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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22735
    작성자 : MrGuinness
    추천 : 10
    조회수 : 1159
    IP : 183.102.***.129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5/08/28 21:48:44
    http://todayhumor.com/?history_22735 모바일
    만주의 팔기 제도와 그에 대한 논의
    <span></span><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예로부터 유목 부족과 그로부터 비롯된 국가들은 농경 국가와는 전혀 다른 군사 제도를 유지해왔고 이러한 독특한 군사 제도를 통해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군사 제도로 양성 된 정예군은 해당 국가의 지배 계급에 편입되어 정치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청나라 또한 여타 유목제국 혹은 그의 후예들과 다르지 않았다. 청은 팔기라는 독자적인 군사 제도를 수립하여 중원을 정복할 수 있었고 이러한 팔기는 지배 계급으로서 청조의 지배에 도움이 되었다. 허나 세월이 지나면서 부패와 전쟁의 변화로 인해 팔기는 무용지물이 되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글을 통하여 한때 중원을 제패했던 팔기는 과연 어떤 존재였고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span></p><br><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본디 여진은 지연 공동체로 이뤄졌으며 팔가→가산→호톤 순으로 존재했으며 각 부족은 가장 권위있고 명망있는 씨족의 족장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잦은 전란과 구성원 증가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하게 되면서 변화를 맞이하고 이는 무쿤이나 욱순과 같은 혈연 공동체로 변모한다. 그렇지만 누르하치의 시대에 들면 빈번한 전란과 사회계층 분화가 이뤄짐으로서 더 이상 혈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 보다는 지역 공동체적인 성격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역성이 강한 여진사회를 통일하기 위해 누르하치는 1601년, 여진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는 유지하고 통일된 군사조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군사 제도를 수립하게 된다. 그는 여진사회에서 전통적인 전투나 수립을 위해 조직되는 니루라는 기본단위를 사용하여 자기 휘하의 부족을 4개의 니루로 나누었고 음양오행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4가지 색,  황, 백, 홍, 남의 깃발로 이를 구분하였다. 니루는 가장 기본적인 군사 단위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는 세금과 부역을 담당하는 경제 사회적 역할까지 수행했다.</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새로운 군사조직의 등장으로 누르하치는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고 승리하면 승리할수록 많은 이들의 그의 밑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615년, 휘하 세력의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누르하치는  4기를 더 늘려 팔기를 편성한다. 그 가운데에 4기는 종전에 있던 4개 니루의 색을 그대로 채택하여 정백기, 정황기, 정홍기, 정남기로 지었고, 새로 추가된 4기는 깃발에 홍색 테 혹은 백색 테를 두른 양백기, 양황기, 양홍기, 양남기로 편성했다. 각 기는 75명으로 구성된 타탄, 4개의 타탄으로 구성된 니루, 5개의 니루로 구성된 잘란, 그리고 5개의 잘란으로 구성된 구사가 존재했다. 각 편제는 어전이라 불리는 자가 통제했으며 각 편제 특히 니루는 군사상의 기본단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본단위로서 군사조직인 동시에 행정, 경제, 사회조직으로 그 역활을 했다. 이러한 팔기 제도의 성립과 동시에 누르하치는  후금 사회를 왕족, 자유민, 노비로 엄격한 신분사회를 구축했으며 팔기의 제도화를 통해 지역공동체적 특성은 희미해지고 혈연적 성격이 강해졌다. </span></p><br><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는 팔기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몽골인들과 한인들을 팔기군에 편입시켰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혈족들 중 일부를 버일러에 임명, 각 기에 대한 지배권을 주었으나 홍타이지는 버일러들을 제거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돈독히 하는 동시에 한인들을 등용하여 중국식 행정기구를 채비함으로써 버일러가 가지고 있던 행정권을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 또 만주족이 몽골로 진출하고 많은 한족들이 투항함에 따라 몽골인들과 한인들만으로 구성된 몽골 팔기와 한인 팔기를 추가로 만들었다. 일단 팔기에 소속되면 만주인과 동일한 취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실력이 있다면 한인이나 몽골인이 만주 팔기로 편입될 수도 있었다. 몽골 같은 경우 만주족과 비슷한 부족체제였기에 기존 팔기제도를 도입해도 별 문제가 없었으나 한인 팔기 같은 경우 주로 항복한 한인 귀순자들로 구성되었고 기병이 위주인 다른 팔기와 다르게 화약 무기를 주로 사용했으며 군대를 인솔하고 항복했던 한인 관원이 지휘했다. 청이 북경으로 입성하는 1644년대에 들면 전체 팔기군 은 약 15~20여만명으로 만주 팔기가 45%, 몽골 팔기는 22% 나머지 38% 가량은 한인 팔기가 차지했다. 입관 이전, 팔기는 개방적인 조직이었고 만주인 뿐만 아니라, 몽골인, 한인, 심지어는 조선인들 까지 편입되는 등 병력 확보에 열성적이었다. </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입관 이후, 청은 중원의 침략자에서 지배자로 자리매김하였고 남명 세력과 삼번의 난을 제압함에 따라 팔기군 또한 개편될 필요가 존재했다. 팔기는 청의 핵심 군사 조직이면서 지배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팔기군은 입관 후, 금려 팔기와 주방 팔기로 나누는 동시에 녹영군이라는 새로운 군사조직을 편성했다. 금려 팔기는 수도인 북경 방위를 위한 조직으로써 낭위와 시위로 조직되었는데. 낭위는 궁성인 자금성의 호위를 담당했고 시위는 북경의 성문의 수비를 담당했다. 입관 이후 한족에 대한 불신과 지배를 원할하기 위해 금려 팔기는 만주 팔기와 몽골 팔기에서 모집했으며 수도를 지킨다는 상징성 때문에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방 팔기는 지방 요충지에 주둔하여 반란과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목표를 가지고 배치되었다. 초기에는 새로 정복한 요충지에 주둔하였지만 청의 지배가 어느 정도 안정됨에 따라 주방 팔기는 요충지 뿐만 아니라 총독이나 순무가 거주하는 지역에 배치시켜 지방 권력이 민권과 군권을 둘다 가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특히 주방 팔기는 군사적 수요에 따라 보직 이동이 빈번했고 이에 따라 주방  팔기의 혈연적 유대 관계는 와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주방 팔기는 더 이상 헐연적 관계를 바탕이 아닌 정부에서 임명하는 지휘관에 의해 지휘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옹정제 시기에 들면서 팔기에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지는데, 세습되면 지휘관 자리를 임명직으로 한것과 새로 임명된 팔기들은 18세 이상의 아들이 북경에 남아 있도록 규정했고 만약 병이나 나이의 이유로 더 이상 팔기의 업무를 할 수 없을 시엔 북경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파견된 자들은 해당 지역에서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팔기 내부의 긴밀한 혈연 관계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무관들의 부패를 뿌리 뽑고 결국엔 황제의 중앙 집권을 위한 방법이었다.</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녹영군은 청조가 입관 후, 명의 기존 군대를 편입시키면서 새로 나타난 존재였다. 이들은 한인만으로 조직되었으며 팔기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한인 팔기와 별개인 명령 체계를 갖추었다. 이들은 팔기의 희생을 줄이는 동시에 지방 치안을 위한 병력으로써 각 성의 총독과 순무에 의해 통솔되었다. 녹영의 수는 팔기의 약 3배 가량이었는데, 혹시 모를 한인들의 반란을 막고자 녹영은 의도적으로 작은 단위의 군으로 조직되었다.</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18세기 중엽에 들면서 팔기의 존재는 점점 청의 골칫덩어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국방을 위한 상비군이 아니라 정권유지를 위한 군대였던 팔기군은 태생적 한계와 청의 국내외적 상황에 따라 쇠퇴의 길에 접어든다.  팔기의 수는 점차 늘어갔지만 팔기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기마병의 정원은 동결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복무하는 이들은 복무하지 않는 한산기인들보다 현저히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8세기 말 물가 급등으로 인하여 주방 팔기들이 자체 부담하던 비용들을 더 이상 개인이 부담할 수 없음에 따라  주방 자체에서 이를 부담해야만 했다. 허나 주방의 예산은 한정되었고 중앙에서 내려온 지원금은 터무니 없이 적었다. 결국 주방 팔기들은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군마의 수를 줄이고 가옥과 토지를 한인들에게 임대하며 심지어는 고리대까지 끌어다 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자연스레 군사훈련의 횟수는 줄어들고 장비의 질은 떨어지는 등, 주방의 전투력은 크게 떨어 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팔기가 기본적으로 혈연적으로 구성되다보니 팔기의 구성을 실력이 아닌 가문과 혈연에 따라 구성되기 시작하는 등 신병선발의 공정성 상실과 부패 조장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렇게 약체화된 팔기는 건륭제 시기, 청 초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못 미더운 모습을 모였으며 백련교도의 봉기나 농민반란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span></p><br><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군사적 발전의 한계 또한 그 원인이 되었다. 전쟁의 양상은 변하였고 유목민들로 이뤄진 군대는 더 이상 무적이 아니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화약 무기의 위력은 강력한 철기의 돌격을  손쉽게 막아냈고 활보다 더 멀리에 있는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무기의 발전은 곧 평범한 일반인이 훈련과 지휘가 있으면 병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렸으며 기존 군사 귀족 집단 대신 총을 든 시민병들이 등장하여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군대를 양성할 수 있었다. </span></p><br><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결국 태평천국 전쟁을 마지막으로 팔기의 군사적 역활은 사실상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팔기는 군사적 능력을 대신 할 수 없었고 청은 어쩔 수 없지 지배 세력 유지를 위해 멸망할 때 까지 팔기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을 대신해서 신사층이 규합한 민병대가 청의 실질적 군대로 자리 잡았으며 양무 개혁과 무술 변법을 통해 근대화 되고 효율적인 군대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이러한 군대는 청의 군대라기보단 개인의 카리스마나 능력에 집중된 군대였으며 이렇게 근대화 된 군대는 곧 청 멸망 이후 들어서는 군벌들의 기초가 된다.  </span></p><br><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참고문헌</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만주족의 역사, 돌베게, 2013</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fdfdfd;">徐正欽</span><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color:#4a4a4a;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fdfdfd;">,</span><a target="_blank" href="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d10e4f2d7a984254ffe0bdc3ef48d419" style="text-decoration:none;"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color:#4a4a4a;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fdfdfd;"> </span><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color:#000000;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fdfdfd;">팔기제와 만주족의 중국지배 : 팔기제의 興哀와 滿洲政權의 消長 = 八旗制與滿洲族的中國支配</span></a><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 만주연구, 2005</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임계순, 청사-만주족이 통치한 중국, 신서원, 2000</span></p> <div><span style="font-size:13.3333333333333px;font-family:'Times New Roman';vertical-align:baseline;white-space:pre-wrap;background-color:transparent;"><br></span></div>
    출처 학교 과제로 제출한 겁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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