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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의민주주의가 이토록 타락한 데에는 소선거구제 단순다수 득표로 대표자를 당선시키는 선거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 중 절대다수의 표는 버려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국민 절대다수의 입장이나 의견은 국가운영에 반영되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상이 굳어지게 마련이다.

한국의 현행 소선거구제 중심 선거제를 비판하는 이들은 주로 뿌리 깊은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해서 이 제도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 밑에서는 국민의 절대다수 혹은 적어도 절반 이상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대표자가 없이, 사실상 정치적 시민권이 박탈된 노예적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운영 과정에서 소수자들을 소외시켜서도 안 되는 게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인데도,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는 사회 구성원 다수까지 철저히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있다. 이러고서는 선출된 국가권력일지라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고, 정치와 사회가 절대로 안정을 누릴 수도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현재로서는 비례대표제의 확대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특권과 고액 연봉에 대한 보통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을 고려할 때,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하되 동시에 국회의원의 특권과 급여를 축소하는 것이 순리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잘난 자들’의 전유물로 남아 있는 한, 우리가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