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후크는 3실점 미만으로 호투한 선발투수를 6이닝 전에 강판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조기강판은 선발투수를 제구 난조나 상황 악화로 일찍 강판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 시즌 한화는 선발진이 이닝을 별로 소화하지 않고 불펜진이 혹사를 당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 이유를 선발진이 잘 던지는 와중에도 김성근 감독이 퀵후크를 고집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하지만 스탯이 말하는 바로는 김성근 감독은 "조기강판"을 하고 있을 뿐이고,
"퀵후크"는 실점하기 전에 내려줌으로써 따라오는 부수적인 기록에 불과합니다.
한화 선발진의 ERA는 5.88(10위), 불펜진의 ERA는 4.25(5위)로 10개 구단 중 가장 격차가 큽니다.
물론 선발의 ERA가 불펜보다 높다고 한들 실력이 더 부족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선발과 불펜의 리그 평균 ERA와 FIP을 보면 아시겠지만, 선발은 승계주자를 남겨두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불펜의 분식회계(승계주자 들여보내기)로 인한 ERA 상승을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점을 고려해도 선발과 불펜의 ERA 차이가 너무 큽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ERA는 자책점(자신이 출루시킨 주자가 들어오는 것)을 이닝(아웃카운트)으로 나눕니다.
상대의 출루를 막고 이닝을 많이 가져갈수록 선발의 ERA는 필연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선발에게 있어 출루를 막는다는 것은 위기상황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고,
이닝을 많이 가져간다는 것은 위기상황을 수습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위기상황을 수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자로부터 삼진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투수의 BABIP(인플레이 타율)은 0.3으로 수렴하고, BABIP에 대한 투수의 영향력은 30% 미만입니다.
땅볼이나 플라이볼을 유도해서 범타로 아웃카운트를 잡는다는 것은 실제로는 투수의 능력 밖에 있습니다.
따라서 위기상황에서 대량실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 상황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고,
강타자를 볼넷으로 거르더라도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려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입니다.
송은범과 배영수는 위기상황에서 삼진을 잡지 못하고 볼질을 계속했고(탈보트보다 못한 수준)
탈보트와 유먼은 삼진을 못 잡고 볼질을 하지 않은 대신 안타와 홈런을 맞으며 대량실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영명은 설렁설렁 던지다 위기상황에서 전력투구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평상시 볼 비중이 높은 관계로 투구수 관리가 안 돼 5이닝 전후로 강판당했습니다. (안영명은 여기서 논외...)
- 한화 선발투수진 팀 승리시 득점권 성적
19.1이닝 82타자 20피안타 37실점 32자책 12탈삼진 11사사구 / ERA 14.90 (10위)
- 한화 불펜투수진 팀 승리시 득점권 성적
24.1이닝 106타자 13피안타 13실점 13자책 23탈삼진 22사사구 / ERA 4.81 (3위)
만약 선발진 조기강판을 하지 않았다면 한화는 지금쯤 꼴찌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발진 조기강판을 남발하는 감독의 성향 때문에 불펜진이 혹사당한다는 의견에 대해,
불펜진이 혹사당하는 건 맞지만 그 원인은 감독의 성향보다는 선발진의 부진에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도 이런 상황이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KIA와의 트레이드에서 유창식을 내주고 임준섭을 받아온 것도 그런 맥락으로,
송창식을 어느 정도 대신해서 이닝을 먹어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5월 중후반에 윤규진이 돌아오면 마무리 투수진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배영수/송은범의 폼이 올라오고 용병투수 1인도 교체를 하게 되면,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불펜에 의존하는 경기운영도 줄어들 것이라 봅니다.
