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은 잘 먹었어? "
그 후로 세시간이 지나도록
너의 답장은 오지 않는다.
겨우 세시간,
오늘은 겨우 세시간이지만
지난 한달동안
그 세시간 네시간이 쌓여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흐른거 같다.
어제는 네시간, 엊그제는 다섯시간,
일이 바쁘다는 너의 그 말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주변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은 남녀가 바뀐게 아니냐며
웃음으로 물어보곤 한다
난 너의 연락을 기다리고,
넌 바쁘다며 연락이 늦고
미안하다며 저녁쯤에나 연락 조금 하다가 잠들고.
난 남자니까 쪼잔하다는, 소심하다는,
그런 소릴 듣지 않기 위해 애써 웃음 짓는다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담은지도 오래다.
언제부터인지 전화도 잘 하지 않는다.
집에 있을때는 부모님때문에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는 너.
밖에서는 지하철이니까, 버스니까, 주변에 방해되니까,
그렇게 너는 말했다.
추우니까 전화하지 말고 들어가라며
난 그렇게 너를 집에 보냈다.
10초만이라도 니 목소릴 듣는게 좋았던건데.
나와 있을땐 핸드폰을 안보던 너가,
페이스북을 하고
다른 사람과의 메시지가 늘어가고
카톡이 오고 답장을 하고
나와의 대화가 줄어가고 그랬다
그런걸 볼때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메시지는 그렇게 빨리 대답해주면서
내꺼는 답장이 그렇게 느릴 수가 있었을까.
난 남자니까 그런 사소한걸로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
나랑 보기로 했던 영화를 친구랑 보고,
나랑 있었던 약속이 급하게 잡힌 친구와의 약속때문에 취소가 되고,
나랑 앞으로 할 것들이 점점 친구와 할 것들이 되가면서,
난 어느새 그것들을 '인정'했다.
어느날, 커플로 맞춘 핸드폰 케이스를 하고 있지 않은 너와 만난 그날,
벗겨진 핸드폰의 모습이 나인거마냥 애처롭게 보였다.
" 핸드폰 케이스는? "
" 불편하길래 뺐어. "
니가 이쁘다고 해서 맞췄던 그 케이스가,
이젠 불편한거구나.
일주일에 두세번씩 보던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보고.
이주일에 한번 보고.
아침에 출근하며 보낸 메시지 답장이
점심도 한참 지나서 " 미안, 바빴어. 점심은 먹었어? "
라며 짤막하게 오는걸 여러번 보고 나서야
난 이별을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 늦게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 ,
니 마음에서 나는
얼마나 작아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내 생일날,
너는 미쳐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갖고 싶은게 뭐냐고 물어봤다.
난 선물 같은거 필요없다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 저녁이라도 같이 먹는게 어디냐며 말했지만
조금 슬프기는 했다.
생일이 지난 다음,
넌 선물이라며 향수를 내게 건내줬고
향수를 건내주며 "우리 헤어지는게 어떨까"라며 운을 띄웠다.
난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이미 내 마음은 헤어진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 라며 너를 보냈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보자며 너를 안았다.
옛날엔 그렇게나 뜨거웠던 너의 품이,
뜨겁기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매일 바래다주던 너의 집을,
난 바래다주지 않았다.
그건 여자친구에게만 해주는거라고
나 집에 갈테니 너도 잘 들어가라며 너를 보냈다.
사이가 좋았던 우리는
특별한 싸움이나 다툼없이 그렇게 그냥 헤어졌다.
친구들이 묻는다
왜 헤어졌냐고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왜 헤어졌냐고.
난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그냥" 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헤어진지 두달이 되어가는 지금,
니가 그립지는 않지만
새벽 한시쯤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메시지를 보낼 누군가가
그냥 한명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그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