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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하고나자, 우리엄마는 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국가의 인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나는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 복학하기 전까지 열심히 피시방에서 메피스토와 디아블로와 바알 삼형제를 때려잡았다.
제대하고 몇주동안 열심히 어둠의 군주들을 때려잡는 날 보고선 엄마는 그리도 기특한지 하루에 두번씩 등싸다구를 시전하셨고, 나는 아직도 우리엄마가 이렇게 건강하시구나,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집에서 도망쳤다.
복학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즈음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예정되어 있었다. 후배들은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자 했던 나에게 굳이 선배님같은 군바리 물 덜빠진 예비군이 낄자리는 없다고 엄포를 놨고, 나는 후배들의 간곡한 만류에 감동받아 그날 반드시 참석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게다가 단과대 OT장소가 우리 시골집의 바로 근처에 있던 수련원이었다.
집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서 진행된 OT라 나는 슬리퍼를 끌고 OT 장소를 방문하였고, 후배들은 내손에 들린 수박과 소주가 담긴 비닐봉투가 굉장히 무거워보였던지 그것만을 강탈해서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나는 예비군의 예리한 감각으로 흩어진 후배놈들을 모조리 찾아 나와 같이 숨박꼭질을 해준 녀석들에게 감사의 로우킥을 날려주었다.
OT는 여전히 뻔한 레파토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재수한 후배와 빠른년생 선배가 친구를 먹었다가 멱살잡이를 하고 있고, 과대표는 여자후배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남자후배들은 모두 별명을 지어주고, 졸업한 학생회장 누나를 대신해 새로 학생회장이 된 동기가 숙소 앞 공터에서 말뚝박기를 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나에게 흑기사를 요청한 후배는 없었다. 아니 그냥 신입생들에겐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관심이 없었다...
한밤이 되어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군대에 갔다가 제대한 친구 B가 차를 끌고 OT장소에 도착했다.
"아니 조각이는 여기 왠일이냐?"
"여기? 우리집 옆인데?"
"아 그래? 너희집이 시골이란건 알았지만 설마 아마존인줄은 몰랐지."
"여기도 꽤 살기 좋아. 원주민들이 독침으로 사냥도 하고 말이지. 맞아볼래?"
그리고 B는 내 독침을 피해 달아났지만, 결국 얼마못가 얼굴에 침을 맞고 쓰러졌다.
새벽1시가 되자, 대부분의 난장판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나와 B는 숙소의 여기저기에서 울려퍼지는 할리데이비슨 엔진소리를 피해서 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의 한 공터에서 대여섯명의 후배들과 동기들이 모여있었다. 학생회장이 된 동기는 B를 보고 말했다.
"야, 너 내가 가져오라는건 가져왔어?"
"뭐? 아 기타? 차에있어. 꺼내올까?"
B는 1학년때부터 학과내 밴드를 결성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잘쳤지만, 그 밴드는 연습 1시간에 술자리 5시간의 1대5 원칙을 반드시 지키는 주의라서 어느순간 그냥 술 마시는 동아리로 변하고 말았다.
학생화장 동기는 자신의 로망인 OT에서 기타치면서 캠프파이어 하기를 꽤 기대하고 있었다.
낭만 같은건 개나 줘버린 우리학과였지만, 한밤중의 기타소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 몇소절과, 군대가는 후배를 위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나자, B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노래 한곡 할래? 오늘같은 분위기엔 너도 하고 싶은 노래가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나는 조용히 B의 반주에 맞춰서 그 노래를 불렀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사실 추억따위 안뜯어먹고 산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는 아직도 널 좋아하고, 이 감정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처럼 너를 품에 꼭 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옛사랑은 그저 아껴서 그 이름을 한번 불러보는 옛사랑일 뿐이었다.
노래의 어느시점부터 우리는 떼창을 하고 있었고, 광화문 거리가 흰눈에 덮여가는 시점에서는 이미 이문세의 감성따위는 안드로메다 저멀리 날아간 노래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것도 괜찮았다. 그날밤은 꽤 괜찮은 밤이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마다 모두 좋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도 괜찮았다.
사랑이 뭔지는 알 수 없어도, 우리는 늘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 번외편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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