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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가족이 없다.
아빠가 하나 있긴 하지만 맨날 술만 퍼 마신다.
그런 아빠에 힘이 겨워 엄마는 집을 나가신지 오래다.
학교에서의 내 계급은 빵돌이, 아니 그 이상이다.
뭣하나 잘하는게 없는 난 일진들에게도 불쌍하게 보였는지
빵사오라고 시키지도 않는다.
내 친구는 거울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삶에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던 난 학원도 땡땡이를 친다.
그러곤 집에 돌아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거하게 술에 취해서 드러누운채 날 부른다.
"정원아, 이리 와봐."
이젠 이 소리 듣는 것도 지겹다.
"왜요?"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또 화를 낸다.
"너 공부는 하는거냐? 성적이 이게 뭐야! 기껏 학원 보냈더니..."
학원? 거기선 나 학원비 달라고 난리 치는데 학원비를 낸다고?
기가 막혀서 원....자기 술이나 먹겠지....
"그러니까 내 말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또 잠에 곯아 떨어진다.
나도 한숨을 내쉬며 내 방으로 들어간다.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방바닥뿐이다.
그렇게 베개 하나만 베고 잠에 떨어진다.
"정원아....."
누구지?
"사랑한다........"
꿈인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마치 천사가 나에게 속삭이는 듯한...그런 목소리다.
그리고 다가와선 내 이마에 입을 맞춰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순간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마치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으....으응........."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난 그 사람이 누군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곤 한가지 결정을 내렸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천사다.
나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
난 가방을 챙겨서 학교로 갔다.
아무도 날 반겨주지 않는다.
문을 열자 반겨주는건 칼바람뿐이다.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방을 자리에 걸고 엎드려 있을때, 종이 쳤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이젠 선생님 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늘은 어릴때 기억에 남는 일을 그려보겠어요."
말하자마자 아이들이 날 보며 킥킥 웃어댄다.
내가 엄마가 없고 술에 취한 아빠뿐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종이를 돌려주셧고 난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난 조용히 그림을 그렸다.
여자애들이 내 그림을 보며 웃는다.
내 그림 솜씨는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림이 완성되었다.
종이에는 두가지 그림이 있었다.
강에서 혼자 낚시하고 있는 그림.
풀장에서 혼자 수영하고 있는 그림.
9년 전이었다.
내가 7살때, 아빠와 난 강으로 갔고 즐겁게 낚시를 했다.
비록 한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7살때, 내가 수영을 했을때다.
아빠가 나의 첫 수영을 도와주며 즐겁게 놀았다.
그때가 그립다....
원래는 아빠랑 같이 했었지만 차마 창피해서 그리지 못했다.
그만큼 아빠와 난 서로에게 부끄러운 존재였다.
내가 성적이 떨어지고 엄마가 집을 나가자 성질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너 뭐하는짓이야! 어?!"
"나가줄게! 나가주면 되잖아!"
그때, 난 진짜로 나갔었다.
라면 한봉지로 일주일을 버텼다.
도저히 배고픔에 겨워 집으로 돌아왔을때, 아빠는 날 보면서도 말이 없었다.
그때부터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또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빠의 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에겐 오직 천사에 대한 목소리, 기대뿐이었다.
이윽고 잠자리에 누웠다.
시계 소리가 날 잠으로 유혹했다.
그리고 다시 천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랑한다....."
태어나서 그렇게 기분이 좋은적은 처음, 아니 두번째다.
어제도 그랬으니....
얼굴을 못본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다.
이 꿈은 계속되었다.
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그리고 또 그 꿈을 기다리며 밤에 집에 왔을때였다.
"................"
그런데 집안이 조용하다.
거실을 보니 아빠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구나....
또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베게를 깔고 누웠다.
천사야.....빨리 와라.........
그런데 오늘은 천사 대신 웬 소음이 반겨준다.
헌데, 그 소음은 꿈이 아니라 진짜다.
난 눈을 부스스 떠서 거실에 나갔다.
그랬더니 한 검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쓴 괴한이
칼을 들고 아빠와 싸우고 있었다.
난 정신을 차리고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뒤에 매달려보았지만 역부족이다.
완전 천하장사다.
그리고 날 귀찮단듯 밀어내고 아빠도 밀쳐내었다.
"무릎 꿇어! 살고 싶으면 허튼짓하지마!"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강도 표정은 집을 잘못 털었다는 표정이었다.
나와 아빠는 낡은 구석에 박혀있다.
아빠를 힐끔 봤을때 그 표정은 뭔가 비장했다.
아빠가 날 보자 난 어색해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난 겁이 났다. 강도의 칼날에 내 얼굴이 비쳤기 때문에.....
그때, 아빠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그맣게 말했다.
"부탁해..."
말을 마치고 아빠는 강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난투극이 벌어졌다.
아빠의 말이 있었지만 난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내심 강도가 이기기도 원했다.
하지만 막상 일이 일어나니 달랐다.
강도의 칼이 아빠의 배에 꽂힌 것이다.
"아빠!!"
아빠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땅바닥에 쓰러진다.
강도는 거침 숨을 내몰아쉰다.
그리곤 날 향해 돌아본다.
한걸음씩 다가올때마다 내 몸이 격렬히 떨린다.
"너도 니 아비랑 같은 꼴이 될거다."
난 고개를 웅크렸다.
그리고 힐끔 봤을때, 강도의 신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까지 보인다.
아빠다.
아빠는 배에 칼이 꽂혀있었다.
그런데도 강도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아빠는 강도의 목을 조르고 같이 앞으로 쓰러졌다.
강도는 나무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바닥이 빨갛게 물든다.
포스터 칼라보다 더 빨간색으로.
"으헝...허헉...."
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난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배에 칼을 단채 누워서 날 보고 있었다.
난 엉금엉금 이어갔다.
"아들....왔어.....?"
아빠의 목소리가 떨린다.
"아빠, 괜찮아?"
"아빤....괜찮아......"
왜 이럴까? 그토록 미웠던 아빠인데 죽이고 싶었는데
왜 눈물이 흐르지?
"아들....울지마....."
아빤 내게 환한 미소를 짓는다.
난 울고 있어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빤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우리아들 볼.....오랜만에 만져보는구나....."
"아빠, 왜 마지막인것처럼 얘기해.... 응?"
"아들....아빠 없어도 잘....살 수 있지....?"
말을 하면서 나에게 통장을 손에 쥐어준다.
하지만 통장따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아빠 없이 못살아! 119부를게!"
아빠는 간신히 목을 일으켜 내 귀에 입을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사랑....한다...."
아빠 손이 땅으로 떨어진다.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차오른다.
"아빠...내 말 듣고 있어....?"
대답은 없다.
"아빠! 나 죽기전에 안죽기로 했잖아....아빠...."
난 그대로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그리고 2일 뒤....
내가 깨어났을때, 내 눈앞에 할머니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장례식장이다.
시골로 이사갔던 할머니가 다시 돌아왔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빠는....?"
할머니는 대답이 없다.
"아빠 어떻게 됐냐고...아빠...."
할머니는 말없이 나에게 통장을 쥐어주었다.
난 훌쩍거리며 통장을 펴보았다.
무려 3천만원이라는 돈이 적혀있었다.
다른 사람에겐 아무 돈도 아닐수 있지만 우리에겐 상상도 못할 돈이다.
그리고 다른 한쪽엔 편지 봉투가 있었다.
난 편지 봉투를 뜯어서 종이 조각을 아무데다 버렸다.
그러자 조그만 달려이 나온다.
약 9년전 달력, 내가 7살때다.
"아들이랑 낚시 간날."
"아들이랑 수영 한날."
동그라미 쳐져있는 곳에 이렇게 적혀있다.
달력이 눈물로 얼룩지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 천사의 목소린 꿈이 아니었다.
전부 현실이었다.
내 귀로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빠, 보고 있어...?
"사랑한다....."
출처
웃대 - 영상속의엄마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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