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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863197
    작성자 : 나비하야옹
    추천 : 1
    조회수 : 3366
    IP : 119.197.***.208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7/03/10 21:07:33
    http://todayhumor.com/?sisa_863197 모바일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습니다.
    옵션
    • 창작글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쟁기질 하는 모습,
    분명 어설프고 실수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을날 우리 모두 수확할 날 기다리는 그대 맘 모르고
    지금은 봄이 아니다,
    그 쟁기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스스로 밭을 짓밟고 새싹 파헤쳤습니다.

    꽃이 지고, 여름이 오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수로를 틀 사람이 없어 이미 떠난 당신 탓만 했습니다.
    큰 바람에 우리 모두 몸을 떨었지만
    이미 떠난 당신 탓만 하고 말았습니다.
    여름날 그래도 따뜻하고 그래도 먹고 살만하다고 여긴 것을
    꽃 줄기 꺾은 이 덕이라 생각했습니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질 때,
    별이 낙엽되어 떨어졌고
    이윽고 겨울이 왔습니다.

    겨울이 되고서야
    우리는 봄을 봄인줄 알았습니다.

    별이 떨어지는 날 흘린 눈물은,
    굶주림에, 낡은 방구석에, 억울함에 흘인 눈물은
    불어닥치는 겨울 칼바람에 눈송이 되어
    한가득 사람들 마음 속에 수북히 쌓였습니다.

    한가득 사람들 마음 속에 쌓인 눈물 담아두고
    하나둘 촛불로 어둠 귀퉁이 잘라 몰아냅니다.

    작은 불꽃에 추위 물리려고
    옹기종기 모여 손바닥 펼칩니다.

    밤하늘, 구름 가득 낀 추운 겨울날.
    칙칙한 하늘을 대신해서 눈밭 위로 별이 하나둘 뜨기 시작하고
    별빛은 웃음으로 눈물 닦아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먼저 져버린 별들을 위해 기도하고
    먼 날을 위해 입모아 외칩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밭을 일구자고.
    봄을 이제 봄인줄 알고서 싹을 틔우자고.

    오늘,
    겨울이 가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구름 걷혀 별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우리는 이제 팔뚝 드러내고 쟁기 들고 밭을 향해
    길을 나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쟁기질은 어설프고, 아프고,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굶주렸던,
    따뜻함에, 올바름에 굶주렸던
    지난 겨울날을 떠올리며
    우리는 땀을 훔칠 것입니다.

    땅을 파헤치고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면
    이윽고 싹을 틔어
    올 가을에는 풍성할 것이오,
    다시 올 겨울은 겨울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
    원래 저는 시사게에는 잘 안 들렀지만 오늘만큼은 이 마음 속에 맺힌 말 풀고싶었습니다.
    자리에서 금방 적어낸 것이라 어색하기도 부끄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지금 느낀 감정 그대로 써낸 이 글을 고치고 싶지 않네요.

    생각해보면 이번 탄핵 소추부터 탄핵까지 문학적으로 이야기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을만한 환경인 듯 싶습니다.
    그전까지 겨울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겨울이 되면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결국 가결되고, 수사하고, 재판하고, 봄과 함께 인용되었으니.
    훗날 이 사건은 많은 작가들 손에서 많은 이야기로 재탄생될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만큼은 발뻗고 주무세요.

    이제부터 우리 쟁기질하러 갑시다.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7/03/10 21:11:24  110.11.***.71  꽃지는저녁  508480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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