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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바다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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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beauty_35568
    작성자 : 바람바다
    추천 : 24
    조회수 : 944
    IP : 203.142.***.33
    댓글 : 20개
    등록시간 : 2015/12/24 06:46:51
    http://todayhumor.com/?beauty_35568 모바일
    이렇게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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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비록 화장한 얼굴, 제대로 세수도 못하고 잠드는 바람에 피부가 반란을 일으켜 얼굴 곳곳에 뾰루지가 올라오고 각질이 버즘피듯 올라왔어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백수가 된 후로 책이라던가 똑 떨어진 수분크림 한 통 등, 필요한 게 있을 때나 슬쩍 나가서 볼 일 보고 집에 돌아오던 일상에 조금은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이 들던 요즈음이다.

    근 몇 달에 걸쳐 가끔씩, 친구가 자신이 가입한 모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나오면 어떻겠느냐기에 매번 거절한 것도 미안해서, 그리고 오랜만에 시내 중심가에 나가서 연말에 들뜬 사람들 구경이나 좀 해보자 싶어 그러마고 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약속한 날이다.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될 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마음잡고 하는 외출, 간만에 멀리 가는데 예의는 차려야겠다 싶어 하나, 둘 얼굴에 찍어바르다보니 나도 영 못 봐줄 얼굴은 아닌 것 같다.

    일개 인터넷 커뮤니티 정보로 학습한 정보가 크게 도움이 되는 일도 있구나.

    새벽 늦게 화장 지우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들어 푸석푸석 망가진 피부가, 인터넷에서 소위 '꿀팁'이라 말하는 정보를 토대로 따라하니까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도 수습이 가능하다니. 참 세상 좋아졌다.

    더구나 무작시리 신이 나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댓살배기 아이의 도화지를 물들인 물감마냥 얼굴에 올렸는데도 나름대로 조화롭다. 이거야 정말 인터넷 만세, 화장품 만만세다.

    늦지 않도록 서둘러 걸음을 옮겼지만 매정한 지하철은 문들 닫고 떠나버렸다. 모임시간보다 먼저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조금 늦어질 것 같아 메시지를 보내고, 이어폰과 휴대폰을 연결해 음악 어플을 실행시켰다.

    예뻐졌다, 매일 듣고싶었던 말.
    정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

    본드로 접착해놓은 것마냥 답싹 달라붙어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커플이 시야에 걸린다. 저 여자는 남자친구가 매일 예쁘다 해주겠지. 솔로는 정말 한 번 듣기도 어려운 말인데.

    하기는 그런 입에 발린 말 들어 뭐하나. 연애도 결혼도 그저 제 팔자 제가 꼬는 일이다.
    감흥없는 생각을 하다보니 지하철이 오고, 가사가 제대로 뇌내 입력조차 안 되는 최신 유행가를 흘려듣다보니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바다야!"

    지난 달, 백수에게 영양가 있는 밥 한 끼 사준다고 하기에 불려나와 비싼 밥 얻어먹고 실컷 수다를 떨었었는데 그리고는 꼭 한 달만의 만남이다.

    친구는 그 날 집에 돌아갈 때쯤 윈도우쇼핑을 하다가 구입한 립스틱을 바르고 나왔다.

    가장 어울리는 색을 골라줬더니 이미 비슷한 색이 있다고 해서 차선으로 어울리는 잘 익은 사과색의 립스틱을 권했었는데, 두 말 않고 구매한 뒤로 잘 사용하는 중인가보다.

    괜히 뿌듯한 마음에 속으로 흐뭇하게 한 번 웃고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다시 수다삼매경.

    그간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서 다음달이면 삼천만원이 모인다고 자랑을 한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주택청약적금이 어느덧 천만원 가까이 들어갔다고 하더니.

    저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것이고, 이제 갓 사회초년생 티를 벗을까말까 하는 우리 나이를 생각하면 제법 많이 모았으니 뿌듯하긴 할 것이다.

    물론 축하할 일이긴 하다만, 차고 넘치는 가계빚에 학자금 대출까지 있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매양 돈줄 끊길까 허덕였던, 더욱이 이제는 백수된 지 오래여서 통장잔고가 사막화되어 가는 사람 앞에서 굳이 또 돈 이야기를 하는 건 이유를 모르겠다.

    커피에 곁들여 에그타르트까지 얻어먹는 입장에서 돈 이야기는 그만 해달라 뭐라고 하기도 참 그렇다. 그저 내색 않고 좋겠다 잘했다 칭찬하고 말았다.

    가열찬 수다에 목이 타는지, 두 손으로 커피잔을 들어 목을 축이는 친구의 손에서 샵에서 공들여 관리받은 것이 분명한 네일아트와 손가락 곳곳에 레이어드해 끼워진 실반지들이 반짝인다.

    덩달아 커피잔에 손을 대는데 버석하니 말라 거스러미가 올라온 손끝이 거슬려 핸드크림을 꺼내 발랐다. 은은한 라벤더 향기에 차가운 바닥 어딘가를 헤매이던 마음이 담요 한 장 두른 것마냥 포근해진다.

    문득 더위를 느끼고 패딩을 벗는데 스친 머릿결이 유독 차분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오늘 처음으로 사용한 사 천원짜리 샴푸와 천원짜리 헤어팩이 기능이 제법인 것 같다.

    지난 번 비싼 밥을 얻어먹기도 했고 오늘 커피도 얻어마셨으니, 평소 머리숱이 부스스하게 보일까 걱정이 많은 친구에게 다음에 만날 때 괜찮은 헤어팩을 선물하마고 했다.

    시계를 보니까 모임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또 자리를 옮겼다. 약속시간이 몇 분 지나지 않아 속속 모여드는 낯선 얼굴들. 처음 보는 이들이지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어, 지난 번에 나오셨던 분 아니신가?"
    "아닌데요. 이 친구 따라서 처음 나왔어요."
    "처음 오신 분이구나. 지난 번 오셨던 분이랑 너무 닮아서 난 또 그 분인가 했어요."

    악의없는 인사이고 자주 생기는 상황인데 겪을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하다. 칭찬은 아니고 그렇다고 욕은 또 아닐 것 같은, 애매한 말. 어쩌겠는가. 그저 이목구비 흐릿하고 흔하게 생겨서 그런 것을.

    "이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서 다음에 또 나오시겠지? 환영해요."

    이 사람은 다음에 나와 닮았다는 그 사람과 만나면 또 "지난 번에 닮은 사람 한 명 나왔었잖아요. 어찌나 닮았던지 당신인 줄 알았어요." 하고 주절거릴 것 같다. 부디 그 사람이 기분 상해하지 않기를.

    너댓 명 나오면 많은 거라고 하더니만 열 명도 더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 아는 얼굴과 반갑게 인사하는데 이쪽 테이블만 조용하다.

    친구와의 사이는 영 어색한 듯 하지만 그래도 모임에 몇 번 나와본 듯한 사람이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질문을 했다.

    주섬주섬 주워듣다보니 맞은 편에 앉은 세 사람 중 한 명도 영 어색한 미소를 띄고 오늘 처음 나왔다고 한다. 더욱이 이 모임을 소개한 지인은 사정이 있어 나오지 못해 혼자 왔다고. 친구와 함께 온 사람의 마음도 이럴진데, 그 마음이 어떨런지.

    대화의 어색함이 좀 가신 것 같다 싶으니 친구가 모임에서 친한 지인과 저 먼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따라 옮기기에는 앞의 이들과 이제 막 말하는 마음가짐이 편해지는 찰나인지라 혼자 제 자리에 있었다.

    술 한모금 들어갔겠다,이 테이블 저 테이블 할 것 없이 웃음소리가 높아질 무렵 집에서 급한 연락을 받은 친구가 서둘러 코트를 입고 가방을 챙겨 일어서서는 이만 가봐야겠다고 한다.

    왜 벌써 가냐는 만류에 죄송하다, 다음에 또 보자 여러번 인사한 후에 아차 싶은 얼굴로   "너도 갈래?" 하고 묻는다.

    그 말은, 저가 겉옷을 챙겨입기 전에 해줬으면 좋았을 걸.

    이미 내친 걸음에 테이블에서 한 걸음 떨어진 상태로 그렇게 말하면, 따라서 돌아가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절로 엉덩이를 몇 번 들썩이니 앞에 앉은 이들이 놀란 얼굴로 "같이 돌아가시게요?" 한다.

    뭐 물가에 떼어 버려진 어린 아이도 아닌데, 이야기 중에 친구가 간다고 벌떡 일어나 뒤도 안 보고 갈 수야 있겠는가. 그냥 간단히 배웅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먼 테이블에 앉았던, 모임에 지각을 한 이가 다가와 바로 곁에 앉는다. 아까부터 새 얼굴이 보여서 누군가 궁금했다고.

    "이름이 뭐예요?"
    "오 바다입니다."

    푸흡- 하고 감추지 못한 웃음이 귀를 때린다.

    "오 바다래, 오바다, 진짜."

    초전에 인사 나눌 때 이미 이름을 들은 데다가, 속으로는 어땠을 지 몰라도 겉으로는 웃는 이가 없었는데 대놓고 비웃는 이를 마주하니 얼이 빠진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하하, 웃는데 "부모님이 너무하시네. 안 그래요?" 하고 동의를 구하는데 대체 낫살은 어디로 먹었나 싶을 정도.

    그리고는 "이런 모임에 나왔으면 자리도 옮겨주고 그래야지. 자리 멀면 이야기 하기 힘들잖아." 가르치는 투로 말하는데,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이제쯤 자리를 옮겨볼까 싶은 때에 타이밍 좋게 옮겨 온 것은 그 쪽이거니와- 새로 온 사람이 있으면 응당 어색해 할 터인데 익숙한 이들이 먼저 다가와주는 게, 어떻게 보나 당연한 배려가 아닌가.

    계속 이 모임에 나오게 될지는 몰라도, 이 사람과는 엮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이후에 나온 이야기는 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더군다나 대뜸 새로 온 사람이라면 영 모를 이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어떤 이의 질문에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무시하는 어투의 대답. 거기에 앞자리 새로 온 이와 대화 중 의견이 갈리자 네가 뭘 알아? 하는 느낌 충만한 말 돌리기까지.

    간혹 궁금한 주제를 꺼내고, 맞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 사람이 말하는 내내 휴대폰 만지며 딴 짓 하는 무례를 저지를 뻔 했다.

    문득, 마찬가지로 점차 표정이 굳어가는 앞자리 사람과 잠깐 시선이 마주한다. 이 사람도 굳이 모임을 소개한 지인과 함께가 아니라면 다음번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슬슬 파장 분위기가 되어서 몇몇 사람과 번호를 교환하는데, 내둥 자기 인성이 어떠한 지 언행으로 보여주던 이가 끝까지 참 웃겨주신다. 단톡방에 자신도 있는데 톡하면 되지 굳이 번호 일러줄 필요 있냐니.

    나야 당신 번호 그닥 궁금하지도 않았다. 물어본 이가 정말로 연락처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부러 물어보는 이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본 데 없는 예의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예전에 친구에게 이 이에 대한 사소하고 짜증나는 뒷담화를 들었을 땐 그런 사람도 있구나 했는데 직접 겪으니 헛웃음만 나온다.

    그저,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는 내내 그간 사용할 일 없어 없어진 줄 알았던 가면을 쓰고 생긋생긋 웃고 말았다.

    참 오래도 앉아 있었구나 싶었는데 9시밖에 안 됐다. 즐거울 땐 가는 줄 몰라도 재촉하면 안 가는 게 시간이라.

    느리게 걸음을 옮기는데 지하철 역을 향하는 길목에 서점이 하나 보여 낼름 들어섰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사고 싶었던 책이 눈에 띄었지만, 회비 명목으로 책값만큼 돈주머니가 쑹덩 비어나간 터라 몇 장 살펴보고 내려놓았다.

    더웠다가 추웠다가 했더니만 요의가 느껴져 역사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울을 보니, 다크서클이 턱밑에 닿을랑말랑 하다.

    먹고 마시고 말하는 동안 립스틱은 죄 지어져 간 데 없는데, 오랜만에 바짝 하늘 향해 올라갈 정도로 잘 된 마스카라가 그대로 있다.

    한동안 안 쓰고 있었더니만 갖고 있던 마스카라가 다 굳어서 못하고 왔었는데, 모임장소 근처에 드럭스토어가 보이기에 급한대로 손에 잡히는 테스터로 바른 건데도 꽤나 괜찮다. 다음에 세일하면 구매해야겠다.

    또 지하철 타고 먼 길을 가야 하는지라 이어폰을 귀에 꽂는데 마침 전화가 온다. 벌써 일 년 가까이, 직장 때문에 주말에나 겨우 집에 올까말까 한 오빠의 전화다. 간만에 집에 왔나보다.

    "어, 왜."
    -어디신가?
    "나 지금 종로. 왜?"
    -아직 오려면 멀었어?
    "아니. 지금 지하철 탈려는데."
    -올 때 콜라 좀 사다주라.
    "어- 지금 가도 한 시간 이십 분은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아?"
    -어.
    "다른 건 필요없고?"
    -다른 먹을 것도 사오면 좋고.
    "뭐, 어떤 거?"
    -과자나, 빵이나. 아무거나 괜찮아.
    "알았어."

    어릴 때 몇 달 배운 태권도를 십분 활용해 명치에 반달찍기로 숨도 못 쉬게 만들었던 못된 놈이지만, 이제는 만날 야근에 철야에 바쁜 놈이라 자주 못 보고 지내니 간혹 잘해주고 싶어지기도 하는 터.

    자분자분 전화를 받아줬건마는 아무거나 주문하면 정말 아무거나 사가련다.

    마침 수입과자를 개 당 천원에 파는 매장이 눈에 띄기에 들어가서 과자를 골랐다. 집 근처에도 요즘 우후죽순 늘어난 수입과자점이 하나 있지만, 도착하면 문닫을 시간일 것 같으니 가격 저렴한 것으로 미리 사가는 건 제법 괜찮은 생각 같다.

    전에 수입과자는 너무 짜거나 느끼해서 별로라고 했었으니, 바닐라 맛 웨하스같은 어느 나라라도 평균적인 맛을 가진 과자 위주로 골라담았다.

    이것저것 고르다 보니 성인 몸통만큼 큰 비닐봉지에 일곱 개의 상자가 들어찼다. 오빠 제 입만 입일까. 주전부리 좋아하는 아빠도 엄마도 있고 노상 놀고 먹는 돼지같은 나도 있는데, 두고 같이 먹으면 된다.

    두터운 겨울 겉옷 둘러입은 사람 사이에 낑겨 멀거니 앉아있다가 집 근처 역에 내리는데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내둥 긴장한 덕에 거금을 내고도 먹은 거라고는 탄산음료 두 잔에 순살치킨 몇 조각이 전부였고, 그도 집에 다 와가는 지금엔 다 소화가 됐는지 허기가 진다.

    홀린 듯 걸음을 옮겨 매대를 살핀다. 아빠가 좋아하는 밤식빵은 없는데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찰떡이 들어간 빵이 있다. 오빠가 좋아하는 소시지빵도 있다. 속에 샐러드가 들어간 빵도 보인다. 전부 밀가루가 아니라 쌀로 만든 빵이란다.

    정신차려보니 과자봉지 반절 크기의 빵 봉지가 손에 들려있다. 그리고 들어온 카드 결제 알림 문자 한 통.

    과자는 괜히 샀나 싶기도 하고. 기왕에 사들고 지하철 여행까지 했는데 어쩔 셈이냐. 안 먹기만 해봐라.

    집 바로 앞 편의점에서 1+1 행사하는 캔콜라를 계산해 추가로 봉지에 담아들고 집에 도착했다. 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안방 쪽에서 "왔니."하는  엄마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다녀왔습니다."

    이 한마디 하는데 진이 빠진다. 당이 떨어져서 그런가. 부모님 알면 젊은 애가 무슨 소리냐 등짝을 내려칠 만한 생각을 하며 방에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오빠 방으로 갔다.

    "왔어?"
    "어. 여기."

    봉지들을 슥 보더니 콜라 캔을 하나 집어든다. 콜라 귀신인데 한 캔으로는 부족하다. 남은 캔도 건네줬다.

    "빵이랑 과자도 먹어. 사오라며."
    "아냐. 콜라면 돼."

    먼 데서 사온 사람 기운 빠지게. 나야말로 속이 허한데 잘 됐다. 안방에서 아빠엄마랑 먹어야지.

    "나 빵 사왔는데."
    "그래? 일어나 봐요. 딸내미가 빵 사왔는데."

    평소 같았으면 몇 시고 일어나서, 20대가 다 넘어가는 게 코 앞인 다 큰 딸에게 "애기 왔쪄~?" 하실 양반이 잠에 취해 영 눈을 못 뜨신다.

    한창 더웠던 여름 무렵부터 환갑이 넘으니 부쩍 힘이 든다고 한 삼 개월만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종종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힘드신가 보다.

    생각대로만 풀렸더라면, 이룬 것 없이 시간만 이렇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저마다 생각대로만 풀리는 게 삶이면 고생하는 이 뉘 있으랴. 그저 안타까움에 입바른 바람일 뿐이다.

    십 수 년이 지났어도 해결 못 한 빚더미를 싸안은 집안에서, 비록 대출을 받았기로서니 자식 둘 다 대학물 먹은 것도 감사해야 한다.

    거기에 나이 환갑에도 일하는 아빠, 매 끼니 챙겨주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취업준비생에 실업자도 넘쳐나는 마당에 대기업은 아니지만 탄탄한 중견기업에 취업해, 취업 후 일 년 동안 쉼없이 굴려지긴 했어도 제법 괜찮은 급여를 받는 오빠까지 있는 걸.

    급한 빚 털어내느라 아직 돈이 모이진 않지만, 가족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차차 빚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고 언제고 빛 볼 날 있겠지.

    기실, 나만 잘 하면 된다.

    직장을 그만 둔 후로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는 했지만, 제 한 몫 못하는 건 나 뿐이다.

    학교 졸업하고 얼결에 몇 개월 단기계약직으로 들어간 사무실은, 직무 자체는 적성에 맞는 편이라 힘들긴 해도 가끔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사실 막 입사한 사무실 막내가 뭐 그리 어렵고 많은 일을 했겠는가. 처음 생각보다 칼출근 칼퇴근이 어렵고,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야근이 많았어도, 풀 메이크업이 세수도 겨우 하고 출근할 정도로 지쳤어도 조금만 더 버티자, 버티자- 하다 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 몇 개월 연장, 또 연장.

    그렇지만 타고난 체력이 저질이어서일까. 그마만큼 일이 힘들어서일까.

    정말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어떤 날은 꿈에서 죽을 자리를 찾아 기어들어가 웅크리고 있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신 외삼촌이 찾아오셔서는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놀라서 깨고는 이유모를 서러움에 한참을 울다 젖은 눈으로 출근한 적도 있다.

    체력적 한계라는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데 더군다나 사무실이 지방으로 이전을 했다. 처음 며칠은 지방으로 출퇴근 했지만,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왕복 5시간이 가까운 출퇴근길은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싶었다.

    결정적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결국 일을 그만 두었는데- 달력을 보니 일 년이 가깝도록 지났다. 시간 참 빠르네.

    사람은 배가 곯으면 어두운 생각을 한다.

    내 손에 이 만원이나 주고 사 온 빵과 과자가 있다. 잘 시간이 지났지만 뭐 언제는 시간 맞춰 자고 일어나고 했나. 고질적인 수면장애로 낮밤이 수시로 바뀐지 오래인데, 먹고 두어 시간 더 앉았다가 자면 되겠지.

    샐러드가 들어간 빵을 꺼내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그래도 부족해서 소시지빵도 먹었다. 혹시 몰라 두개씩 사오길 잘한 것 같다.

    배가 차니까 기운이 돈다. 역시 당이 떨어졌던 걸까. 반 오십 지나면 하루하루가 다르다더니 날이 지날 수록 맞는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니 부모님은 오죽하겠는가.

    멍하니 앉았다가 퍼뜩 여태 외투도 안 벗고 손발도 안 씻은 상태임을 깨달았다. 아, 화장도 지워야 한다. 급히 손발부터 씻었다.

    간만에 진하게 메이크업을 했으니 잘 지우고 자야지. 립앤아이 리무버를 화장솜에 적셔 자잘한 펄이 올려진 눈두덩 위에 올려놓고 십 초를 센다.

    3, 2, 1. 땡.

    자르르 붙어있던 펄과 진한 아이라인이 고대로 화장솜에 뭍어나온다.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은 마냥 솜 위에 옮겨 그려진 것이 슬쩍 웃음이 나게 만든다.

    반대 쪽 눈도 지우고, 입술에 남은 립스틱도 지우고.

    립앤아이 리무버로 지운 후에도 남은 흔적과 피부화장은 클렌징 티슈로 닦아내고, 그래도 남은 것 같아서 클렌징 워터로 지워낸다.

    사용 후 물 세안이 필요없다는 제품이지만 진짜로 그랬다가는 자고 일어난 얼굴이 아주 가관일 것이다. 가관일 것인데- 어차피 내일은 외출할 일도 없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좀 있지만 뭐 크게 문제가 되겠는가. 얼굴에 검은 깨를 박은 것처럼 눈에 띄는 블랙헤드와 실눈 떠도 보이는 모공쯤이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누구 가까이서 들여다 볼 사람도 없다.

    불 끄고 누워서 휴대폰으로 인터넷 창을 연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가는 커뮤니티는 철모르는 학창시절, 뭣도 모르던 친구들과 수학여행에서 한 방에 누워 도란도란 수다떨던 느낌을 준다.

    정작 내 학창시절은 아팠던 엄마의 병수발과 사고로 폐차되어 사라진 차와 경매로 넘어간 우리집으로 회색빛이었지만,

    그리고 쫓겨나 급히 옮긴 월세집에서 수시지원비는 커녕  고장난 컴퓨터를 고치지도 못하고 피시방 갈 돈조차 없어 원하는 대학에 수시지원도 못했던 때이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순간 회색빛이 아니라 반짝반짝 은색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다.

    짧은 쉬는 시간에도 꽃놀이를 하겠다며 친구들과 벚꽃 핀 교정을 산책했던 때나, 아직은 추운 봄인데도 수학여행으로 갔던 제주도 바다에서 발 시린 줄도 모르고 물놀이하던 순간 같은 것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또 그날의 나와는 하루 더 멀어지겠지.
    선크림은 커녕 로션 한 번 안 발라도 보송송한 피부에 생기넘치는 분홍빛 입술이었는데, 이제는 뭘 자꾸 덧발라도 부족한 것처럼.

    하루가 참 길었는데, 또 잠이 안 온다.

    시간은 벌써 새벽 네 시를 넘겼다.

    에오- 하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염없이 시간만 흐른다.

    뾰르르- 하는, 옆 집에서 키우는 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새벽도 다 지나 6시가 되었나 보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

    지금 자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잠들어서 적어도 48시간은 잠들어 있어야 하는데...

    눈 감았다 뜨면 지나가 있길 바랐는데, 어김없이 밀린 예능 프로와 인터넷 유머 영상을 재탕하는 와중에도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려는가.

    이제쯤 되서는 이것도 고질적인 수면장애처럼 익숙한 것일지라도, 일 년에 한 번 치뤄야만 하는 역병과도 같으니 도통 익숙해지기가 요원하지만- 다만 한 사람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면 의연한 태도로 맞이하는 게 좋겠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즐거운 기분 좋은 날이 되기를.

    ...안녕, 올 해도 메리 솔로 크리스마스.
    출처 나와 내 손과 내 폰과 내 경험과 약간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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