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뿐이었다. 당신들 밀레시안에게는 별 의미 없는 타이틀. 성역의 문 앞 선지자를 임시로나마 저지하며 알반의 기사단 중 단 한 명, 그저 그 사람과의 유대가 조금, ..아주 조금 더 높았다는 징표일 뿐.
당신은 간만에 마주한 나를 보며 반갑게 웃었고 찰나의 시간이나마 여유가 남노라면 하면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내곤 했다. 나는 당신에게 들려줄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기에, 최선을 다해 당신의 언어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 한 마디마다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기뻤어.
"톨비쉬.. 톨비쉬라."
실로 당신은 내게 온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되살아난 시체에게 조금이나마 갑옷이 긁힌답시면 곧장 '알터!!' 내 이름을 부르짖으며 단숨에 달려오던 당신이었다.
아벨린 님의 만류에도 톨비쉬 님을 끝까지 설득해 제 손으로 나와 함께하겠노라고 맹세했던 것도, 당신과 처음으로 엮인 집단의 명을 결사단이라 칭하도록 만들어준 것도, 그 결사단으로 이끌어준 것 자체가 당신의 관심 덕분이었다.
결사단의 최약체인 내가 선지자의 칼날에 쓰러져버릴 때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부르짖은 것도 당신...
내가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면, 실로 당신의 곁에 바짝 붙어 등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하다못해 그보다 자신이 먼저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더라면, 조금은.. 조금이나마..
아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속한.. 말 그대로 껍데기 뿐인 이름일 뿐. 그와 함께했다는 그런 의미 없는 수식어 따윈 필요 없잖아요.
"낯간지럽긴 하다.. 아하하.." "......"
막상 부끄러움에 멋쩍은 웃음을 보이던 당신을 마주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살짝 달아오른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당신은.
내게 상냥했었잖아요. 나를 부르짖고 나를 붙잡아주며 나를 이끌어주었던 건 당신이었잖아요.
'매번 실수해서 죄송해요..'
'괜찮아, 큰일도 아니었고.'
'하지만.. 만약 저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시면.. 저.. 저를 싫어하게 - ,'
'..난 알터를 좋아해.'
무슨 의미이건 관계 없어.
'전 당신을 좋아합니다.'
'톨비쉬 님..!'
처음엔 기뻤다. 최고위 기사가 당신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좋아한다'며 웃고 있었으니까. 이제 당신과는 정말 단단히 엮인 인연이게 될 거라고 - .
..왜 웃었던 걸까, 멍청했던 난.
'..굉장히 알터를 좋아하시는군요.'
평소처럼 하하 웃으면서도 살짝 가시 돋힌 듯한 톨비쉬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나를 향해 웃어주던 당신은 사라지지 않잖아요. 왜, 대체 그까짓 칭호 따위가 뭐길래. 그까짓 게 당신과 나를 이렇게 갈라두는 걸까. 이렇게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사실 다 알고 있어요. 함정에 빠진 당신을 구하기 위해 제일 먼저 달려나갔던 그가.. 당신에게 감히 어떤 맹세를 했었는지..
"나라면... 당연한 맹세였을 텐데..." "응? 뭐라고 했어, 알터?" "아.. 아녜요!"
당신은 곧 상냥하게 웃으며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주었다. 이거 봐, 당신은... 내게만....
"자주 찾아올게."
..붙잡고 싶었다. 가지 말고 옆에 있어달라는 욕심은 오래 전에 애써 깊이 묻어둔 채였다.
내가 더 당신을 좋아해요. 내가 더 당신을 생각해요. 내가 더 많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그보다 더 많이 당신을...
"...저," "..응?"
그저 한 마디 묻고 싶었다.
'톨비쉬 님도, 좋아하게 됐나요?'
그녀의 옷깃을 약하게 붙잡은 채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무서웠다, 당신의 대답이. 오로지 내게만 보여줘야 할 상냥한 얼굴로, 그를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를 당신이 무서웠다. 혹여나 자신의 물음에 둔감했던 무언가가 깨어날지도 모름에 몸서리쳤다. 안 돼, 납득할 수 없어. 용서할 수 없어. 그래선 안 돼. 그래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