
조회수 : 3143
IP : 121.140.***.101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1/05/05 20:21:22
http://todayhumor.com/?panic_15059
모바일
브금주의]후회
그래,
난 지금 정말 절실히 후회하고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
그는 20살의, 이제 갓 입학한 대학 새내기였다.
잘생겨서, 혹은 못생겨서 남의 이목을 끌만한 외모도 아닌 그저 그냥그런 외모를 가졌고
성격은 그렇게까지 붙임성이 좋진 않은, 낯을 많이 가리는 정도였다.
어렸을때부터 친한 나와 그는, 그럴수밖에도 없었던 것이.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고, 같은 중학교에 같은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까지 같이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남들이 말하는 Best Friend. 우린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고, 힘들면 소주한잔씩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 들어와서 어영부영 끼게 된 첫 미팅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
잡티하나 없는 하얀 피부. 자기와 적당히 매칭될만한 160초반의 키.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얼굴. 그리고 발랄한 성격.
그 성격에 어찌했는진 모르지만, 결국 둘은 친구에서 조금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고,
나에게도 자주 형수될 분이라고 소개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 5월 중순의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
그 비는 봄이 죽어가며 자기를 잊지 말라고 남기는 마지막 유서였는지, 날이 어둑어둑해 질 무렵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시리 기분이 약간 우울해지고 씁쓸해지는 것을 박하사탕 하나 입에 넣으며 달래고 있던 찰나 그에게 문자가 왔다.
-소주한잔하자. 10.05.17 16:21 최일병
왠지 울적한 김에, 내 뇌도 알콜을 갈구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난 문자를 보고 두말없이 우리가 항상 가던
아파트 단지앞 포장마차에 먼저 가서 약간의 먹을거리를 시켜 놓고 그를 기다렸다.
-총각, 오늘도 혼자왔어?
-아뇨, 곧있으면 친구 올거에요. 이모 여기 오뎅이랑 좀 해서 덜어 주시구요. 소주 세병만 꺼내주세요.
그리고 주인이모가 꺼내준 소주를 따서 혼자 한잔 반째 마시고있을 때 선약이라도 한듯 그가 왔다.
-늦어서 미안.
그의 표정은 날씨탓이라기보단 다른 뭔가의 이유로 우울해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 무슨 일 있지.
-....
한동안 나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던 그는 드디어 소주 두 병이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던 시점에서 입을 열었다.
-.........헤어졌어.
-풉. 겨우 그거야? .... 뭐 하긴 연애경험도 없는 넌데, 그래. 꽤 힘들겠다.
-아냐, 이젠 다시 볼 수가 없단 말야.
-무슨 소리야. 야, 그리고 이왕 헤어진 거면 차라리 못보는게 나아. 같은학교 같은 과에 있으면서,
매일같이 마주치면서 생활하는 것보단 너처럼 차라리 뒤가 깔끔한 다른학교애가 낫지 않냐?
내 말에, 그는 소주병을 잔에 대고 기울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분위기탓인지 약간 더 우울해진 나는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말보루라이트를 꺼내 한까치를 빼물고 불을 붙였다.
....
-이모, 여기 소주 두병 더요.
-아니 총각 우리 문닫아야되 얼른 일어나 집에가~ 내일 와서 마저 마시구.
그렇게 사내새끼들이 질질 짜면서 몇병을 마셨는지, 우리아버지는 3병이면 치사량이라고 하시던데.
지금 내 발밑에는 뚜껑없는 소주병들이 한가득 진을 치고 있어서 잘못 스탭을 밟아서 깨기라도 한다면
중학교때 공병수집 하시던 내 친구 할아버지가 와서 리어카 바퀴살로 배꼽을 후벼팔 듯 한 상황이었다.
비가 거의 그쳤다.
없는 정신에 먼저 맛이 가버린 그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힘들게 끌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그 집이 몇층이었는지 기억을 하는 머리, 그 머리를 안따라주는 손가락 때문에 9라는 숫자를 누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가 항상 키를 숨겨놓는 문앞 소화기 근처를 손으로 더듬거려보니 이내 차고 딱딱한 것이 만져졌고,
문을 따고, 그를 '들고' 집에 들어가 내팽게치듯 그를 내려 놓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실 바닥을 적시고 있는 저것.
한참을 마신 이 알코올 냄새보다 짙게 코에 스며들어오는 비린내.
그리고 한걸음 더 내딛자 강하게 와닿는 악취.
이젠 다시 볼 수 없다....라.....
거실의 카펫 한가운데엔 키가 160cm즘 되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손을 더듬거려 불을 켜보니 아니나다를까. 그의 여자친구였다.
생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면, 구지 찾아보려 한다면 고통과 배신감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뿐.
자기 피로 만든 옷을 입은 채 누워있는 그녀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
항상 나에게도 천사같이 잘 대해줬던 그녀인데,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싱긋 웃는 얼굴로 친근하게 인사해줬던 그녀인데,
그래서, 나에게 다음 차례라도 올까, 기회라도 올까,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슬쩍 기다려봤던 그녀인데,
이런 쓰레기같은 새끼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알고있는 나에게 내색한번 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젠 없다.
이새끼때문에.
싫다.
죽여버리고 싶다.
이건 절대 술기운이 아니라, 제정신이라도 그랬을 거다.
난 아직 이성적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현관에 옆드려 한심하게 이빨이나 드득거리며 갈고있는 그새끼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친히 내손으로 그놈의 유서를 썼다.
그리고 나서 뭐 적당한 물건이 있는지 둘러보다, 나의 천사같은 그녀, 그녀의 윗옷을 벗겨 둘둘 말고,
올가미 형태로 만들어 화장실 창문에 붙어있는 창살에 묶었다.
그리고,
변기 위에 내가 쓴 그의 유서를 올려놓고
그를 목메달았다.
아니,
날 메달았다.
2008년 5월 18일 새벽 4시,
그는.
아니 나는.
죽었다.
자살했다.
.
그래,
난 지금 정말 절실히 후회하고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차라리 자수를 할걸. 그래서 평생 그녀를 기리며, 그녀를 잊지 않으며라도 살 걸.
자기의 생명을 끊는 일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걸, 또 그렇게 하면 얼마나 후회한다는 걸,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줬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인간은.
주어진 삶에서만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그 삶을 자기 스스로 시작하거나 끝낼 권한이 없다.
출처
웃대 - 새드카페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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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6 00:08:30 14.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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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6 23:02:44 218.144.***.233 찬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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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11:58:25 59.23.***.200 꼴깍꼴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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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17:40:01 211.23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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