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해방후 신문언론의 권력은 막강했습니다. </div> <div><br></div> <div>정보의 전달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그들은 여론을 주도하며, 제3의 권력이라 통칭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습니다.</div> <div><br></div> <div>특히 독재권력과 야합하며, 권력이 원하는 방향석으로 총구를 겨누며 기사를 쏟아냈죠.</div> <div><br></div> <div>대표적인게 조선, 중앙, 동아 를 들수 있습니다. 이들은 권력에 기생하며, 권력에 불리한 기사들은 통제하고, </div> <div><br></div> <div>권력이 의도하는 형태의 기사를 써내려가며, 대중의 여론을 주도하는 막강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div> <div><br></div> <div> <div>모든 언론에는 데스크로 통칭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보도국장, 편집국장 등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div> <div><br></div> <div>기사선택권 및 편집권을 바탕으로 기사의 논조, 방향성을 통제합니다. </div></div> <div><br></div> <div>이러한 이들에 저항하던 기자들이 나와서 설립된것이 한겨레 입니다. </div> <div><br></div> <div>보수와는 다른 색깔, 진보적인 성향을 기치로 내걸며 설립한 신문사들은 조중동의 여론호도에 대한 대항마 역활을 수행했습니다.</div> <div><br></div> <div>하나부터 열까지 조중동에 비해 아쉬운점이 적지 않지만 진보적인 언론사라는 이름아래 많은 진보적 지지층이 </div> <div><br></div> <div>한겨레를 지지했습니다. </div> <div><br></div> <div>확실하게 조중동과는 다른 논조로 지금껏 기사를 써왔으며, </div> <div><br></div> <div>세상에 대한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해온것도 사실입니다. </div> <div><br></div> <div>기존의 언론이 가장 강력했던 이유는 정보의 습득경로가 한정되어 있었고, 그러한 습득경로를 바탕으로 높은 정보력을 </div> <div><br></div> <div>자신의 구미맞게 제공하거나 호도하거나 하며 여론을 주도했다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div> <div><br></div> <div>이른바 게이트키핑이죠. </div> <div><br></div> <div>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데스크의 논조와 맞지 않으면 지면에 실리지 않는 부작용이 속출했습니다. </div> <div><br></div> <div>한겨레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부작용에 대항마로 나온 언론입니다. </div> <div><br></div> <div>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div> <div> <div><br></div></div> <div>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누구나 쉽고 빠르게 접근할수 있으며,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안타까운 진실</div> <div><br></div> <div>정보들이 </div> <div><br></div> <div>무한정으로 흘러다닙니다. </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기존의 언론의 데스크가 게이트 키핑을 주관했다면 </span></div> <div><br></div> <div>이제는 받아들이는 주체. 시민이 자체적으로 게이트 키핑을 수행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지금은 과거와 달리 웬만한 정보는 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span></div> <div><br></div> <div>당장 국회에 가면 매주 발의되는 법에 대한 내용과, 발의자까지 꼼꼼하게 공개되어 있습니다.</div> <div><br></div> <div>법원에 가면 공판 결과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div> <div><br></div> <div>취사선택의 몫이 데스크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돌아가 있다는 점입니다.</div> <div><br></div> <div>특히 인터넷 이용자의 경우 인터넷의 가짜정보에 많이 단련된 상황이며, 지적수준은 </div> <div><br></div> <div>월등히 높아진 상황입니다.</div> <div><br></div> <div>이런상황에서 기자의 역활은 과거와 달리 축소될수 밖에 없습니다. </div> <div><br></div> <div>한겨레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div> <div><br></div> <div>거기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div> <div><br></div> <div>우매한 대중을 깨우치는 언론인 자신들에게 </div> <div><br></div> <div>대항하는 시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div> <div><br></div> <div>시대는 2010년을 넘어 2020년을 향하고 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러나 한겨레는 아직도 1990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div> <div><br></div> <div>아마도 한겨레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div> <div><br></div> <div>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해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div> <div><br></div> <div>자신의 신념으로 가지고 정보를 찾아 습득하고 받아들이며, </div> <div><br></div> <div>또한 자신의 판단을 관철시키는 </div> <div><br></div> <div>행위를 단순히 극성문빠로 치부한다면.</div> <div><br></div> <div>자연스럽게 도태되겠지요.</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