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바탕글>첫 눈이 오는 날에는 소원을 빌어요.</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저기…… 선배님. 커피 드실래요?”</P> <P class=바탕글>수줍은 듯 살짝 붉어진 볼에 바람을 불어넣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P> <P class=바탕글>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그녀의 친구인 듯한 여자 아이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P> <P class=바탕글>“미안…… 나 커피 좋아하지 않아서……”</P> <P class=바탕글>죄를 지은 사람 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P> <P class=바탕글>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그녀의 볼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강의실을 나섰다.</P> <P class=바탕글>내 뒤통수를 잡아채려는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행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P> <P class=바탕글>나는 복학생이다. 그것도 삼수를 통해 학교에 들어가고 바로 군대를 다녀 온…… </P> <P class=바탕글>친구가 있을 턱이 없다.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사회로 나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P> <P class=바탕글>수업시간에 들어가 후배들과 수업을 들으면 후배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모두 나를 향한 욕 같았다.</P> <P class=바탕글>같은 1학년 그러나 선배인 나란 존재는 후배들에게 상당히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P> <P class=바탕글>한 번은 1학년 조별과제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장이 되었다.</P> <P class=바탕글>언제부터인가 조장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하는 일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P> <P class=바탕글>후배들은 나이 많은 선배니까 잘 아시겠죠? 라며 모든 일을 나에게 떠맡겼고 나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조별과제를 끝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그 조별과제 점수는 C가 나왔다. 후배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나도 1학년이었다.</P> <P class=바탕글>학교에 적응을 하기 시작 했을 때 쯤 그녀가 나타났다. 아니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P> <P class=바탕글>하지만 나는 항상 수업시간에 가장 일찍 들어가고 가장 늦게 나왔다. 그녀는 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예뻤다.</P> <P class=바탕글>아니, 사실 그녀는 예쁘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155cm 정도 될 듯한 자그마한 키 그리고 조금은 통통한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P> <P class=바탕글>그녀는 활발하고 귀엽고 재미있고 이런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사랑스러웠다.</P> <P class=바탕글>사랑스러웠다. 한 여자를 표현했을 때 이 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그러니까 그녀는 사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P> <P class=바탕글>쉬는 시간이 되면 이어폰을 끼고 자는 척을 하며 그녀가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P> <P class=바탕글>교수님이 조를 짜주실 때도 믿어 본 적도 없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결국 신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P> <P class=바탕글>어찌되었든 그녀는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우연찮게도 전공시간에 계속 같은 수업을 들었고 그녀는 항상 내 뒤에 앉아 있었다.</P> <P class=바탕글>오늘도 수업이 끝났다. 그녀도 이제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에 강의실에서 나가기 위해 천천히 책을 챙겼다. </P> <P class=바탕글>강의실이 조용해지고 나는 강의실을 나려고 일어서려는데.</P> <P class=바탕글>“저기…… 선배님. 커피 드실래요?”</P> <P class=바탕글>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한순간 정신이 내 통제를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간신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정신을 붙잡았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이번에는 피가 부족했는지 심장이 할증 붙은 말 마냥 미친듯이 뛰었다. </P> <P class=바탕글>두근…… 두근…… </P> <P class=바탕글>그녀의 친구들도 조용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 심장 소리가 강의실을 덮은 것 같았다. </P> <P class=바탕글>그녀도 약간 얼굴에 홍조를 띄웠지만 아마 지금 내 얼굴에선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P> <P class=바탕글>“미안…… 나 커피 좋아하지 않아서……”</P> <P class=바탕글>매일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는 내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쓰러질 것 같았다.</P> <P class=바탕글>속으로 병신, 머저리를 외치며 그렇게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P> <P class=바탕글>다음날 그녀가 학교를 오지 않았다. 설마 나 때문에? 아니겠지? 잡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그녀의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P> <P class=바탕글>쉬는 시간에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왜 안왔냐고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P> <P class=바탕글>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 친구들은 그렇게 계속 내 주위를 멤돌며 주문을 외웠다. 정은이 왜 안왔어? 라는 ……</P> <P class=바탕글>주문에 효과가 있었다. 나는 내 의지가 아닌 주문의 힘으로 과사에 찾아가 그녀의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었다. </P> <P class=바탕글>그리고 무작정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서 문자를 보냈다.</P> <P class=바탕글>-집 앞이에요-</P> <P class=바탕글>30분 1시간 2시간…… 차마 전화는 하지 못하고 문자 한통을 보내고 하릴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예뻤다.</P> <P class=바탕글>“오빠 참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남자로 느껴지지는 않아요.”</P> <P class=바탕글>그녀와의 사랑이 너무 빨랐던 걸까? 그녀와 나의 사랑은 정말 빠르게 끝났다. 어느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그리고 첫눈이 내렸다. </P> <P class=바탕글>첫 눈이 오면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나의 약속을 그녀가 기억할까? 헤어진 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그녀와 나. </P> <P class=바탕글>서글픈 미련은 마음 속에 담아둔 채 창 밖에서 솜털처럼 가볍게 내리는 첫 눈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P> <P class=바탕글>그녀가 다시 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소원을 빌며 나를 쳐다보는 듯한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는데 집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P> <P class=바탕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집 밖으로 나간 후 였다. </P> <P class=바탕글>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멍하니 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P> <P class=바탕글>한동안 감기에 걸렸다. 기말고사도 치루지 못하고 집에서 앓아누웠다.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P> <P class=바탕글>그녀의 눈망울 같은 함박눈이 사근사근 쌓였다. 눈이 쌓이는 만큼 내 그리움도 함께 쌓였다. </P> <P class=바탕글>쌓이던 눈이 녹아가듯 내 눈에도 조금씩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흘리면 모든 것이 사실이 되어 버릴까봐 흘리지 못했었는데 결국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거짓말처럼 감기가 사라졌다. 나는 감기에 걸렸던 것일까? 사랑에 걸렸던 것일까?</P> <P class=바탕글>긴 한숨을 내쉬고 아직도 내리고 있는 저 함박눈을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져 집 밖으로 나갔다. </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P> <P class=바탕글></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