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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2015'와 '2016'의 확연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막상 눈을 떠 보니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는 못하겠다. 그저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의 하루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일까. 새해라고 해서 특별한 감흥은 없다. 아마도 세월의 무게가 쌓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세월은 감정을 무디게 만들고, 감동마저 고립시킨다.
그러나 물리적인 나이만으로 이 복잡미묘한 상념들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인간의 사고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종속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 사회는, 내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굳은 살처럼 단단해져 갈 뿐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보다 이와 같은 환경의 불변성이 내면의 정서들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안팎의 상황들에 지치고 꺽이고 상하는 와중에,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정서가 점점 메말라가고 황폐해져 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를 강팍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정치가 으뜸이다. 병신년 새해 벽두부터 들려오고 있는 소식들만 보더라도 이는 명확해진다. 정치 사회란을 장식하고 있는 뉴스들은 정초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 일색이다. 총선이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졸속 합의한 위안부 문제로 시민사회의 분노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국민 여론은 무시한 채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 선을 긋고 있고,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직분을 망각한 듯 박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정치적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 오마이뉴스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헬조선 50관왕'이라는 통계 역시 우리 사회를 둘러싼 암울함을 여과없이 드러내 주고 있는 반증들이다. 우리나라는 자살률, 산업재해 사망률, 가계부채, 노인빈곤률, 최저임금, 행복지수, 국가채무 증가율, 실업률 증가폭, 사교육비 지출, 공공 사회복지 지출 비용(뒤에서), 저출산률, 이혼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등 50개 부분에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우리 모두가 무겁게 받아들여 할 참으로 낯부끄러운 결과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 없이는 어떠한 결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50개 부분에 걸쳐 꼴찌를 기록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실 이 참담한 결과의 전조들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들이다. 사회 곳곳으로부터 이상징후들과 위기의 신호들이 표출되어 왔다. 그러나 강력한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세월호 사건'은 저 민망한 기록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 이유를 보여준다. 전대미문의 압도적인 참사를 겪어도 도대체 이 나라는 어느 것 하나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왜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이 나라 정치의 저급함에서 찾는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이 나라 정치가 우리 사회의 도약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미다. 정의가 실종되고 양심이 사라지고, 법과 원칙이 형평성을 잃고, 약속과 신뢰가 처참히 깨져 나가고, 사회공동체의 가치와 상식이 붕괴되는 중심에는 언제나 이 나라 정치의 비루함이 놓여 있었다.
ⓒ 동아일보
우리 사회가 바뀌려면 사회구조적 병폐들의 근원인 정치를 뼈속부터 개조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관건은 이 나라 정치인을 어떻게 각성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인이 각성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열한 이 나라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인을 반드시 각성시켜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정치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정치 행위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은 정치인의 각성을 이끌어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정치행위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때 주권재민의 대원칙이 바로 서게 되고, 책임정치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으며, 취약한 대의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되고, 민주주의도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달라지려면 반드시 이 땅에 선거 혁명이 일어나야만 한다.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정치인의 각성을 유도하는 선순환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해 아침, '병신년'에 기대하는 것은 이것 하나다.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길은 현실적으로 이 방법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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