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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158063
    작성자 : 탈퇴할거다
    추천 : 10
    조회수 : 621
    IP : 121.180.***.193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2/01/04 21:21:43
    http://todayhumor.com/?sisa_158063 모바일
    조선일보 때문에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워요.
    질문
    울아빠가 보는 〈조선일보〉 땜에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워요

    1년차 주부입니다. 부모님 고향은 경상북도, 전 서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 신랑 고향은 전라북도, 20대에 상경했고 저희 아빠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근데 뭐가 문제냐. 결혼 전엔 제가 이런 갈등을 겪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얼마 전 아빠 생신 때문에 시골에 내려갔을 때예요. 가족끼리 저녁 먹고 아빠가 신문을 펴 들었는데 신랑 왈 “아버님… <조선일보> 보시네요?” 하는 겁니다. 아빠는 “응, 여기는 골짜기라 신문 구독도 겨우 한다”며 웃으셨는데요. 서울로 돌아온 신랑은 쓰레기 신문 보지 마시라고 당장 전화하라며 닦달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경상도 정권의 해악과 <조선일보>를 엮어 공격을 하는데, 저도 신랑과 정치적 견해는 같이하지만 적어도 지역감정은 이제 완전히 해묵은 감정이라는 제 반론과 그렇지 않다는 신랑의 주장이 합의점을 못 찾네요. 아직 신혼인데 이 문제로 툭하면 언성을 높입니다. 저도 아빠의 보수적인 면을 못마땅하게 여겨왔고 <조선일보>도 싫지만 이제 늙어 가시는 아빠에게 옳고 그른 걸 따지고 싶지도 않고, 남편이 경상도 거론할 때마다 죄 지은 기분까지 들어 짜증 지대로입니다. 이 문제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답변
    이런 상담이. 우선 이것부터 밝혀두자. 본인 경상남도 진해 생으로 부산서 학교 다니다 중3에 상경했다. 이걸 밝혀야 한다는 사실부터 씨바라고 봐야지.
    1997년 대선 직전이었다. 외조부 생신에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다. 때가 때인지라 어느 순간부터 대선이 안줏거리에 올랐다. 아이엠에프의 책임과 역사적 당위 따위를 들먹이며 디제이여야 한다는 내 주장에 “점마가 미친나…”를 필두로 성토가 쏟아진다. 어차피 논리로 당해낼 일 아닌 줄 알면서도 기를 써 본다. 그러나 “대중이는 치매라 안카나, 가는 빨갱이 아이가, 통반장도 싹쓸이한다카이, 깽깨이들 지랄하는 꼴 우째 보노”로 이어지는 벌써 20년째 고정 레퍼토리들. 30분쯤 그렇게 다구리를 당하고 있는데, 오래전 후두암으로 성대를 제거한 외조부가 갑자기 손을 젓는다. 자존심이 강해 식도 발성 특유의 가래 끓는 소리가 싫다며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한 달도 침묵하는 양반인데 할 말이 있단다. 조용해졌다. 아니면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고마치 해묵었으모 됐다… 부끄러운기라… 이제 마 대중이가 해라케라….”

    정작 자신들은 한 번도 누려본 적도 없는 허구의 기득권을 부여잡고 지역에 기생하는 정치배들이 제공한 핑계와 거짓을 주워섬기며 앙상한 선민의식으로 버티던 한 무리의 경상도 서민들 입을 다물게 한 건, 그렇게 논리가 아니라 70대 노인네의 염치였다. 아, 가슴이 아팠다. 그 한마디에 담긴 경상도의 자조가. 정치꾼들이 그들 가슴에 심어놓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원죄 의식이. 자리는 거기서 끝이 났고 그래도 그들 중 디제이에게 표를 준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게다. 모친이 난생처음 기권한 게 그나마 그 말이 그해 대선에 끼친 직접 영향의 전부였다.

    애초 정치는 적을 필요로 한다. 적이 없으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한다. 히틀러가 그랬다. 유대인이 없으면 만들어 내야 한다고. 신도 몇 명도 아니고 수천만 독일인들을 집단최면 상태로 이끌었던 히틀러는 미치긴 했어도 바보는 아니었다. 히틀러 수사학의 핵심은 명확하게 적과 나를 갈라내는 이분법. 그 위력은 상식의 작동을 중지시키고 내부의 모든 불만과 불안을 그 적에게 돌리게 하는 데 있다.

    이 땅의 히틀러들이 자신의 정권욕을 위해 조작해 낸 유대인은 전라도. 그 사악한 상징조작에 경상도는 대구의 지역내 총생산이 전국 꼴찌가 된 게 이미 17년 전이건만, 그렇게 노태우와 김영삼 시절에 비롯된 몰락을 디제이와 노무현 탓으로 돌린다. 더구나 97년의 방어적 지역주의는 이제 잃어버린 10년이란 주술에 의지해 마땅한 내 것 되찾겠단 패권의식으로 변태해 있다. 그렇다. 당신 남편이 옳다. 사라진 게 아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경상도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전라도가 자신들에게 총을 겨눈 자들과 그 후신을 결코 지지할 수는 없다는 정서의 본연을, 그러면서도 디제이 이후로 그런 몰표가 결코 원시적 지역색이나 복수의 권력욕이 아님을 입증해 보이려는 그들의 자존심을, 그래서 지역을 넘어 경상도의 아들 노무현에게 표를 주고 또다시 지역을 넘어 디제이의 유산 민주당마저 제치고 열린우리당에 표를 줬던 그 정치의식의 본질을.

    당신과 남편의 갈등은 그렇게 구조적이고 역사적이다. 둘이 착하다고 해결될 일 아니라고. 그러나 장인을 개안시키려는 남편의 시도도 무망하다. 그건 그것대로 부모 세대의 존재양식이었기 때문에. 부모를 바꾸려는 모든 시도는, 그것이 논리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방식 자체를 부정하란 것으로 여겨지기에, 실패한다. 설득 대신 <한겨레> 구독해 우편으로 보내드리시라. 거기까지가, 예의다. 그리고 그 문제로 당신들끼리 싸우지 마시라. 슬프다. 대신 당신들 다음 세대에게는 이 유산,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걸로 매듭지으시라. 나쁜 것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게 유전된다는 거니까.

    P.S 조선일보, 편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편파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기에, 나쁘다.


    김어준 著. 건투를 빈다 中 , 또는 한겨레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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