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margin:0px 0px 6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1d2129;font-size:14px;">위장전입(2)</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1d2129;font-size:14px;">기왕에 말 나온 길에, "위장전입"문제 몇 차례에 걸쳐 비판 좀 하기로 한다. 박정희의 망령이 55년을 지난 이 대명천지에 문재인의 발목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발목을 잡아 흔들고 있어 정말 화가 나기 때문이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1d2129;font-size:14px;">1962년 제정된 주민등록법은 원래 ‘위장’전입-허위신고에 대해서는 3천원이하의 벌금에 처했다가 1968년 이 규정은 2중으로 주민등록한 자가 허위신고를 한 때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월남전등으로 정치적 불안을 느낀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긴급조치와 같은 살벌한 통치체제를 만들어낸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 “위장전입”을 다시 형사처벌하도록 한 주민등록법의 개정이었다.</p> <div class="text_exposed_show" style="display:inline;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1d2129;font-size:14px;"> <p style="margin:0px 0px 6px;font-family:inherit;">실제 1975년 7월 주민등록법의 개정을 통해 강력하게 부활한 위장전입 처벌조항은 곧이어 제정된 민방위기본법과 함께 국가를 완전한 병영체제로 장악하려는 박정희의 의도가 노골화된 입법이었다. 그 처벌수준을 예비군 허위신고와 마찬가지 수준인 3년이하 징역 또는 15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상당히 무거운 벌칙(제21조제2항제1호)으로 만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거기다 이 주민등록법은 사법경찰이 “간첩의 색출, 범인의 체포등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민의 신원 또는 거주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때”에는 언제든지 주민등록증의 제시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추가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간첩이 아님-부랑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하게 되었던 것이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inherit;">제정이유는 간단하다: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주민등록을 거주사실과 일치시키고 민방위대, 예비군 기타 국가의 인력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총력전 태세의 기반을 확립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마치 유신헌법이 그러했고, 긴급조치가 그러했듯, 이 주민등록법상의 위장전입에 대한 처벌조항은 간첩잡는다는 명분하에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을 수색하여 잡아들이거나 그들이 도망갈 곳 없이 만드는 것, 그래서 국민들을 철저하게 복종하는 무력한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inherit;">이 주민등록제도는 그 자체 전대미문의 엄청난 국민감시체제를 구성한다. 지금이야 그냥 주민센터만 가면 간단히 전입신고되지만, 한동안 반장-통장의 확인도장이 있어야 전입과 퇴거신고가 가능했다. 최말단의 행정단위인 반장의 대면 확인이 있어야만 전입하고 또 퇴거할 수 있었던 셈이다. 주민등록을 하고도 오랫동안 반장과 통장의 시선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공민권 자체를 상실하고 만다. 또는 주거부정자가 되어서 조그마한 범법사실에도 그냥 유치장에 끌려가고 또 쉽사리 구속되는 일종의 호모 사케르 비슷한 지위에 빠져 버린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inherit;">박정희의 통치가 18년까지 이어지고, 부마사태가 그렇게 치열하였음에도 궁정동에서 시바스 리갈 마시며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치밀한 국민감시체계가 존재하였고 그것을 권력의 피라미드를 따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inherit;">여기서 그때의 위장전입처벌은 민주인사탄압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부동산투기나 학군위반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 운운하는 것은 별로 의미 없다. 그때에도 “자녀들의 학구를 위반키위해, 신분을 감추기위해, 전화를 놓기위해, 부동산매매를 위하는 등 주로 위법,탈법등의 수단으로” 위장전입이 흔해 행해져 왔다는 비판은 있었다.(동아일보, 1975. 6. 19) 지금이랑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목적을 위해 위장전입이 횡행했었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inherit;">하지만 이런 “사회문제”의 핵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학구판정기준이나 신분확인의 방법, 전화가설이나 부동산매매 등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사람을 일정한 지역(주소-보다 정확히는 주민등록지)에 묶어두고 그것을 떠날 경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봉건적 제도에 있다. 마치 농노를 땅에 묶어두고 그 땅을 벗어나면 처벌하였던 중세처럼, 이 주민등록법은 사람을 주민등록지에 붙박아두고 그규제를 벗어나면 중형-형사처벌은 물론, 자녀의 취학, 전화가설, 부동산매매 등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 했을뿐 아니라 심지어 주거미상자가 되어 사법경찰관에게 잡혀가는-에 처하는 또 다른 농노제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p> <p style="margin:6px 0px;font-family:inherit;">박정희는 이런 제도를 바탕으로 18년을 집권하였다. 그 이후 전두환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 폭력성은 조금씩 희석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우리는 이 주민등록법에 순응하면서 국가의 명령에 알게 모르게 순치되어 간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p></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