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오진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그런데도 오진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앞날이 창창한 30대 환자가 암으로 판명되었을 때의 심정이라니. 차라리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암이 아니었으면 싶었다. 세찬 장맛비를 뚫고 온 김 사장을 보니 새삼스레 지난해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자 큰아들인 그가 회사를 맡았다. 그는 이번에 건강 검진이나 받아야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대장에서 혹이 발견된 것이다. '흔한 용종이겠지.' 가볍게 생각하면서도 왠지 꺼림칙해 조직 검사를 의뢰했다.
그날 밤, 나는 김 사장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와 나는 10년 넘게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수화기 너머로 음성이 떨렸다. 낮에 검진받고 돌아온 아들이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운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진료실을 나간 뒤, 곧장 아버지가 들어와서 "괜찮겠지요?" 하고 물어보았는데 그것이 싸움의 발단이 된 듯했다. 내가 아버지를 진료실로 따로 불러 암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내시경으로 보면 즉시 알 수 있는데 아버지가 자신에게 뭔가 숨긴다면서 한바탕소란을 피운 것이었다. 온 가족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지 일주일. 별일 없기를 바라던 내 마음과 달리 조직 검사 결과는 공교롭게도 암이었다.
김 사장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지금 몇 살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정말 암이에요?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려야 합니까. 선생님." 그는 울부짖었다. 다른 부위로 번지지 않았으면 수술로 치료할 수 있으니 너무 염려 말라는 위로는 그의 귀에 닿지도 않았다. 그는 벌써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없었다.
치료 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오늘 김 사장이 찾아온 것이다. 혹암이 재발한 건 아닐까.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선생님,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이성을 잃고 선생님에게 함부로 대든 것, 정말 죄송합니다."
"어때요, 몸 상태는?"
"아주 좋아요. 이제 회복된 것 같아요."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당황하지요. 암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자신이 병든 육체에 갇혔다는 생각을 빨리 떨쳐야 해요. 힘내세요. 재발하지 않을 테니."
그는 항암 치료를 끝내고 가족과 제주도에 가서 푹 쉬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바다와 갈매기 얘기를 꺼냈다. 밀리는가 하면 또다시 밀려오는 파도가 끈기 있어 보이고, 또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들이 참 멋있더라고 했다. 그동안 병 치료에 지치기도 했으련만 그는 다시 명랑해졌고, 신념에 찬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의 말을 듣노라니 하와이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사위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우리 내외도 하와이로 가서 어울렸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딸의 관광객들에게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얘기할 사람이 잇느냐고 했다. 그러자 40대 부부가 앞으로 나왔다. 아내가 먼저 남편의 암 치료를 끝낸 기념으로 여행 왔다면서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머리는 거의 빠지고 얼굴을 창백한 남편이 마이크를 넘겨받더니 말을 이어 갔다. "저도 고통을 이겨 낸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늘 살던 방식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 있음은 환희입니다." 그의 말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나는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김 사장의 눈동자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갈매기의 은빛 날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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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생각 9월호, 의사 이방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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