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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14262
작성자 :
계피가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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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3498
IP : 121.170.***.74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1/04/19 22:07:42
http://todayhumor.com/?panic_14262
모바일
브금주의]한 아들 이야기
드디어 그가 입을 연다.
반쯤 졸고있던 나는 입가에 고인 침을 손등으로 훔치고는 조그만 노트북을 펼쳤다. 안주머니 속 녹음기를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자는 해골같이 길고 얇기만 한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동그라미를 연신 그렸다.
사흘 밤낮을 떠나지 않고 말을 붙인 나를 보는 그의 눈은 이제 조금이나마 우호적이다.
제발 이 기회가 가지 않기를. 속 빈 갈대보다 싱숭한 그의 마음이 초침 가는 시계 소리에 변하지 않기를....
식은 땀 한 방울이 눈꺼풀을 타고 흘러 눈가를 축축하게 적셔오는 동안에도 나는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할까. 그레, 그 날부터 하죠. 그러니까, 2000년... 아, 2001년이었던가?
전 공부는 영 잼병이어도, 축구를 하고 야구를 하는 게 가장 즐거운 태평한 놈이었죠. 두 살 어린 동생녀석은 그런 제 꽁무니를 따라다니기 바빴고...
집. 그래,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우리를 웃는 얼굴로 반겨줬던 것 같아요.
아빠는 아주 바쁘셨어요. 출장을 가면 몇주일씩이나 집을 비우시곤 했죠...
예? 우리 아빠가 그 사람이냐고요? 그래요, 조금만 기다려요.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잖아....
그 날도 아빠는 집에 없었어요. 예의 그 출장을 간 거지. 근데, 출장 간 아빠가 별안간 우리 집 거실에 나타난 거야.
.... 텔레비젼에.
아빠의 얼굴이 브라운관을 가득 체웠죠. 플래쉬는 발작하듯 여기저기 지랄맞게 터져대며 아빠 얼굴에 쏟아졌어요.
사이코패스 강순호, 기억나요? 와.. 그 때 정말 떠들썩 했었는데.
부패한 정치인들처럼 우리 아빠도 고개를 푹 수그린체 사람속에 카메라 속에 파묻혀 있곤 했죠.
아빠가 언제부터 여자들을 죽여왔는진 몰라요. 그것도 6명이나... 허 참, 능력도 좋아가지고는.
아빠가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뉴스 앵커에게 전해들었지만 놀랍지는 않았어요.
부족한 거 없이 먹이고 키워준 양반이지만 한 번도 아빠한테 온정을 느껴본 적이 없거든.
그 잦았던 출장과 수시로 바뀌는 양복들이 이해가 가더라.
진짜 중요한 얘기는 지금 부터에요. 아빠의 사진이 인터넷에 열나게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지.
난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어요. 우리 슈퍼 아줌마가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기 전까지는.
기자님은 왕따 당해본 적 없으시죠? 저도 그랬어요. 근데 하루아침에, 그보다 더한 신세가 되 버린 거야.
소문은 빛보다 빠르다고, 고작 하룻밤 사이에 내 이름은 강하균 세글자에서 일곱글자로 늘어있더구만.
살인자의 아들.
처음엔 그랬어요 다들 날 두려워했지. 뭐라나, 살인자의 피를 물려받았다나...
나는 바로 지난날과 다름없는 강하균이었는데 말이죠. 축구를 좋아하는, 약간은 태평한 소년.
그런데- 언제부터 였더라? 두려움이 혐오가 되고, 혐오가 주먹이 되어 날라오기 시작했던 게......
등치 좋은 놈들한테 끌려가서는 신명나게 얻어맞은 게 시작이었죠. 내 일상은 완전히 인간 핸드백이 되어 버린거야.
너무 많이 맞아 살이 물르고 찢어져도 하소연 할 수 없었어요. 집에 돌아가면 동생도 엄마도 나랑 같은 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레도 사람들이 싫진 않았어요. 나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
담임선생과의 상담에서 은근슬쩍 넘어가 버린 내 차례도, 전화를 걸 때 마자 꺼져있는 이모들의 핸드폰도... 모두 이해했단 말입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내가 가증 떤다고 생각하는거지, 당신?
....후. 죄송합니다. 좀 흥분했네요. 이 엿같은 시간을 얼른 끝내버리고 싶네요. 그 새끼들 얼굴 생각하니까 넘어올 거 같아...
세번째로 이사간 곳은 교외쪽이었어요. 저와 동생은 근처의 작은 공업계열 고등학교로 전학을 했죠.
뭘 바랐던 건지 모르겠지만, 구타와 멸시는 끊이지 않더군요.
커다란 뺀치에 머리를 얻어맞고, 프레스 사이에 팔이 끼었을 때는 공업학교로 전학을 결정한 우리 가족이 한심스러워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레도 다 참을 수 있었어요. 그래요,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후...... 그 새끼들..... 방과 후의 작업실에서 본 그 새끼들 말이에요...... 그 찢어죽일 개새끼들!!!!!!!
..........
................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덥니다.
불 꺼진 작업실에 덩치 시커먼 새끼들이 서넛 몰려선 작업대 하나를 삥 둘러싸고 있는데,
멍 투성이의 얇상한 다리 두짝이 나한테 등을 돌린 어떤 돼지새끼의 허리에 감겨 덜렁덜렁 거리는데.....
개거품을 질질 흘리면서 비명을 지르던 년이..... 씨발 개구리 표본도 아니고 두 팔이 쫙 벌어져서 작업실에 꽁꽁 묶인 그 년이...
제 동생이더군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내게 기대하고 있지 않느냐, 살인자의 아들이기를 기대하며 한시도 빠짐없이 각인시켜 주고 있지 않느냐....고.
내 동생을 따먹으려는 개새끼 한두마리는 죽여줘야, 그 사람들의 기대에 응답할 수 있을 거 같더군요.
널린 게 묵직한 것들이었어요. 그 중 가장 무거운 걸 들고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 뒤통수를 갈긴 거죠.
아, 정신을 차리니 그건 목제용 손도끼였더군요.
그 새끼 대갈통 터질 때의 그 소리란. 어떤 새낀 목을 딴 거 같고, 어떤 새낀 면상을 갈라버린 거 같아요...
뭐, 이런 건 나중에 사건 파일 같은데서 확인할 수 있죠? 형사영화 보면 그런 거 꼭 나오더라.
너질러린 개새끼들은 신경도 안 쓰고, 동생을 대리고 집에 돌아 왔어요.
온통 멍자국에 상처, 다리 사이에선 비린내 나는 걸 질질 흘리는 동생년이 보기 싫어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각 잡힌 유니폼 입은 아저씨들이 반겨주더군요.
경찰차에 차선 천천히 교정을 빠져나온데, 난 아직도 날 바라보던 그 떄의 눈깔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경멸스런 눈동자들....
크크크, 신문에도 대서특필 했더라구요. 대가리로 차창 깬 독한 새끼. 완전 개같은 살인마라고.
근데 어쩔 수 없었어요. 너무너무 화가 났거든...
지들이 바라는 데로 해줬는데.... 살인마의 아들이 되어 줬는데.......
피곤한데, 이거 그만 두면 안됩니까? .......아니 계속해요, 사실 누군가와 이렇게 길게 말 한지도 몇 년전 일이니.
나는 선처를 바랬어요.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새끼의 망상이었죠.
그레도 내 동생을 겁탈하던 새끼들인데. 이건 좀 정당방위 아닐까?
동생이 나와서 그 떄 있던 일을 얘기만 해 준다면, 적어도 아버지와 아주 동질이라는 오해만은 피해 갈 수 있을 줄 알았죠.
전 몰랐던 겁니다.
몇일 간 어두컴컴한 깜방에만 갖혀있다 보니, 동생년이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져 뒈졌다는 걸,
뒤지는 순간에도 뭐가 그리 죄스러워서 인적도 허름한 빌딩 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걸 알 도리가 없었던 거에요.
그 년도 대가리가 터졌을 까요? 제가 손도끼로 깐 돼지새끼의 대갈통처럼? 허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이었어요.
아무도 내게 선뜻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빨간 명찰을 달고 나타나니까,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더군요.
묶인 손은 책상 밑에 둔 체, 개처럼 입으로만 밥을 넘기는 저를 말 없이 바라만 보더니...
그렇게, 면회시간 내내 암말도 안하시고는 돌아가셨어요.
돌아서는데, 그 머리 희끗한 아줌마 생각이 내 귀에 다 들리더군요. 하지만 굳이 잡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무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동생년보단 좀 더 나을 줄 믿었거든요.
비참하게 더럽게 뒤져버린 동생년보단 우아하게 가실 줄 알았단 말입니다.
멍청한 아줌마가 그런 식으로 목 매달면 똥이고 오줌이고 다 튀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나한테 언질이라도 했더라면 내가 끝내주는 방법 알려줬으텐데 말이요.
크크, 깜방에 있으면 맨날 보는 게 그것들 뿐이거든.
거 참 그 아줌마는 몇년을 똥오줌처럼 지내시더니 마지막 가는 길 까지 똥오줌이더군요...
흐흐.... 으흐흐흐흐.... 흐......
++++
웃는 듯 올라갔던 그의 입가가 일그러지더니, 발작하듯 눈물을 터뜨렸다.
사막 한 가운데 용천수가 터진 듯, 매마른 눈동자에서 굵은 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져 그의 쥐색 죄수복을 검게 물들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물이 바다가 되어 나를 집어 삼켰다.
숨이 막히고 어깨가 무거웠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꽉 다잡으며 커서가 깜빡이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독점취재- 사이코패스 2세 강하균, 악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백스페이스를 누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노트북을 눌러 닫고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아가리를 쩍 벌린 가방에, 팬과 공책 따위를 단번에 쓸어담고는 서둘러 면담실을 나왔다.
"여, 최기자님! 뭔가..."
사흘만에 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교도관이 다가왔다.
숙부님을 통해 연이 닿은 사람으로, 강하균과의 1:1 인터뷰를 가능하게 해 준 사람 중 하나지만, 그에게 인사치례를 할 수도 없이 나는 도망치듯 교도소를 나왔다.
육중한 철문을 등 뒤로 한 순간에야 나는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박이다. 분명한 대박 기사다, 이건... 만년 수습기자 신세를 단번에 벗어나, 재수없던 선배들까지 발 밑에 둘 수 있는.
뿌듯한 마음으로, 안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그것은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결정을 내린 순간, 마음은 너무가 가벼워 졌다.
나는 교됴소부터 난 차길을 주욱 따라 걸었다. 얼마 걸으니 작은 댐을 마주하게 되었다. 용솟음 치는 흰 물줄기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녹음기를 힘껏 집어던졌다. 꿈틀거리는 뱀장어같은 흰 물보라들이 금세 혀를 내밀어 받아 먹는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곧게 난 길을 따라 황금빛 햇살이 자작자작 고여있다. 밟으면 찰방 소리라도 날 듯한 황금빛 물결을 가르며 터덜터덜 흙길을 걸었다.
늦봄의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마치 머리를 쓰다듬는 누군가의 손 같았다.
그리고 그 손길이 속삭이는 듯 했다.
괜찮노라고. 너는 괜찮노라고.
아기 걸음 하듯 천천히 옮기는 발자국 마다, 끈기없는 죄책감들이 잉여된 체 맴돌고 있었다.
출처
웃대 - 춤추는민트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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