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단어 하나때문에 지금 1박 2일을 꼬박 싸우고들 계신데, 애초에 이건 오유에서 붙들고 씨름할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붙잡고 있을 문제가 아니죠.
이를테면 국회나 방송, 신문 등의 공적인 공간이나 매체에서는 신경을 써 할 문제가 맞습니다. 말 한마디에 대표성과 권위가 실리니까요.
허나 인터넷상에서 철저한 political correctness를 강요하는 것은 동네 햄버거집에서 손님에게 풀정장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어떻게 어거지로 진행시키면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리죠.
PC의 범위는 광활합니다. 장담컨데 지금 김여사 문제로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분들도 오유에서 '올바르지 않은' 표현들을 쓰고 계실 겁니다.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죠.
성별 관련: 김여사, 쩍벌남, 바바리맨, 연서복, 건어물녀, '좆'으로부터 파생된 모든 단어(존나 조또 존맛 존멋 인실좆 존만이 등)
연령 관련: 초딩, 중2병, 고2병
질환 관련: 정신병자, 각종 암드립
장애 관련: 병신, 장님(리신드립 등), 각종 고자드립
종교 관련: 개독, 알라의 요술봉, 각종 테러드립
성정체성 관련: 각종 게이드립, 비누드립
보시다시피 대충 떠오르는대로 정리해도 표가 하나 나올 지경입니다.
이쯤에서 이렇게 느끼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김여사나 쩍벌남은 성차별적인 발언이지만 나머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쟎아?'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지하기 때문이죠.
여성은 아무래도 전 인류의 50%를 차지하는 거대 집단이다보니 인지하기도 쉽고 발언력도 큰 편입니다.
괜히 페미니즘이 여성권익에서 출발한게 아니죠.
허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사회에는 수도 없이 많은 차별과 억압이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미성년자. 대한민국의 미성년자 인권 문제는 여성인권을 쌍싸다구 후려칠 정도로 심각합니다.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대놓고 행사되고, 부모나 양부모에 의한 학대 및 살해가 심심하면 보도되는데다가
아직도 수많은 법과 제도들이 미성년자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습니다(셧다운제, 두발규제 등등).
정신질환 환자도 장난 없죠. 정신질환을 영구적인 장애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널려있습니다.
게다가 온갖 미신과 억측들이 난무합니다. 어제 베오베에 웬 만화도 올라오더군요.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정신병자가 된다나?
물론 이러한 부분에 대한 무지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관점, 자기 주변을 위주로 생각하는게 당연하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이 정치적 올바름을 논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그냥 무조건 옳고 바르고 좋은 게 아닙니다. 엄정한 중립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심각한 편향을 부르기도 합니다.
애초에 이 개념이 대두된 계기 자체가 미국의 보수세력이 리버럴을 압박하기 위해 펼친 일련의 여론공작이었습니다.
'정의'라는 이름 하에 터부를 만들고 프레임을 구축하여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는 도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굉장히 많아요.
지금도 '여성혐오 얘기하는데 정신병자가 튀어나오다니 어이없음'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더군요.
프레임에 사로잡혀 그 밖을 보지 못하는 훌륭한 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리플에 추천이 막 박힙니다. 심각합니다.
오유는 인터넷 커뮤니티입니다. 그것도 점잖은 양반들이 실명 밝히고 심도있는 토론을 하는 곳이 아닌 그냥 오징어 떠다니는 동네죠.
오유의 특성상 노골적인 욕설이나 그에 준하는 과격한 발언까지 감싸안을 필요야 물론 없겠습니다만,
정치적 올바름을 함부로 들이대는 것은 부적절하고, 그 이상으로 위험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최근에 프레임에 사로잡힌 커뮤니티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