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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그것의 기준은 선의와 악의.
선의는 희생을 필요로하며, 악의는 욕망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의식이없는 존재에게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재해가 해악이라고 하여 악의가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며,
씨를 내린 밭에 곡식이 탄생한다고 하여 선의가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선의란,
자신을 희생하여 남의 위하는 것.
그렇다면 악의란,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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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통용되지 않는다.
선악은 복잡무지하게 얽히고 섥혀 결국 세상은 선의와 악의를 구분지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본제.
왜 선악을 따지는가.
타인의 선함을 추구하는 것은 욕망이며,
타인의 악함을 추구하는 것은 희생이다.
욕망과 희생. 어느쪽도 자기 만족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부류일 터...
그렇다면 애초에 선과 악은 같은 것이 아닐까.
달걀과 닭의 문제만큼이나 근원을 알기 힘들다.
선악...
그것은 태초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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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와 이브는 선악과를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움을 얻었다.
즉,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다.
지식=선악.
그리고,
지식=선악=부끄러움을 아는 것.
지식은 프로그램, 설정.
선악은 자기 만족.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자신의 그릇됨을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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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계의 바늘이 돌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라는, 지식을 내가 얻었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나는 그 지식을 바탕삼아 시계에 박힌 건전지를 잡아빼서 창문밖으로 던질 것이며,
그로 인해서 나는 자기 위안과 만족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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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선악이란 지식으로 부터 오는 것이며,
그릇된 것을 깨닫는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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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은 특히나 인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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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침 밥을 먹었다.
맛없더라, 엄마 밥이 이게 뭐야.
"그러게,"
어정쩡한 엄마의 대답에 [악의]가 느껴질 정도다.
에휴, 아침밥 맛없는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참고서 그냥 학교로 간다.
역시난 [착해]. 완전 효자야.
그래서 학교에 가니깐 수업을 하더라.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점심밥을 먹었다.
이건 뭐... [집에 밥이 더 맛있을 정도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또 밥을 먹었다.
저녁이니깐.
그러니깐 이번엔 [학교밥보다 맛있는 집에 밥]을 먹자.
냠냠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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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상대적이다.
축적되어가는 지식은 과거의 선악을 뒤바꾸는 인과의 역전.
애초부터 선악을 구분짓는 것은 의미가 없음이라고.
그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을까...
출처
웃대 - 공부따윈않한다네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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