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비가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div><br></div> <div>길을 가던 이들은 너나 할것없이 입안에서 맴도는 욕을 한두마디 내뱉을만큼 물이 고여있었고, </div> <div>어두운 조명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바(Bar)안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한가지 동작으로 우산을 털고 어깨를 털고 의자에 앉았다.</div> <div><br></div> <div>칙칙한 색깔의 코트를 입은 사내는 11시가 약간 넘은 시점에 들어왔다.</div> <div>바텐더는 어서오세요 라는 무미건조한 인사를 하고, 그 사내는 오늘 들어온 손님들과 똑같은 동작으로 어깨를 털었다.</div> <div>물을 뚝뚝 떨구며 의자에 앉은 그는 바텐더를 불러 재떨이를 달라고 했고, 담배를 꺼내물면서 입을 열었다.</div> <div><br></div> <div>"버번이 뭐가 있죠?"</div> <div>"잔으로 파는건 잭다니엘이 있는데요."</div> <div>"그럼 잭콕으로 한잔 주세요.</div> <div><br></div> <div>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꺼내어 얼음을 담았다. </div> <div>술과 콜라가 적당히 섞인 얼음잔을 사내에게 건네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받아 한모금을 들이켰다.</div> <div>그리고 사내는 한숨을 쉬었다. </div> <div><br></div> <div>바텐더는 사내를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방금전 설겆이를 마친 잔을 닦기 시작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바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떠들던 두명의 여자들중 노란머리의 여자 한명이 바텐더에게 농담을 던졌다.</span></div> <div><br></div> <div>"태형아 오늘 몇시에 끝나?"</div> <div><br></div> <div>쨍한 목소리 때문인지 말없이 혼자 술을 마시던 사내가 여자쪽을 흘끔 쳐다보았다.</div> <div>바텐더는 안면이 있는 여자였는지 웃으면서 대꾸했다.</div> <div><br></div> <div>"4시에요."</div> <div>"그럼 4시에 누나랑 해장국 먹으러 갈래?"</div> <div>"저도 그러고 싶지만 누나는 항상 2시면 취하잖아요."</div> <div>"취하면 니가 우리집에 데려다주면 되잖아? 비밀번호 알려줄께 라면먹고 가."</div> <div><br></div> <div>그 말을 던져놓고 두 여자는 깔깔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div> <div>바텐더는 추파가 익숙한지 웃으면서 잔을 마저 닦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계속 되다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div> <div>자정이 넘으면서 바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div> <div>사내는 두잔의 버번콕을 마셨고, 바텐더는 열다섯잔의 위스키와 일곱병의 맥주를 팔았다.</div> <div><br></div> <div>새벽이 되면서 바안에는 바텐더와 사내, 그리고 바텐더에게 추파를 던지던 여자만이 남았다.</div> <div>여자의 일행은 이미 가버린지 오래였고, 혼자남아 술을 마시던 노란머리의 여자는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2시가 되자 바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 모습을 보던 바텐더는 사내에게 다가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span></div> <div><br></div> <div>"손님. 이제 가게문을 닫아야 할 것 같습니다."</div> <div>"4시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div> <div>"보통은 그렇지만, 오늘은 일찍 닫아야 할 것 같네요. 저 여자분이 단골이신데, 저대로 두기가 좀 그래서..."</div> <div><br></div> <div>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갑을 건네 카드를 바텐더에게 주었다. </div> <div>바텐더는 익숙한 동작으로 카드를 긁고는 사내에게 돌려주었다.</div> <div>사내는 바텐더에게 카드를 받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div> <div><br></div> <div>"버번콕을 아주 맛있게 만드시네요."</div> <div>"네?"</div> <div>"아주 맛있어요. 아마 약을 타도 모를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맛입니다."</div> <div><br></div> <div>순간 바텐더의 얼굴이 굳었다.</div> <div><br></div> <div>"우연히 들어온 곳에서 이런 훌륭한 버번콕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알아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죠. 꼭 버번과 콜라의 비율이 잘 맞아서는 아니예요. 머리도 좋고, 계획성도 있습니다. 아까부터 제 잔은 전혀 설거지를 하지 않으시네요."</div> <div><br></div> <div>"무슨..."</div> <div><br></div> <div>바텐더의 손이 바 아래로 내려갔다.</div> <div><br></div> <div>"아아... 뭐 다른뜻이 있는건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칼이라면 저도 잘 다루거든요. 오늘도 쓸일이 있을뻔 했지만, 오늘은 포기해야겠네요. 맛있는 버번콕에 대한 답례라고 하죠."</div> <div><br></div> <div>바텐더가 굳은 표정으로 사내를 노려보는 동안 사내는 칙칙한 색깔의 코트를 주섬주섬 입고는 창밖을 쳐다보았다.</div> <div><br></div> <div>"뭐 정 어렵다면 날을 다시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면 욕구를 조절하는게 좀 어렵긴 하죠. 그럼 저는 지금부터는 알리바이를 만들러 가야겠네요."</div> <div><br></div> <div>비를 잦아들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그치진 않았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텐더를 쳐다보았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직까지 굳은 표정으로 바 아래의 무언가를 쥐고있던 바텐더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사내는 마치 사라지듯이 순식간에 바의 문을 열고 나갔다.</span></div> <div><br></div> <div>바의 끝에 엎드려 자고 있는 여자는 작은 소리로 코를 골았다. </div> <div>등줄기에 무언가가 흐르는 걸 느끼면서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바텐더는 사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갔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재떨이 옆의 빈 담배갑 밑에 작은 메모지가 있었다.</span></div> <div>떨리는 손으로 집어든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메모지에는 흘려쓴 글씨로 234134라고 적혀 있었다. </span></div> <div><br></div> <div>자신이 알고있는 번호와 똑같았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