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습니다.<br>당신께서 쟁기질 하는 모습,<br>분명 어설프고 실수도 많았지만<br>그래도 가을날 우리 모두 수확할 날 기다리는 그대 맘 모르고<br>지금은 봄이 아니다,<br>그 쟁기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br>우리 스스로 밭을 짓밟고 새싹 파헤쳤습니다.<br><br>꽃이 지고, 여름이 오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br>수로를 틀 사람이 없어 이미 떠난 당신 탓만 했습니다.<br>큰 바람에 우리 모두 몸을 떨었지만<br>이미 떠난 당신 탓만 하고 말았습니다.<br>여름날 그래도 따뜻하고 그래도 먹고 살만하다고 여긴 것을<br>꽃 줄기 꺾은 이 덕이라 생각했습니다.<br><br>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질 때,<br>별이 낙엽되어 떨어졌고<br>이윽고 겨울이 왔습니다.<br><br>겨울이 되고서야<br>우리는 봄을 봄인줄 알았습니다.<br><br>별이 떨어지는 날 흘린 눈물은,<br>굶주림에, 낡은 방구석에, 억울함에 흘인 눈물은<br>불어닥치는 겨울 칼바람에 눈송이 되어<br>한가득 사람들 마음 속에 수북히 쌓였습니다.<br><br>한가득 사람들 마음 속에 쌓인 눈물 담아두고<br>하나둘 촛불로 어둠 귀퉁이 잘라 몰아냅니다.<br><br>작은 불꽃에 추위 물리려고<br>옹기종기 모여 손바닥 펼칩니다.<br><br>밤하늘, 구름 가득 낀 추운 겨울날.<br>칙칙한 하늘을 대신해서 눈밭 위로 별이 하나둘 뜨기 시작하고<br>별빛은 웃음으로 눈물 닦아<br>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br>먼저 져버린 별들을 위해 기도하고<br>먼 날을 위해 입모아 외칩니다.<br><br>이제 우리가 우리의 밭을 일구자고.<br>봄을 이제 봄인줄 알고서 싹을 틔우자고.<br><br>오늘,<br>겨울이 가고<br>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br>구름 걷혀 별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br><br>우리는 이제 팔뚝 드러내고 쟁기 들고 밭을 향해<br>길을 나서게 될 것입니다.<br>우리의 쟁기질은 어설프고, 아프고,<br>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br><br>하지만 굶주렸던,<br>따뜻함에, 올바름에 굶주렸던<br>지난 겨울날을 떠올리며<br>우리는 땀을 훔칠 것입니다.<br><br>땅을 파헤치고<br>씨앗을 심고<br>거름을 주고 물을 주면<br>이윽고 싹을 틔어<br>올 가을에는 풍성할 것이오,<br>다시 올 겨울은 겨울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br><br><br>======================================<br>원래 저는 시사게에는 잘 안 들렀지만 오늘만큼은 이 마음 속에 맺힌 말 풀고싶었습니다.<br>자리에서 금방 적어낸 것이라 어색하기도 부끄럽기도 하지만,<br>지금은 지금 느낀 감정 그대로 써낸 이 글을 고치고 싶지 않네요.<br><br>생각해보면 이번 탄핵 소추부터 탄핵까지 문학적으로 이야기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을만한 환경인 듯 싶습니다.<br>그전까지 겨울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br>겨울이 되면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결국 가결되고, 수사하고, 재판하고, 봄과 함께 인용되었으니.<br>훗날 이 사건은 많은 작가들 손에서 많은 이야기로 재탄생될 것 같습니다.<br><br><br>다들 수고하셨습니다.<br>오늘만큼은 발뻗고 주무세요.<br><br>이제부터 우리 쟁기질하러 갑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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