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몇달전에 무슨 일 때문인지 잘 기억은 안나는데</div> <div>암튼 제가 술에 취해서 막차를 놓치고 서울 시청근처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배회하며 </div> <div>새벽 첫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죠. (집은 일산)</div> <div>처음엔 대여섯 시간 동안 밤을 어떻게 새우나 싶어서 눈앞이 깜깜 했지만</div> <div>편의점에서 맥주 캔을 사서 홀짝 거리기도 하고</div> <div>휴대폰으로 팟캐스트나 음악을 들으면서 돌아다니니까 나름 시간이 잘 가더군요.</div> <div> </div> <div>근데 시청 앞 잔디밭에서부터 덕수궁 돌담길까지 여학생들이 길게 줄을 지어서 앉아있거나 서서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div> <div>저는 무슨일인가 해서 안내하는 알바생한테 물어보니까</div> <div>다음날 저녁에 서울시청 잔디밭에서 대규모 아이돌 콘서트가 열리는데 그걸 전날밤부터 기다리는</div> <div>아이돌 팬들이라고 하더군요.</div> <div>누가 오냐고 물어봤더니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들이랑 힙합가수들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저는 제 갈 길 갔었죠.</div> <div>종로에서 경복궁 까지 어슬렁 거리다가 다시 덕수궁 옆 쪽으로 돌아오니까 벌써 한 세시 정도 됐는데 </div> <div>아까 줄 서 있던 애들이 하나도 없더라고요.</div> <div>근데 애들이 버리고간 음식물 쓰레기 들이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길래 속으로 욕을 했죠.</div> <div>밤새 아이돌 콘서트를 기다리는 것도 한심한데 쓰레기 같은 걸 함부로 버리고 다니니까요.</div> <div> </div> <div>근데 그중에 치킨 두마리가 담겨있을 법한 박스가 있길래 혹시나 해서 뚜껑을 열었더니,</div> <div>세상에 몇점 집어먹지도 않아서 고스란히 양념 한마리와 후라이드 한마리가 남아있는 겁니다.</div> <div>보나마나 여자애들 몇명이서 다 먹을수 있을것처럼 시켜놓고는</div> <div>애들이 입이 짧으니까 몇개 집어 먹고는 버려뒀겠구나 싶더군요.</div> <div> </div> <div>사실 그걸 손대는건 진짜 거지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div> <div>제가 치킨을 먹어 본 기억이 너무나 오래되서 일단 닭다리하나만 먹어보자고 집어들었고,,,,</div> <div>그 이후로 한 15분동안 미친듯이 치킨 2마리와 김밥 한줄을 흡입하고</div> <div>남은 김밥 한줄은 제 가방에 넣은채 자리를 옮겼습니다.</div> <div>주위에 누가 볼까봐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먹는 꼴이 제가 보기에도 무슨 노숙자 같았습니다.</div> <div>요즘은 치킨에 들어가는 양념과 소스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진짜 맛있었습니다.</div> <div>허겁지겁 먹어치우고 한 1분정도 걸어서 덕수궁 문앞으로 나오는데</div> <div>아뿔사 그냥 떠난줄 알았던 여학생들이 우르르 아까 앉아있던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겁니다.</div> <div>순간 당황한 저는 옆길로 빠른 걸음을 걸어서 남대문까지 도망쳤습니다.</div> <div> </div> <div>얘들이 잠깐 바람쐬러 돌아다닌건지,</div> <div>아니면 줄서는 것 때문에 시청 잔디밭에 자리를 맡아놓으러 갔던 건지는 모르겟지만 </div> <div>아까 제가 먹은 치킨 두마리랑 김밥들은 걔들이 버리고 간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였습니다. </div> <div>아마 밤새도록 먹으려고 아껴놓은 거같습니다.</div> <div> </div> <div>정말 미안함과 창피함이 극심했습니다.</div> <div>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치킨, 김밥 도둑질 당한 분들 미안합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