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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l_86694
    작성자 : 여름하늘
    추천 : 4
    조회수 : 453
    IP : 182.172.***.18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2/09/19 22:53:05
    http://todayhumor.com/?lol_86694 모바일
    [롤문학] 심해 왕자2.


     배치고사를 똥망하고 멘붕과 함께 찾아온 슬럼프 이후, 레이팅이 내핵까지 떨어졌을 때 버스기사도 대리랭도 구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혼자서 어렵게 심해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접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롤좀 한다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레이팅을 공개하는 순간 멸시와 비웃음이 따갑도록 쏟아졌고, 그때마다 나는 마치 죄인이 된 거마냥 웅크려야 했기 때문이다.


     멘탈을 가다듬고 보니 나는 언랭을 벗어나기 위한 1250점에 반도 안되는 점수대에 위치해 있었다. 큐를 돌릴때마다 나는 지뢰밭 한가운데 떨어진 이등병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픽화면에서부터 서로 포지션을 가지고 싸우다가 트롤예고 후 닷지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원딜을 하고 싶어도 다른 포지션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들어간 방에서 1픽이 모두들 기피하는 서폿을 가겠다 선언했을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 지 여러분들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1픽은 나에게 말했다.


     "서폿 골라줘!"

     "뭐라구요?"

     "내가 할만한 서폿을 추천해줘."


    나는 너무 놀라서 닷지를 할 뻔 했다. 눈을 막 비비고 다시 화면을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1픽이 5픽인 나에게 서폿을 골라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느닷없는 발언에 너무 놀라서 뭐라 대꾸하는 것도 잊고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원딜을 하겠다 꼬장을 부리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1픽이 서폿을 골랐고, 또 1픽이 나를 지목해서 서폿을 골라달라고 하니 듀오라고 내심 짐작하는 것인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내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에게?"


    그러자 그는 아주 심각한 이야기나 되는 듯이 다시 또박또박 되풀이해 이야기했다.


     "부탁이야... 제발 서폿을 추천해줘."


    너무도 인상 깊은 신비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면 누구나 거기에 순순히 따르게 마련이다. 레이팅을 올리려면 가장 자신있는 포지션을 골라도 될까말까한 마당에 남의 말을 듣고 픽을 한다니 참 어처구니 없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어차피 자기가 골라달라고 하니 내가 손해볼것은 없다 생각하고 추천해 주기로 했다. 그러자 내가 그동안 단 한번도 서폿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1픽에게 나는 서폿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괜찮아. 그냥 서폿을 추천해줘."


    괜찮다고는 했지만 나는 서폿에 종류가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기에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마스터 이를 추천해 보았다. 만약 여기서 욕설이나 비난이 나온다면 그 길로 닷지를 하고 다음 게임을 기다리면 되리라. 하지만 그 1픽은 다음과 같은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아냐, 아냐, 마스터 이는 안돼. 마스터 이는 아주 강력하지만 힐도 없고 CC도 없어서 너를 보호해 줄 수 없을거야. 나는 너를 보호할 수 있는 캐릭터를 원해. 다른 서폿을 추천해줘."


    그래서 나는 말했다.


     "쉔은 어때?"


    그는 주의깊게 듣더니,


     "안돼! 그 챔프는 벌써 밴이 되었는걸. 다른 서폿을 골라줘."


    나는 또 다른 챔프를 추천했다.


    그는 너그러운 말투로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봐...이건 서폿이 아니라 탑이잖아. 다리우스는....."


    그래서 나는 다른 서폿을 추천했다. 그러나 그것도 앞에 것들과 마찬가지로 거절을 당했다.


    "타릭은 너무 게이같아. 난 타릭 목소리를 들으면서 게임하고 싶진 않아."


    1픽의 픽제한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툭 던졌다.


    "챔프선택창 가장 마지막칸에 물음표 모양이 있을거야. 네가 원하는 서폿은 그 안에 있어."


    그러자 1픽의 얼굴이 환히 밝아지는 것을 보고 나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뭐가 뽑히든간에 서폿을 할 수 있겠지?"

     "왜 그런걸 묻지?"

     "내 레이팅은 아주 낮거든. 더 떨어지고 싶진 않아..."

     "괜찮을거야 아마도. 상대팀 레이팅도 너와 다르지 않을테니까."


    이렇게 해서 나는 심해 왕자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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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9 23:04:59  118.44.***.197  입문계잉여  17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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